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HWP 기술, 공개 1년만에 파국

도용 논란속에 소스코드 끝내 삭제

일반입력 :2013/12/12 16:13    수정: 2013/12/13 16:13

리눅스에서 한글과컴퓨터 한글(HWP) 문서를 처리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1년만에 사라졌다.

3년 넘게 이 기술을 개발해온 개발자 A씨는 최근 프로젝트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삭제했고, 이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설왕설래가 오가는 모습이다. 그는 그동안 오픈소스 코드 공유사이트인 기트허브에 올려놨던 소스코드와 관련 분석자료, 기술적 질의응답 게시물을 포함한 구글 그룹 커뮤니티까지 모두 지웠다.

A씨가 프로젝트를 지운건 일부 개발자들이 자신이 공개한 기술을 갖고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마치 독자적으로 만든 것으로 포장한 것이 발단이 됐다.

11일 확인된 바로는 '우분투 한국커뮤니티' 일부 회원들이 정부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A씨의 HWP문서 처리기술 소스코드와 저작물을 부적절하게 사용했고, 이와 관련해 정부 산하 기관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단지 이 사건만이 A씨가 프로젝트를 아예 없애버린 이유는 아닌 듯 하다.

A씨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프로젝트를 완전히 중단하고 관련 자료까지 삭제하게 된 이유로 이 부정한 일을 옹호하는 사람, 매번 기분 나쁘게 버그 리포트를 보낸 사람, (라이선스를 어기고) 소스코드를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 때문에 심적 고통을 받고 안구질환(포도막염)으로 눈에 영구적 손상(시력저하)을 입은 탓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개발자 커뮤니티의 반응은 크게 2가지로 갈렸다. A씨 프로젝트를 부적절하게 활용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법적인 부분은 제외하고서라도 도의적으로는 잘못된 것이란데 이견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 A씨가 취한 행동을 놓고서는 시선이 엇갈린다. A씨가 입은 심적, 물적 피해가 적지 않다는 점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라 여기는 동정론과, 오픈소스SW를 만드는 입장에서 감수해야하는 일일수도 있는데, 프로젝트를 아예 접는건 좀 아쉽다는 반응으로 나뉘는 양상이다.

■개발자들 의견 분분

동정 여론은 페이스북 개발자 그룹에서 주로 흘러나왔다. 국내 오픈소스SW 사용 문화가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것보다는 결과물을 가져와 쓰는 쪽에 편중된 점이나, 원 개발자의 노력을 존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부분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한 개발자는 트위터(@Outsi*****) 메시지로 남이 고생해서 얻어낸 결과물을 공짜로 받아만 먹으려는 사람이나 심지어 가로채려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우분투한국커뮤니티와 무관한 페이스북 그룹 '우분투한국사용자모임'의 한 회원 개발자는 해당 프로젝트 중단 공지에 대해 정부과제에 자신의 소스가 무단 사용된 것에 대한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한 듯하다며 내막을 자세히 몰라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기대가 큰 프로젝트였는데 가슴아프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룹의 다른 회원 개발자는 오픈소스 프로젝트 활성화가 이뤄지려면 일단 남의 권리를 존중할 줄 아는 자세가 우선일 것이라며 아직 대한민국 풍토에서는 개발자가 소스코드를 공개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커녕 요구사항만 빗발치기 때문에, 책임과 의무만 커질 뿐 (개발) 상황이 나아지긴 어려운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회원은 외국의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잘 되는 것은 그 프로젝트 안에서 기업뿐아니라 개인 개발자도 어느정도 동등한 권리를 갖는 등 상호 존중이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당사자에겐) 고통스럽고 실망스러운 결과지만 이 분(A씨)이 한 일 자체는 귀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A씨의 행동을 아쉬워하는 반응도 많다. 오픈소스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많이 풍긴다. A씨가 겪은 일이 당사자 입장에서 억울할수는 있겠지만 부정하진 않았지만 프로젝트를 아예 접어버린건오픈소스SW의 '정신'과도 일치하지 않아 전적으로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개발자는 트위터(@hongm*****)에서 오픈소스라이선스는 일반적으로 보장되는 저작자의 권리 일부를 의도적으로 포기한다고 천명하는 것이라며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프로젝트 삭제가) 오픈소스에 대해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개발자 A씨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소스코드 저장소와 구글 그룹 등 다른 이들과의 의사소통 과정이나 타인이 남긴 기록들도 함께 없애버린 것에 대해 자신의 코드만 소중하고 다른 사람 메일 포스팅은 사라져도 괜찮다는 식이라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개발자(@trust*****)도 A씨가 HWP문서 처리기술 개발 중단과 프로젝트를 곧장 지운 점에 대해 아무리 그래도 (관련 자료를) 지울 것 까지는…(아니었을 텐데)이라는 입장을 보였고, 처음에 (도용한 행위에) 문제는 있다고 봤지만, 그 이후 원저작자가 너무 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개발자(@chan****)도 있었다.

■오픈소스 HWP 처리기술, 정부 과제로 둔갑한 배경

A씨는 지난 2010년부터 한컴 아래아한글 워드 프로그램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HWP문서 처리기술을 틈틈이 만들다, 지난해 12월 일반공개라이선스(GPL)로 소스코드를 처음 공개했다. GPL 기반 hwp 라이브러리라는 뜻에서 'libghwp'라는 이름이 붙었다. 버전 0.1이었다.

프로젝트는 오픈오피스, 리브레오피스같은 오픈소스 워드 프로그램에서 아래아한글처럼 HWP문서를 읽고 쓰게 해줄 기술을 만들려는 동기로 시작됐다. 네이버오피스에 HWP 처리기술을 공급한 사이냅소프트의 전경헌 대표도 당시 A씨의 개발 동기와 향후 방향성에 대해 트위터로 멋진 분이네요, 화이팅이라며 격려했다.

A씨는 종종 libghwp 기술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커뮤니티나 포럼을 통해 들어오는 문의 사항에 친절히 답하곤 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리눅스 외에도 맥과 윈도용 라이브러리 개발에 대한 요청 내지 오류에 대한 과격한 불만을 종종 접했으나, 소스코드 공개 이후 누군가로부터 협력을 제안받진 못한 듯했다.

그러다 우분투한국커뮤니티 일부 회원들이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진행해 온 '리눅스용 HWP 공개 라이브러리 개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A씨가 제공한 libghwp 소스코드와 기술 분석 문서를 거의 그대로 베꼈음이 밝혀졌다. 이 프로젝트는 올해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공개SW개발지원사업'에 채택돼 지원금을 받는 중이었다.

우분투 커뮤니티 회원 B씨에 따르면 해당 과제 수행자들은 이미 동일한 목표를 추구한 HWP관련 오픈소스가 제안 당시에도 꽤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NIPA에 HWP라이브러리 개발 과제를 제시했다. 또 수행자들은 몇달에 걸쳐 A씨의 개발 결과물을 자신들의 것인양 조작했고, 8월말 첫 문제제기 이후에도 곧장 바로잡지 않았다.

A씨는 자신의 소스코드와 자료가 NIPA 지원과제 수행자들의 활동실적으로 이용해왔다는 점을 알았지만, 10월말 쯤 오히려 그들에게 더이상 문제될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함께 원래의 libghwp 프로젝트에 협력해 보자고 구글 그룹을 통해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행자들은 이를 전달받지 못했는지 답이 없었고 주변엔 그들을 옹호하는 의견도 일부 형성됐다. 그리고 NIPA 제재 결정이 나왔다.

결국 지난 8일 A씨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그간 꾸려온 hwp 관련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온라인에 게재한 소스코드와 커뮤니티를 삭제했다는 점, 일련의 사건으로 건강상 손실을 입었다는 하소연, 자신의 기술을 도용한 우분투한국커뮤니티 회원들이 NIPA로부터 연구부정 행위로 제재를 받게 됐다는 사실 등을 알렸다.

A씨는 해당 글에서 문제가 된 과제를 진행해 온 우분투커뮤니티 회원들을 향해 (자신의) 건강 악화를 우려해 소송을 진행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라며 이제 두번 다시 우분투 커뮤니티에 오는 일은 없다고 썼다.

그는 이후 지디넷코리아의 정식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지난 10일 관련 토론과 질의응답이 이뤄진 구글 그룹을 폐쇄했다.

A씨의 말대로 NIPA가 지난 10월 우분투한국커뮤니티 회원들의 명의로 추진된 과제의 수행 내용과 절차상 문제가 있었음을 인지했고, 심의 결과 제재 조치가 결정됐다. 연말까지 총액 3천500만원 규모로 주어질 예정이었던 과제 지원금은 전액 환수, 수행책임자 대표에게는 지원사업 참여를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NIPA측의 오픈소스SW 지원사업 담당자는 과제 수행 당사자들이 A씨의 개발 관련 문서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한 사실과, 신규 개발 없이 다른 프로젝트의 소스코드를 수행 결과물로 내왔다고 인정했다면서 수행책임자 1명은 5년간 지원사업 참여를 제한당하며 각 개인은 지원금을 환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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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자는 향후 과제 선정과정에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언급했지만, 이같은 사례가 앞으로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긴 어렵다. NIPA에서 기업체가 지원하는 과제를 검토할 땐 유사 기술 존재여부를 점검하는 절차가 따로 있지만, 개인 자격 과제들에 일일이 동일한 수준의 절차를 적용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운 탓이다.

2013년은 NIPA가 업계 관계자들의 요청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여 공개SW개발지원사업에서 사업체가 아닌 개인 개발자나 커뮤니티 명의의 과제를 신청받은 첫해다. 그러나 원개발자가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아쉬움을 남겼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