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가 심했다" vs "애플이 과했다"

'아이폰 백도어 거부' 외신들도 팽팽한 설전

홈&모바일입력 :2016/02/18 15:4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14명이 살해된 테러 사건 용의자의 아이폰을 압수했다. 속만 들여다보면 누구와 어떻게 모의했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예상외의 복병이 등장했다. 시작화면 비밀번호 때문. 제조사조차 뚫을 방법이 없다.

그러자 연방수사국(FBI)은 법원에 호소했다. 아예 보안시스템을 우회할 ‘뒷문(backdoor)’을 만들어달라는 명령을 받아낸 것. 하지만 이번엔 제조사가 “그건 절대 안 된다”고 버틴다.

(사진=씨넷)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여기서 제조사는 물론 애플이다. 애플은 지난 해 12월 샌프란시스코 샌버너디노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용의자의 아이폰5C를 어떻게 좀 해달라는 캘리포니아 연방법원 명령을 정면 거부했다.

이 사건은 국가안보와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란 해묵은 과제를 또 다시 끄집어냈다. 가뜩이나 파리테러 이후 분위기 뒤숭숭한 미국에선 민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다.

수사당국은 ‘벌어진 사건’보다 ‘혹시 있을 지 모를 사건’을 막기 위해선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FBI는 일단은 범인인 사이드 파룩와 타시핀 마릭 부부의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요즘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른 이슬람국가(IS) 같은 해외 무장세력과의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테러를 자행한 파룩 부부는 경찰과 총격전 도중 사망했다.

폭력 조직과 연계 여부를 밝힐 증거는 현장에서 입수한 파룩의 아이폰 뿐이다. 3개월 가량 끙끙대던 FBI가 애플에 ’아이폰 백도어’ 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 WSJ, 애플 강하게 비판…테크크런치 "반대 당연"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예 기사 제목조차 ‘애플 팀 쿡의 위험한 게임’이라고 달았다.

근거는 간단하다. 끔찍한 자국내 테러 용의자를 잡아야 한다는 데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란 것.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애플이 외면하는 건 부당하다는 논리다.

문제가 된 제품이 상대적으로 구형인 아이폰5C란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플은 최신 폰에는 작동하지 않는 ‘백도어’를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겠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꼬집었다.반면 IT 전문 매체인 테크크런치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했다. FBI 요구의 핵심은 애플에게 스스로 만들어놓은 안전망을 허물란 얘기란 것. 그렇기 때문에 일단 한 번 선례가 만들어지게 되면 유사한 요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테크크런치의 분석이다.

따라서 테크크런치는 이번 공방은 지나치게 기술적인 논제에 초점을 맞춰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보다는 정부가 개별회사 제품의 보안 수준을 약화시키란 요구를 할 수 있냐는 점, 그래서 궁극적으론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이용자의 자유를 훼손해도 되냐는 쪽에 초점이 맞춰저야 한다고 테크크런치는 주장했다.

테크크런치는 또 다른 기사에선 “애플이 아이폰 보안을 짓밟으려는 FBI의 강요에 거부하는 것이 옳은 이유’란 도발적인 제목을 달기도 했다.

■ BI, 애플도 백도어 갖고 있어…더버지 "새 보안법 만들 수도"

반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애플이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근거는 이렇다. A와 B가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이 메시지가 거쳐가는 애플 서버를 뒤져봐야 얻을 게 없다. 모든 게 암호화돼 있기 때문이다. 애플조차 그 암호는 풀 수가 없다.

그런데 애플은 아이폰 자체에 대한 백도어는 이미 갖고 있다는 것. 이번에 FBI가 요구하는 것도 애플이 갖고 있는 바로 그 백도어라고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주장했다.

한 시민 운동가가 애플의 조치에 찬성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씨넷)

물론 이런 백도어는 아이폰5S 이후 제품부터는 막혔다. 그 경로조차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테러 용의자가 갖고 있는 아이폰은 버전이 낮은 5C다. 또 다른 IT 매체인 더버지는 논점을 아예 다른 쪽으로 옮겼다. 이번 사태로 미국 의회가 아예 백도어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하려 들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더버지는 “의회가 업체들에게 기기 안에 백도어 설치를 의무화하는 암호법을 통화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행보에 대해 더버지는 “의회가 커브볼을 던질 수도 있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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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지는 또 “법원의 이번 명령은 애플의 기기 하나에 영향을 미치지만, 의회가 법을 만들게 되면 모든 브랜드에 충격을 가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FBI가 굳이 법원을 통해 공개적으로 요구를 한 것은 이런 부분까지 염두에 둔 조치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더버지의 분석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