늙은 개발자의 노래

40세 생일 이후 만나는 두 개의 門

전문가 칼럼입력 :2015/07/09 08:17    수정: 2015/07/09 08:52

임백준 baekjun.lim@gmail.com

국내에서 개발자의 나이가 40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실제로 그런 것 같다.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개발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40세가 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프로그래밍에 젊음과 열정을 바친 사람들은 40세 생일을 맞이한 이후에 모두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20, 30대를 프로그래밍에 바친 사람들이 40세 이후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두 개가 존재한다. 하나는 관리자, 임원, CTO 등으로 나아가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영업이나 업종전환으로 나아가는 문이다. 첫 번째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얼마 뒤에는 두 번째 문을 다시 만난다. 그래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두 번째 문 뒤에 놓여있는 쓸쓸한 세상에서 만나도록 되어있다. 암울한 풍경이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개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문득 미국의 현실도 궁금해졌다. 미국에서도 개발자에게 40세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과 관련해서 유명한 책인 '클린코드'의 저자 로버트 마틴이 자신의 블로그에 '내 잔디밭(My Lawn)'이라는 제목의 명쾌한 글을 올린 바 있다.

이 그래프는 마틴이 자신의 글에 인용한 것으로 원본은 피터 네고라는 사람이 운영하는'Peter's Blog'라는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래프에서 파란색 막대기는 스택오버플로우에서 활동하는 프로그래머들의 나이가 분포되어 있는 양상을 나타낸다.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정규분포처럼 보인다. 빨간색 막대기는 해당 나이에 속하는 개발자들의 명성(reputation)의 수치를 나타낸다. 명성은 스택오버플로우가 사용하는 일종의 포인트다. 다른 사용자들에게 “좋아요”를 많이 받을수록, 질문을 올린 사람에게 정답으로 인정받는 답을 많이 올릴수록 점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나이에 가장 많은 숫자가 분포되어 있고, 30대 후반, 40세 정도의 나이를 전후해서 개발자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미국에서도 개발자들은 40세를 전후해서 두 번째 문을 열고 씁쓸한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인 것일까.

마틴은 이 그래프를 통해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한다. 하나는 40세 이상의 개발자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20대 개발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종의 착시효과라는 점이다. 즉, 40세가 된 프로그래머가 개발을 포기하거나 전업하는 것이 아니라 업계로 진출해 들어오는 젊은 프로그래머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사실은 나이가 많을수록 스택오버플로우의 명성 포인트가 더 높다는 점이다. 그는 이것을 근거로 해서 개발자가 나이가 많을수록, 즉 경험이 많을수록 올바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질문을 올린 사람이나 후배 개발자에게 가르쳐줄 내용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나이와 실력 사이에 직접적인 함수관계가 존재하는 것 같진 않다. 특별히 열정을 품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한 햇수와 상관없이 실력은 언제나 제자리를 맴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정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실력은 나이에 비례해서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이는 짐이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나이는 훈장이다.

미국에서 컨퍼런스나 밋업 모임에 참석해보면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개발자들이 많다. 손자뻘인 친구들과 신기술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노트북을 끼고 카페에 앉아 코딩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어린 개발자들에게 경험을 나누어주며 팀을 리드하는 역할을 맡는다. 내가 꿈꾸는 내 미래의 모습이기도 한데, 특별히 예외적인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꿈’이라고 말할 것도 없다.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은 육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꿈의 직장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보자. 마틴이 보여주는 (파란색 막대) 그래프를 한국의 데이터를 이용해서 다시 그리면 겉보기로는 비슷한 분포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20대 개발자의 수에 비해서 40대 개발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이유는 미국에서처럼 젊은 개발자가 시장에 유입되기 때문이 아니라 40세 이상의 개발자가 실제로 시장에서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속에 열정을 품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한국에 미국 이상으로 많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40세 이상의 개발자는 자기가 쌓아온 실력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기회가 없기 때문에 손실이고, 젊은 개발자들은 곁에서 보고 배울 롤모델이나 현명한 지혜를 가르쳐줄 리더가 없기 때문에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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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학생들에게 SW 교육을 실시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그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해왔다. 늙은 개발자의 노래 소리가 들리게 만들어라. 온 세상에 큰 소리로. 노래 소리가 충분히 크게 들리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SW에 관심을 갖고 모여들 것이다. 나이 든 개발자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어린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치고, 젊은 개발자들에게 지혜를 나누어줄 것이다. 진짜 SW 교육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40세 이상의 개발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세 번째 문이 있어야 한다. 평생 개발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지혜를 나눠주는 길로 통하는 문이다. 코딩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문이다. 그렇게 늙은 개발자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야, 대한민국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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