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소송전 벌이는 IT거인들의 평행이론

시스코-아리스타 소송, 오라클vs구글과 닮은꼴 행보

컴퓨팅입력 :2016/12/20 16:29

시스코시스템즈와 아리스타네트웍스간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이 앞서 진행된 오라클과 구글간의 소송과 닮은 점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오라클과 구글 소송에 적용된 법리가, 시스코와 아리스타간 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IT미디어 아스테크니카는 지난 15일 "시스코 대 아리스타 소송이 오라클 대 구글 소송의 그림자가 드리운 배심원 평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보도를 통해 이같은 분석을 제시했다.

[☞참조링크: Cisco v. Arista awaits a jury verdict under the Oracle v. Google shadow [Updated]]

네트워크장비제조사 시스코시스템즈와 아리스타네트웍스의 제품 지적재산권 소송 과정이 앞서 진행된 오라클과 구글의 자바 지적재산권 소송 과정과 겹치는, 평행이론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사진=Pixabay]

■같은 듯 다른 오라클 대 구글, 시스코 대 아리스타 지적재산권 분쟁

언뜻 보기에 두 사건은 전혀 다르다.

일단 먼저 진행된 오라클과 구글 소송은 경쟁사간 다툼이 아니다. 오라클은 기업용 소프트웨어(SW) 회사고 구글은 인터넷 검색업체다.

그럼에도 6년전 오라클은 구글이 '안드로이드' 개발 과정에 자바의 특허와 API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오라클은 1심에서 특허 청구항을 기각당했고 API저작권도 인정받지 못해 완패했다. 다만 2차전인 항소심에서 API저작권을 인정받으며 분위기를 뒤집었다. 그러나 구글은 상고신청 기각후 3차전으로 벌어진 파기환송심에서 2016년 5월 '공정이용' 논리를 인정받아 저작권침해 배상 책임을 면했다.

[☞참조링크: Oracle Files Complaint Against Google for Patent and Copyright Infringement]

[☞관련기사: 구글, 오라클 특허 침해 안 했다]

[☞관련기사: 구글 '완승'…자바 지재권 침해 무효 확정]

[☞관련기사: "자바 API도 저작권 보호 대상"]

[☞관련기사: "자바 API 공정이용"…구글, 오라클에 勝]

오라클과 구글의 자바 전쟁은 안드로이드를 만든 구글이 자바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오라클의 소송으로 2010년 시작됐다.

현재까진 구글의 승리다. 오라클은 지난 8월말 평결불복심리를 진행하며 소송에서 다루지 않았던 크롬OS같은 기술을 심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9월말 오라클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오라클은 10월말 또다시 항소에 나섰다

[☞관련기사: 끝날듯 끝나지 않는 구글-오라클 자바전쟁]

[☞관련기사: 자바전쟁 안 끝났다…오라클, 또 항소]

나중에 시작된 시스코와 아리스타간 소송은 두 네트워크장비 제조사 제품의 지재권 시비에서 불거졌다. 경쟁사간 다툼이다. 시스코는 2년전 아리스타가 만들어 시판중인 제품이 시스코의 특허와 '명령줄인터페이스(CLI)'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시스코는 특허침해 건으로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수입금지명령까지 청구했다. 이달초 ITC로부터 특허침해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구글과 소송에서 오라클의 자바 특허 권리가 하나도 인정되지 않은 점에 견줘 보면, 그간 소송을 제기한 시스코에 유리한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관련기사: 시스코, 아리스타네트웍스 특허침해 고소]

[☞관련기사: 시스코, 아리스타 상대 특허 침해 소송 확대]

[☞관련기사: "시스코, 아리스타와의 특허소송서 일부 승리 주장"]

[☞참조링크: Protecting Innovation: ITC Confirms Arista Products Violate Additional Cisco Patents]

즉 오라클을 상대한 구글과 달리, 아리스타는 시스코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다소 불리해 보이는 위치였다.

데이터센터 네트워킹 인프라 시장에서 경쟁하는 시스코시스템즈와 아리스타네트웍스는 지난 2014년 12월 시스코가 미국 캘리포니아북부지법에 제소한 지적재산권 소송으로도 대립하고 있다.

■시스코, 배심원 평결에서 CLI저작권 인정 못 받아…API저작권 인정 못 받았던 오라클 연상

하지만 최근 아스테크니카 보도는 이런 인식을 뒤엎는다.

지난 14일 보도에 따르면 시스코 측 데이빗 넬슨 변호사는 아리스타가 CLI 명령어를 베낀 책임을 지기 위해 3억3천500만달러를 물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허 대신 CLI명령어 저작권을 주장한 이유는 ITC에서와 달리 이는 오라클이 소송초기 구글을 상대로 자바 특허권을 주장하다가 이를 포기하고, 특허권 청구항에 포함되지 않는 API패키지의 '저작권' 행사에 나선 전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같은날 미국 지디넷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배심원들은 아리스타의 편에 섰다. 아리스타가 시스코 제품의 CLI 명령어를 베꼈다는 주장은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스코의 3억3천500만달러 규모 배상 청구도 기각됐다. 배심 논리에 전형적, 상투적인 아이디어를 표현한 결과물은 저작권 보호대상에서 배제된다는 일명 '표준적 삽화의 원칙(Scenes a faire doctrine)'을 적용한 결과다.

[☞참조링크: Jury sides with Arista over Cisco in IP case]

[☞참조링크: Arista beats Cisco’s $335M copyright claim with an unusual defense]

이날 시스코 측은 평결 내용을 검토한 뒤 항소를 비롯한 후속 대응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마크 챈들러 시스코 법률고문은 "다른 경쟁사들은 베끼는 방식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 사용자인터페이스를 개발했다는 사실이 있는데도 아리스타는 (시스코 CLI를) 베꼈다"면서 "시스코의 사용자인터페이스는 유명하고 성공적이며 때론 벤치마크 대상을 의미하는 '산업표준'으로 일컬어지지만, 이 사건에서 시스코 기술은 산업표준으로 구현되지 않았고 CLI를 표준화하는 단체도 실재하지 않는다"며 유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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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시스코가 아리스타를 상대로 항소에 나선다면, 이는 구글에 패소한 오라클의 행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오라클도 구글과의 첫 소송 당시 1심 배심원 평결에서 API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API저작권을 인정받기 위해 애쓴 결과 항소심에서는 API저작권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이끌어내긴 했다. 하지만 구글의 행위는 저작권법 침해배상을 면책받을 수 있는 '공정이용'으로 결론났다. 시스코 역시 CLI 명령어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했고, 항소를 통해 향후 이를 인정받더라도 공정이용 다툼으로 넘어갈 것이라 예상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