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근본적으로 새로운 컴퓨터 만든다"

자체 OS-CPU-반도체 결합 '더 머신' 프로젝트 가동

일반입력 :2014/06/12 14:53    수정: 2014/06/13 14:09

HP가 오는 2020년까지 전혀 다른 종류의 컴퓨터를 개발한다. 자체 개발한 CPU, 운영체제(OS), 반도체 기억소자를 사용할 계획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HP연구소(Labs)에서 '더 머신(The Machine)' 프로젝트로 불리운다.

외신들은 11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중인 HP 연례행사 '디스커버'에서 멕 휘트먼 HP 최고경영자(CEO)와 마틴 핑크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HP연구소 수장이 나서서 더머신 프로젝트를 소개했다고 전했다.

휘트먼 CEO는 HP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컴퓨팅 방식을 만드는 중이라며 그간 우리는 간간이 (완제품이 아닌) 컴포넌트 기술을 여러가지 내놓곤 했는데 이제는 그걸 한데 모아 오는 2020년 말쯤 사용 가능한 새 컴퓨터 아키텍처를 만드는 단일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HP는 더 머신의 상용화를 통해 컴퓨팅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겠다는 부푼 기대를 드러냈다.

영국 더레지스터는 HP가 디스커버 행사장에서 스마트폰 1대만큼 작은 기기로 160개 랙 크기만한 슈퍼컴퓨터 수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컴퓨터 기술 '더 머신'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더 머신 프로젝트에는 HP 자체개발 OS와 프로세서, 구리선으로 만든 이더넷 케이블 대신 빛을 사용해 훨씬 빨라진 데이터 전송방식, '멤리스터(memristors)'라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기억소자를 활용한 메모리 장치 기술이 동원된다.

비즈니스위크는 더 머신 프로젝트의 윤곽이 핑크 CTO가 HP연구소의 총괄 임원으로 임명된 2년 전부터 구체화됐다고 보도했다.

프로젝트의 핵심이 되는 기술은 멤리스터다. 멤리스터는 메모리(memory)와 레지스터(resistor)의 합성 조어다. HP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미래 기억소자의 명칭이다.

HP는 멤리스터를 사용하면 낸드플래시보다 저전력으로 더 빠른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D램만큼 빠르진 않지만 전원 공급 없이도 데이터를 보존 가능하며, 높은 데이터 기록 밀도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핑크 CTO는 디스커버 무대에서 빛으로 데이터를 전달하는 '포토닉파이버' 기술로 프로토타입의 멤리스터 기억소자를 프로세서에 연결하는 2가지 기술의 조합으로 초당 6테라바이트(TB) 수준의 전송속도를 낼 수 있고 100TB 용량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단위 용적당 기록 밀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HP가 멤리스터 상용화에 실패한 전례가 있었다는 점이다. 멤리스터는 지난 2008년 프로토타입 형태로 생산됐다. HP는 이후 2010년 멤리스터 양산을 위해 하이닉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듬해인 2011년엔 그로부터 2년 뒤인 2013년 여름께 플래시를 대체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놨는데, 2012년에 그 계획이 2014년까지 실행되지 않을 것이라며 잠정 연기했다.

HP는 2013년 상반기중 멤리스터 양산 계획이 좌절된 뒤 그해 말쯤 다른 상용화 계획을 제시했다. 그해 라스베이거스 디스커버 현장에서 핑크 CTO가 참석자들 앞에서 '스토어서브7450'같은 기업용 올플래시 스토리지에 SSD 대신 쓸 수 있는 멤리스터 기반 저장장치를 5년 뒤인 2018년 선보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즉 HP의 계획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2017년 이전에는 멤리스터가 양산에 성공하고, 2018년에는 플래시스토리지를 대체할 수준의 고밀도 멤리스터 기반 스토리지가 출시되며, 2020년에는 멤리스터 기술과 자체 OS 및 프로세서를 갖춘 더 머신 컴퓨터가 등장할 것이다.

HP가 더 머신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현재 컴퓨팅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시장 수요를 발굴해 낸다면, 침체기인 HP의 데이터센터 시스템 사업의 부진을 상쇄할 수도 있다.

다만 기업들이 특정 업체가 지배하는 플랫폼에 종속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표준화 흐름에 따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골라 쓸 수 있는 시대에 HP같은 회사가 완전히 별개 유형의 장비를 내놓고 모든 구성요소와 부속을 직접 만들어 내놓으면 확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다.

더레지스터는 HP가 살아남기 위해 마진이 높은 하드웨어 사업을 운영해야 하고, 멤리스터가 그 열쇠로 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술 자체가 유망함을 인정받아 인기를 끌더라도 HP에게 그걸 곧바로 상용화해 실적으로 연결하는 역량이 충분치 않다면 오라클에 인수된 썬과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고 평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더 머신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그 역할에 상응하는 냉장고 한 대 크기의 장비로 대체할 수 있다면서도 프로젝트가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향후 몇년동안은 정식 출시 준비 단계에 이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HP의 더 머신 프로젝트 내용에서 자체 개발 OS와 프로세서 칩에 대한 설명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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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인콰이어러 보도에 따르면 해당 칩은 유닉스같은 시스템에 장착되는 RISC 계열에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계산을 처리할 수 있는 CPU라는 얘기 외엔 공개된 정보가 없다.

또 HP는 더 머신을 위한 OS 개발을 올해 시작할 계획이다. 멤리스터 시범 생산과 프로토타입 코어 제작은 내년 이뤄진다. 오는 2017년에는 OS의 공개 베타 버전과 더 머신을 구성할 부가 장치를 내놓고, 오는 2019년에는 더 머신을 공식 제품 및 서비스로 내놓겠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