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악동'서 미디어 재벌로…헨리 블로짓 '화제'

"닷컴 붐 조장" 혐의로 추방…BI 매각으로 화려한 부활

인터넷입력 :2015/10/01 17:22    수정: 2015/10/01 18:1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한 때 ‘부도덕한 애널리스트’란 낙인과 함께 월가에서 영구 추방됐던 한 애널리스트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미국의 경제 전문 사이트 비즈니스 인사이더 창업주 겸 최고경영자(CEO)인 헨리 블로짓이다.

주요 외신들은 지난 29일(현지 시각)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독일 미디어그룹인 악셀 스프링거에 매각됐다고 보도했다. 이번 거래에서 악셀 스프링거는 비즈니스 인사이더 지분 88%를 3억4천300만 달러에 매입했다.

나머지 지분까지 전부 고려할 경우 비즈니스인사이더의 시장 가치는 3억9천만~4억2천만 달러 수준에 이른다. 이는 3년 전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할 때 지불한 2억5천만 달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헨리 블로짓이 보유한 비즈니스 인사이더 지분은 약 15%. 단순 계산해도 이번 매각으로 4천400만~6천600만 달러 가량을 보유한 갑부로 떠오르게 됐다. 미국의 주요 미디어들조차 “이번 합병의 최대 승자는 헨리 블로짓”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헨리 블로짓 비즈니스인사이더 CEO. (사진=위키피디아/ 파이낸셜타임스)

물론 블로짓은 당장 현금을 손에 넣을 순 없다. 계약에 따라 합병 후에도 여전히 비즈니스 인사이더를 진두 지휘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블로짓은 이번 합병 때 10년 기한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따라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때까지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계속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월가 사기꾼'에서 미디어 재벌로 화려하게 변신한 헨리 블로짓. 하지만 블로짓이 미디어 실력자로 떠오르기까지는 적잖은 시련과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 1998년 아마존 주가 예측하면서 스타로 떠올라

1998년 10월. CIBC 오펜하이머의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던 헨리 블로짓은 깜짝 전망을 내놨다. 신생기업이던 아마존의 목표 주가를 150달러에서 400달러로 상향 조정한 것. 그는 “모든 인터넷 기업에 대한 가치 평가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는 말과 함께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이 전망은 월가의 일반적인 정서와 완전히 상반된 것. 당시 대다수 애널리스트들은 아마존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블로짓은 아마존의 빠른 매출 성장세와 장기 확장 전망을 높이 평가했다.

시장은 블로짓의 예상대로 움직였다. 아마존 주가가 하루 만에 19%가 폭등한 것. 아마존 주가는 그 뒤에도 꾸준히 상승하면서 전망이 나온 지 불과 3주 만에 400달러를 돌파해버렸다.

1995년 오픈한 아마존닷컴의 모습. 블로짓은 초기 아마존 주가를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사진=지디넷)

‘1년 내 목표 주가’라는 블로짓 자신의 예상조차 보기좋게 뛰어넘은 놀라운 속도였다.

아마존 주가가 예상대로 폭등하면서 블로짓은 순식간에 월가의 스타로 떠올랐다. 각종 방송과 신문들은 연이어 블로짓의 시장 전망을 인용 보도했다.

그러자 당대 최고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손을 뻗쳤다. 1999년 마침내 메릴린치로 자리를 옮긴 블로짓은 CNBC 등에 연일 출연하면서 ‘닷컴 시대 스타’로 명성을 떨쳤다.

■ 닷컴 붐 붕괴 이후 '사기꾼'으로 전락

영원할 것만 같았던 헨리 블로짓은 닷컴과 운명을 함께 했다. 순식간에 달아올랐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린 것. 그 계기는 2000년 3월 10일 주가 대폭락 사태였다.

당시 주가 하락폭은 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 불과 한 두 달 전만 해도 인기 절정이던 닷컴 기업들은 순식간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이 과정에 블로짓은 ‘부도덕한 월가의 상징적 인물’로 찍히게 됐다. 미국 정부는 블로짓이 개인적으로 버린 종목을 동료들에게 추천했다면서 전격 기소했다.

결국 블로짓은 20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벌금을 물었다. 이와 함께 증권업종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영구 퇴출 조치였던 셈이다.

과연 블로짓은 정말로 부도덕한 짓을 한 걸까? 지금 시점에 되돌아보면 평가가 살짝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

물론 닷컴 거품이 조장되는 과정에 블로짓이 일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아마존 주가를 정확하게 예측했던 능력이 계속 통한 것도 아니었다.

블로짓은 2000년대 초 애완동물 구매사이트 펫츠닷컴(Pets.com) 이나 온라인 완구업체 이토이즈(eToys) 등을 추천했다. 하지만 이들은 2000년대 초반 연쇄 몰락하면서 닷컴 거품의 대표적인 기업들로 거론됐다.

하지만 블로짓이 한 짓에 비해 과도한 징계를 받았다는 비판이 없는 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꺼진 후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월가가 희생양으로 선택한 인물이 헨리 블로짓이란 얘기다.

■ 2007년 더블클릭 전 CEO와 함께 비즈니스 인사이더 창간

월가를 떠난 블로짓은 전혀 엉뚱한 일에 관심을 보였다. 웹진인 슬레이트에서 기자로 모습을 드러낸 것. 2002년 무렵 블로짓은 주식 내부자 거래 혐의로 기소된 마샤 스튜어트 재판 관련 취재를 하면서 열정적으로 글을 썼다.

언뜻 보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행보. 하지만 블로짓은 원래 글 쓰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예일대학 역사학과 출신인 블로짓은 월가에 몸 담기 전에도 한 때 <하퍼스 매거진> 등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2007년. 더블클릭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케빈 라이언이 헨리 블로짓에게 접근했다. 경제 관련 뉴스 사이트를 같이 하자고 권유하기 위해서였다.

2013년 뉴요커에 실린 헨리 블로짓 인터뷰 기사. 당시 인터뷰는 구글드 저자인 켄 올레타가 진행했다. (사진=뉴요커)

이 과정은 <구글드> 저자인 켄 올레타가 지난 2013년 <뉴요커>에 기고한 헨리 블로짓 인터뷰 기사에 잘 묘사돼 있다.

2005년 더블클릭을 매각하고 큰 돈을 손에 넣은 라이언은 투자할 곳을 찾다가 온라인 언론 쪽에 눈을 돌리게 됐다. 준비 작업을 하던 라이언은 왕년의 스타 애널리스트인 헨리 블로짓이 슬레이트에 쓴 기사들을 보고 깊이 매료됐다.

이렇게 둘은 운명의 장난처럼 비즈니스인사이더를 만들게 됐다.

2007년 출범할 때 제호는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아니었다. 처음엔 실리콘 앨리 인사이더란 제호를 사용했다. ‘뉴욕의 테크크런치’를 표방했던 블로짓과 라이언의 의중이 그대로 표현된 제호였다.

하지만 이후 "굳이 뉴욕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나"란 생각과 함께 전국 규모로 확대하면서 지금의 명칭으로 바꿨다.

■ 특종보다는 속도…"텍스트 기반 라디오 토크쇼"

블로짓은 월가 출신답게 진지한 저널리즘적 접근을 지양한다. 대신 자신들의 서비스를 '텍스트 기반 라디오 토크쇼'라고 규정하고 있다.

블로짓은 2013년 뉴요커와 인터뷰 때는 ”특종이 대수냐? 중요한 건 속도와 소통이다"는 철학으로 뉴스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창업 멤버인 케빈 라이언 역시 특종하면 5분 내에 가볍게 받아쓰면 된다고 주장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미국 언론 중에선 좀 독특한 편이다. 우선 페이지 뷰 늘리는 재주가 남다른 편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진 슬라이드 쇼가 대표적. 이게 차별화된 콘텐츠이기도 하지만, 페이지뷰를 극대화하려는 꼼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즈니스 인사이더를 트래픽 장난만 하는 얄팍한 매체로 규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한 때 잘 나가던 애널리스트였던 헨리 블로짓의 장기가 비즈니스 관련 보도에서 잘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각종 차트와 실적 분석을 토대로 한 전망 기사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2012년 초엔 애플 주가가 전성기를 막 지난 야후와 비슷한 상황에 접어들었다고 '정확하게' 예측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최근까지도 수익을 내진 못했다. 2012년까지만 해도 연간 3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을 정도다.

하지만 트래픽과 외형적 성장 면에선 탁월한 솜씨를 보여줬다. 블로짓 자신이 아마존을 높이 평가했던 바로 그 방법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 비즈니스인사이더의 월간 이용자 수는 약 7천600만 명. 세계 10대 경제 사이트에 포함될 정도로 탄탄한 편이다.

독일 미디어 그룹인 악셀 스프링거가 지분 88%를 3억4천300만 달러에 매입한 것 역시 이런 성장성을 높이 평가한 때문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 매각 직후 악셀 스프링거가 과도하게 비싼 대가를 지불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번에 평가받은 약 4억 달러는 AOL이 2011년 허핑턴포스트를 인수할 때 지불한 3억1천500만 달러보다 많은 수준이다.

허핑턴포스트를 손에 넣은 AOL은 한 때 비즈니스 인사이더에도 관심을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년 전 AOL은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수 가격으로 1억2천500만 달러를 제안했다.

‘전직 애널리스트’ 블로짓은 이 제안을 보기 좋게 거절했다. 2013년 매출 2천만 달러에 불과한 기업의 수장치곤 지나치게 오만한 모습을 보인 셈이다.

하지만 블로짓은 불과 2년 만에 자신의 선택을 옳았음을 다시 한번 입증해보였다. 당시 가격의 3배에 가까운 가격까지 끌어올리는 수완을 보인 것이다.

■ "새로운 실험 위해 악셀 스프링거에 매각"

돈 냄새 잘 맡기로 유명한 헨리 블로짓은 왜 지금 시점에 비즈니스 인사이더를 매각했을까? 또 왜 하필 악셀 스프링거를 선택했을까?

이에 대해 블로짓은 포천과 인터뷰에서 “악셀 스프링거는 깊은 저널리즘 DNA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디지털도 성공적으로 수용했다”고 강조했다. 또 합병한 회사들의 독립성을 인정해주는 점 역시 매력적인 요인이었다고 덧붙였다.

블로짓은 악셀 스프링거가 자신들이 앞으로 하려는 일을 잘 지원해줄 것으로 기대했다고 주장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최근 IT 쪽 뉴스를 떼내 테크 인사이더를 새롭게 출범시켰다. 이와 함께 분산 콘텐츠 사업 부문인 ‘인사이더’도 만들었다. 이런 새로운 실험을 하는 데 악셀 스프링거가 큰 힘이 될 것이란 게 블로짓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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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리서치 사업인 BI 인텔리전스 확장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BI 인텔리전스를 독일어 사이트 구축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가의 악동’에서 성공한 미디어 경영자로 변신한 블로짓. 그는 악셀 스프링거란 우산 속에서 어떤 역량을 보여줄까? 블로짓은 혼돈 속으로 빠져든 세계 미디어 시장을 바라보는 또 다른 키워드가 될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