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백도어, 'SW 법적지위' 논쟁으로

애플 "명령강제 땐 헌법 1조-5조 위반" 주장할 듯

홈&모바일입력 :2016/02/25 10:33    수정: 2016/03/02 10:4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아이폰 백도어’ 공방이 소프트웨어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논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플은 오는 26일(현지 시각) 아이폰 잠금 장치를 우회할 수 있는 기술을 연방수사국(FBI)에 제공하라는 명령에 대한 입장을 담은 문건을 캘리포니아 지역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애플이 미국 수정헌법의 주요 조항들을 명령 이행 거부 근거로 삼을 계획이라고 블룸버그, 아스테크니카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번 공방은 지난 해 12월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이 시발점이 됐다. 14명이 사망한 이 사건을 수사하던 FBI는 용의자인 무슬림 부부 중 남편인 사이드 파룩의 아이폰을 손에 넣었다. 용의자 부부는 사망했다.

테러법이 갖고 있던 아이폰 암호 체계를 풀어줘야 할 지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진은 씨넷이 독자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씨넷)

하지만 FBI는 압수한 아이폰의 잠금 장치를 풀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FBI는 법원에 ‘비밀번호 10번 이상 틀릴 경우 데이터가 삭제되는’ iOS의 보안 장치를 우회할 별도 운영체제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캘리포니아 법원의 셰리 핌 행정판사는 FBI 요청을 받아들였다. 지난 주 애플 측에 적절한 기술 지원을 해주라고 명령한 것.

하지만 행정 판사 명령은 1심 재판부의 최종 판결은 아니다. 이에 따라 애플은 이번 주 중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행정 판사의 명령을 이행할 수 없는 이유를 담은 문건을 접수할 예정이다.

이 문건에서 미국 수정헌법의 주요 조항들이 동원될 예정이라는 게 외신 보도의 요점이다. 아이폰 백도어를 둘러싼 공판은 오는 3월 22일에 열릴 예정이다.

■ "의사에 반하는 코드 작성 강제 땐 언론자유 침해"

블룸버그통신은 전날 애플이 FBI 요구는 언론 자유에 대해 규정한 수정헌법 1조 위반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펼칠 계획이라고 전했다. 수정헌법 1조는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법을 제정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정부가 기자들에게 유리한 기사를 쓰도록 강제하는 것도 당연히 금지된다. 따라서 애플에 불리할 것이 뻔한 ‘보안을 약화한 운영체제’를 만들도록 강제하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이 주장에서 핵심은 디지털 서명과 암호 서명의 법적 지위다. 이를 위해선 아이폰에 앱을 내려받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애플 스토어 창문에 '백도어 요구'에 대항해 싸우는 애플을 응원하는 글이 걸려 있다. (사진=씨넷)

어떤 사람이 앱스토어에서 새로운 앱을 다운받을 때마다 아이폰 기기가 코드에 포함돼 있는 디지털 서명을 확인한다. 아이폰 기기에 나쁜 영향을 끼칠 요소가 없는 지 확인하는 절차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기 위해선 암호 서명도 있어야 한다. 애플은 앱스토어 등록 심사를 할 때 이 과정에 필요한 암호 서명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FBI 요구대로 하기 위해선 애플의 의사에 반하는 서명을 추가해야만 한다. 바로 이 부분이 수정헌법 1조 위반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블룸버그 보도의 핵심 논지였다.

■ '공용 침해' 관련 조항도 적용 가능할까

아스테크니카는 여기에다 ‘수정헌법 5조’가 추가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수정헌법 5조는 ▲적법절차 ▲일사부재리 ▲자기부죄 금지 원칙 등과 함께 공용침해 관련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 중 특히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을 경우엔 생명이나 자유 또는 재산이 박탈당해서는 아니된다. 또 정당한 보상이 없을 경우 공익 목적을 위해 사유재산권이 수용되어서는 아니된다”는 부분이 관련이 있다고 아스테크니카가 분석했다.

논지는 간단하다. 현재 정부는 애플 의사에 반하는 뭔가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 현재 드러난 상황만 놓고 보면 이 부분은 ‘적법한 절차’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사진=씨넷)

아스테크니카에 따르면 애플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정부는 애플 직원을 징발해 정부 대리인이 되도록 강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물론 미국 정부도 분명한 논리를 갖고 있다.

사이러스 벤스 맨해튼 지방 검사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범죄자에 정보에 누가 접근할 수 있을 지는 법원과 입법 기관이 정할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스마트폰 역시 수색 영장 적용 대상이란 것이다.

문제는 현 상황이 이런 논리가 통할 수 있을 것이냔 점이다. 아스테크니카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색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 통신사들 '통화자료 협조'와 다른 이유

그 동안 미국 통신업체들은 수사기관이 영장을 제시할 경우 통화 기록을 비롯한 각종 자료 조사에 성실하게 응대해 왔다. 그런데 이번 아이폰 수사는 통화 내역 자료를 요구할 때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 아스테크니카의 지적이다.

통신사들은 정부가 찾고 있는 자료를 이미 갖고 있었다는 것. 따라서 그 자료를 그냥 넘겨주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애플에 요구한 부분은 조금 다르다. 갖고 있는 자료를 달라는 게 아니라 보안 잠금 장치를 무력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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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FBI 요구에 응해서 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줄 경우 iOS 시스템에 구축해 놓은 강력한 보안 체제 자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 이럴 경우 보상도 없이 사유재산을 동원한 사례에 해당돼 수정헌법 5조 위반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 아스테크니카가 전했다.

물론 애플이 그런 취지의 주장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