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를 추억함

기자수첩입력 :2017/05/22 10:27    수정: 2017/05/22 10:34

“방기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란 영화 봤어요. 꼭 보세요. 고전영화인데 아주 좋아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몇 년 전 기자에게 한 말이다. 당시 그는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이었고, 기자는 전자신문 총리실 담당 기자였다.

김 후보자는 고전영화 광(狂)이다. 1967년 상영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비롯해 다수 고전영화를 소장하고 있다. 전자신문은 그 특성상 총리실에서 메이저 매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총리실 기자들과 처음으로 간담회를 하던 날, 마이너 출입 기자의 고등학교까지 사전에 파악, 언급하며 본인이 감명 깊게 본 고전영화를 보라고 추천했다. 그가 왜 철저하고 치열하다는 말을 듣는 지 알 수 있는 계기였다.

김 후보자는 미식축구 광이기도 하다. 미국 유학 시절 미식축구를 접하고 푹 빠졌다. 보는 걸 즐기지 실제 그가 잘 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식축구(풋볼) 인기가 별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국기(國伎)나 다름없다. ‘풋볼은 모든 것(everything)’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미국인들은 미식축구를 통해 팀웍과 책임감, 리더십, 경쟁 등을 배운다. 수많은 전략이 오가는 고도의 전략 경기이기도 하다. 기획통, 전략통이라 불리는 그와 미식축구가 연계되는 부분이다.

알려진 대로 그는 ‘상고 출신의 입지적 인물’이다. 11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 세 동생과 함께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서 살았다. 가난한 집 수재들이 모인다는 덕수상고에 들어갔고, 은행에 들어가 야간대학에 다니면서 주경야독, 스물다섯살에 입법 및 행정고시 두 고시 모두를 합격했다. 법이 아닌 경제를 택한 그는 경제기획원(현 기재부)에서 다양한 부서를 거쳐 예산실장과 차관까지 지냈다. ‘학벌 패권’이 강하게 남아 있고, 명문고와 명문대 출신이 즐비한 기재부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야간대 출신인 그가 잘 나가자 내부에서 “희한한 대학 나오고도 고시 붙어서 여기까지 오네”라는 말이 오갔다고 한다.

김 후보자는 글 솜씨도 좋았다. 국무조정실장으로 재직하며 모 중앙언론에 정기적으로 컬럼을 기고했는데 출입 기자들조차 “그렇게 글 솜씨가 뛰어난지 몰랐다”는 평가였다. 무릇 리더라면 김 후보자처럼 자기 생각과 철학을 글로 쓸 줄 알아야 한다. 아이디어도 많았던 그는 아주대 총장으로 가서도 저소득 청년들에게 미국과 중국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등 기발한 여러 행사를 시행,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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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알고 있던 ‘똑똑하고, 치열하고, 철저하고, 아이디어가 많았던 김동연’이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로 지명됐다. 청년실업 해소 등 그에게 놓인 과제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이미 우리 경제는 2%대 저성장이 고착화 되는 분위기다. 주요 연구기관들은 올해도 우리 경제가 2%대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한다. 21일 기자들과 만난 김 후보자는 “앞으로 5년이 경제살리기의 마지막 기회다. 경제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비상한 각오로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김 후보자가 좋아하는 미식축구에 ‘투미닛 드릴(two minute drill)’이라는 용어가 있다. 초반이나 후반 종료 2~3분전에 득점을 시도하는 공격방식이다. 샌프란시스코가 연고지였던 미식축구 팀 ‘49ers’가 이 방법으로 네 차례나 슈퍼볼 우승을 차지했다. 김 후보자는 어떤 ‘투 미닛 드릴’을 선보일까. 그를 좋아했던 기자로서, 또 국민의 한사람으로 슈퍼볼 우승 같은 성과를 내주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