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혁신하려거든 IT에 부탁하라

[리셋 IT 코리아 1-3]혁신의 출발과 종점=IT

컴퓨팅입력 :2017/03/20 13:18    수정: 2017/03/20 13:54

김우용, 임민철, 임유경 기자

IT는 갈수록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전통 산업을 보조하던 것에서 전 산업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한국도 이같은 거대한 흐름의 한복판에 있다. IT를 얼마나 이해하고 잘 활용하느냐로 일상이 완전히 달라질 정도다. IT의 경쟁력이 그 국가 구성원 전반의 경쟁력을 가늠한다.

IT를 세상의 중심으로 옮기는 작업은 선진국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로 대변되고 있다. 이 흐름에 함께 하지 못하면 뒤로 처진다는 위기의식이 형성됐다. 그러나 IT를 공급하는 주체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건 불가능하다.

IT업계 종사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근본적 인식 전환을 호소한다. 부품으로 취급받고, 산업 피라미드 속의 최하층으로 존재하는 한 IT 경쟁력 회복은 요원하다고 경고한다.

■ 개발자는 부품이 아니다

한국의 IT 종사자들은 철야, 고용불안, 저임금, 체불, 비인간적 대우에 신음하고있다. 일한 만큼 대접받지 못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일상을 빼앗겼다.

개발자들은 자신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기계 부품 취급하는 인식의 문제를 지적한다. 싸게 가져다 쓰고, 낡으면 버리는 행태가 당연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처한 현실은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와 궤를 같이 한다. 다단계 하청구조와 불공정한 계약 관행, 근로기준법조차 준수되지 못하는 노동환경, 야간 및 철야근무 수당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현실은 IT시장에서 위세를 뽐낸다.

(사진=픽사베이)

정책적 해법으로 다단계 하도급 금지, 고용주의 근로기준법 준수에 대한 정부당국의 엄정한 관리감독, 무리한 근무시간에 대한 법률적 제한 등이 제시되고 있다. 야근금지 같은 단순 조치도 많이 거론되고 있다. 한 SW업체 CTO A씨는 발주처 의지만 있다면 다단계 하도급 금지만으로도 저임금이나 임금체불 문제 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하청 몇 단계만 내려가도 1천만원으로 발주된 인건비가 200만, 300만원으로 깎여요. 그렇게 고용된 인력이 아키텍처를 고민하겠어요, 고급기술을 쓰겠어요. 좋은 개발자를 쓰려면 하도급 구조 철폐해야 돼요. 2단계 이상 못 내려가게. 그래야 발주처가 줄 돈 다 주는데도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 못 받는 문제가 해결돼요. 발주처가 (소개업체더러) 투입인력 의료보험증 가져오라고 하면 돼요.”

이미 2013년 국회사무처 ‘IT노동자 근로실태조사 및 법제도 개선방안’ 보고서가 IT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중첩된 문제를 고발하며 노동부 관리감독, 프로젝트 일정 정상화, 발주 전문성 확보, 예상가격 근접금액 낙찰제 도입, 다단계 하도급 금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제안은 IT를 외주에 의존하는 다수 조직의 현실을 감안한 단기 처방에 그치거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호 수준에 머무는 걸로 평가된다.

종사자 처우를 포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 해법은 뭘까. 공공과 민간, 모든 조직이 IT전문성을 내재화하도록 유도하고, 나아가 IT인력을 회사의 중요한 자산으로 대우하도록 장려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프리랜서 SW개발자 B씨 의견이다.

“SW인력을 그냥 데려와 부리면 된다는 생각을 온 나라가 버려야 돼요. 지금처럼 주인의식 없이 SI사업 수주업체 관리만 하는 식으로는, 공공정보화 분야 문제 해결 못해요. 개발 전담인력이 조직에 내재화돼야 SW 가치가 인정받아요. 그래야 개발 일정도 급하게 가져갈 필요가 없어지고요. 그럼 결과물 품질도 높일 수 있죠.”

■진료는 의사에게, IT는 IT에게

종사자를 넘어 부서로 확대된 ‘IT 홀대 문화'를 풀기 위해선 ‘기획→디자인→개발' 순으로 이어지는 업무 프로세스의 변화와 IT와 비IT간 소통, 기업 최고경영자의 IT 이해도 향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무 프로세스 변화에 대해서 한 SW업체 PM은 “제품 기획 단계부터 기획-개발-영업이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안하면 오히려 뒤에 문제가 생겨요. 처음 기획 단계부터 개발팀은 물론 영업팀까지 합을 맞춰야 나중에 서로 다른 얘기를 안하죠. 고객사에 대응해야하는데 우리 회사 내부에서부터 말이 다르면 안되잖아요. 우리 회사는 이렇게 하는데도 종종 실수가 생겨요. 근데 아예 서로 칸막이 치고 산다면 어떻게 하나요.”

(사진=픽사베이)

업무 프로세스는 구성원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바뀌기 힘들다. 조직 간 역할 분담, 업무 성과 지표와도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차원에서 프로세스를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해야 한다. 금융권 CIO C씨는 “역할과 책임(R&R)을 명확하게 나누고 실제 업무는 가상 조직을 만들어 협업하는 방식"으로 효과를 봤다고 소개했다.

“이전에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현업 임원 밑에 IT조직이 들어가는 혼합된 조직을 구성했어요. 협업이 잘 되게 하려고 그런거죠. 하지만 IT에서 공평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불만이 생기더라고요. 평가를 잘 못 받으니까 동기부여가 안되는 거죠. 그래서 IT와 현업이 조직상으로는 독립된 체계로 일하고 실제 일은 하나의 가상조직에서 협업할 수 있게 했어요. IT와 현업 PM을 각각 세웠지만 한 테이블에서 일하게 했죠. 각자 맡은 일에 주인의식도 있어야 하고, 서로 협업을 잘 할수 있도록 소통채널도 있어야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진행된다고 봐요.”

IT와 비IT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일하려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다른 금융권 CIO D씨는 소통 능력에 대해선 IT종사자들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IT종사자들이 현업 요구에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요. 뭐 해달라고 하면 이래서 저래서 안 된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안 돼'라고 하기보다, 이런이런 문제가 있는데 현업에서 ‘이 부분만 해결해주면 어떻게 해볼 수 있다’고 얘기하는 식이 돼야 해요. IT와 비IT가 상호 보완적인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또, IT하는 사람은 혼자 프로그래밍은 잘 하지만,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방법,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능력은 좀 더 길러야 합니다.”

기업 수장인 CEO가 IT를 이해는 정도에 따라 IT업 추진력은 크게 달라진다. 비IT기업인 경우 CEO가 IT를 경영에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CIO C씨는 “CEO에게 IT를 이해시키는 일은 IT담당 임원의 책임”이라고 봤다.

“경영자가 IT자체를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IT를 기업 경영에 활용할 수 있다는 건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개 이런 경우는 많지 않아요. IT담당 임원들은 IT가 돈 쓰는 부서가 아니라 돈을 덜쓰게 하고 생산성 높이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만들어 주는 존재란 걸 보여줘야합니다.”

■ ’컴알못’과 IT는 화해할 수 있을까

종사자의 노력만으로 IT 홀대가 해소된다고 볼 수 없다. 각계 종사자들은 임직원 개인과 부서 단위뿐아니라 IT전문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직내 IT 위상이 IT를 활용할 줄 아는 경영자에게 달렸듯 산업계 IT의 위상은 IT를 소비하는 이에게 달렸다는 인식이다.

4년전 국회사무처의 실태조사에 참여한 한 개발자 발언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발주자가 당사자인데도 사업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를 못해요. 전문성이 없다보니 컨설팅을 받아서 제안서를 내기는 하지만 제안서보면 말이 안 되는 내용이에요. 담당자한테 물어도 답을 못하고, 그 항목들이 무조건 들어가야 된다고만 해요. 발주 자체가 이상하게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정상적인 발주를 내줘야 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니 기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기술에 완전히 통달해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세세하게 알지 못해도 합리적인 기준을 갖고 전체 큰 그림만 알아도 그 가치를 더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잘 안다는 건 앞서 언급된 기술 내재화 처방과 관련된다. 다수 내근직 IT인력을 직접 고용하고 외주를 최소화하는 게 궁극적 해법이다.

기술 내재화의 전제로 지속적 투자 유지가 필요하다. 기업 내부에 오랜 시간 IT를 다루는 인력을 유지하고, 전문성을 기업의 지적자산으로 축적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계 IT업체 엔지니어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단기 성과 위주로 IT를 접근해요. 싸게 만들어서, 혹은 빨리 만들어서 발표하는 걸 좋아하죠. 그러니 굳이 내부에 직원을 유지할 필요를 못느낍니다. 만든 사람이 사라지면, 성과물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사라져버려요. IT는 완성되는 순간 고물이에요. 계속 진화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회사 안의 IT 직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하게 역량을 축적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거에요.”

평가할 능력을 갖추면 패키지SW같은 기성품에도 제값을 줄 수 있다. 고질적 문제인 불공정 거래관행 해결 실마리도 생긴다. 국산SW 업체 기술개발을 겸했던 당시 대표 E씨는 다른 어떤 산업진흥 정책보다 우선 공정거래 확립을 강조했다.

“정부가 SW기업에 R&D 지원하고 마케팅 지원해 봐야, 납품할 때 단가 깎이고 착취당하는 구조에서 문제 해결되지 않아요. 공정거래 인프라가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공공 및 대기업이 SW기업에 제값 주지 않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거래 관행이 많아요.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대로 일해서 최소 단가 유지하지 않고 거래하는 곳 일벌백계 해야 돼요. 기술 침해, 인력 빼돌리기 못하게 하고. 했을 때 징벌적 배상 5조, 10조씩 물려야죠.”

‘컴알못(컴퓨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지위나 등급이 높다는 이유로 IT 전문가와 현업 종사자의 의견과, 지식을 무시하는 비정상적 행태를 없애야 한다. IT는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이다. 그를 수행하는 사람은 해결사다.

지금 처한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다면, 남보다 한발 더 앞서고 싶다면, IT에게 부탁하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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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IT 개발자?…부품과 다를 바 없어요"

IT人은 왜 늘 약자 입장에 처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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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진짜로 혁신하려거든 IT에 부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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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용, 임민철, 임유경 기자yong2@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