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4차산업혁명, 핵심은 사람이다"

마인처 뮌헨공대 교수 인터뷰..."직업교육 중요"

방송/통신입력 :2017/03/13 07:54    수정: 2017/03/13 08:21

[뮌헨(독일)=안희정 기자] "4차산업혁명은 지멘스와 보쉬 같은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제조업과 사물인터넷(IoT)이 결합돼 생산성을 높이고, 맞춤형 제조를 통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4차산업혁명을 전 세계의 화두로 만든 건 세계경제포럼(WEF)이었다. WEF는 지난 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포럼에서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이 주도할 4차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하지만 독일은 WEF보다 훨씬 먼저 4차산업혁명을 부르짖고, 또 대비해 왔다. 독일은 "변하지 않으면 미국과 중국에게 종속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에 제조업 혁신 프로젝트인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해 왔다.

기자는 인더스트리 4.0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독일 현지에서 클라우스 마인처 뮌헨 공대 교수를 직접 만났다. 마인처 교수는 인공지능(AI) 석학이면서 독일 인더스트리 4.0 전문가로 유명하다.

"4차산업혁명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움직임"

"4차산업혁명은 고등교육을 받은 고소득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위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인공지능과 IoT다. 특히 인공지능으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경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WEF의 4차산업혁명 관련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도 '일자리의 미래'다.

하지만 마인처 교수는 “독일의 4차산업혁명은 '사람'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특히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일자리가 줄어들겠지만, 그에 맞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직업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클라우스 마인처 뮌헨 공대 교수

마인처 교수는 독일을 대표하는 제조업체 지멘스를 사례로 설명했다. 지멘스는 인더스트리 4.0 프로젝트에 따라 제조업을 뛰어넘어 소프트웨어 공급자로 진화했다. 특히 지멘스는 전통 제조공장을 스마트 팩토리로 전환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멘스는 노동자를 감축하지 않고도 생산성을 8배나 높였다. 근로자와의 소통과 재교육을 통해 이뤄진 결과다.

마인처 교수는 전문가들이 앞다퉈 미래에는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 예측하지만, 일자리는 우리가 걱정하는 것처럼 바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산업이 변하면서 전문 분야 바뀌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마인처 교수는 직업 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사라지는 직업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인처 교수는 독일 직업학교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말했다. 그는 "기초적인 교육도 중요하지만, 직업교육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따라서 4차산업혁명을 잘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며 "4차산업혁명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 독일, 제조업과 IT 융합으로 4차산업혁명 이끈다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은 제조업과 첨단 IT산업의 융합이다.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기계가 서로 소통하게 만들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전략은 독일의 처절한 현실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제조업이 강한 반면 IT산업 경쟁력이 미국과 중국에 뒤처진 독일이 21세기에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제조업을 발전시켜 왔던 독일은 여전히 화학이나 철강, 자동차, 건설 등 전통적인 산업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IT분야에선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마인처 교수는 "독일에는 미국처럼 IBM과 애플, MS, 페이스북과 같은 IT기업이 부족하다"며 “이는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이 더 절실했던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2007년 금융위기가 왔을 때도 독일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중소기업이 탄탄한 버팀목이 됐기 때문이다. 인더스트리 4.0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 생태계를 강조하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마인처 교수는 "중소기업이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더스트리 4.0은 독일 공학한림원(acatech)이라는 비영리 조직에서 학계와 산업계, 시민단체(근로자)가 함께 논의하며, 아카텍은 정책적인 부분을 정부에게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사이버물리시스템 개념도. (사진=독일 인더스트리4.0 최종 보고서)

대기업이나 정부가 중심이 돼 인더스트리 4.0을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전문가들이 모두 참여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있다는 말이다.

공학한림원은 기술과 과학 분야의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시, 독일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포럼을 개최하는 등 인더스트리 4.0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공학한림원을 이끄는 핵심 인력 중 한 명이 해닝 카거만이다. SAP 회장 출신인 카거만은 공학한림원 공동 회장으로 인더스트리 4.0의 기초를 닦았다. 인더스트리 4.0 워킹그룹이 지난 2013년 최종 보고서를 내놓을 때 공동 회장 역할을 맡았다.

해닝 카거만 회장은 오는 29일 지디넷코리아와 국회 4차산업혁명초럼이 공동 주최하는 '독일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본 한국형 4차산업혁명 모델' 컨퍼런스에서 기조 발제를 할 예정이다. 카거만 회장은 기조 발제에서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추진 과정에 대한 생생한 얘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헤닝 카거만 공학한림원 회장.

■ “IT강국인 한국…IT인프라 강점 살려야”

마인처 교수는 한국 산업만의 강점을 살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은 아날로그적인 독일보다 IT기술이 3~4년 더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사람 대부분은 IT기기를 다루는데 능숙하고, IT인프라도 매우 뛰어난 나라"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같은 환경은 매우 4차산업혁명 시대에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며 "로보틱 분야에선 강국이고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나라인 한국이 중소기업과 함께 4차산업혁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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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처 교수는 트럼프가 내세우는 보호무역주의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은 IT강국이지만, 트럼프의 관심은 실리콘밸리보다는 공장(제조업)"이라며 "제조업 경험이 부족한 미국이 60년대로 돌아가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고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이 잘 할 수 있는 IT산업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