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개발자 사이트 대표 "SI문화를 바꾸고 싶다"

노상범 오키 대표 "헤드카운트 폐지...개발자를 핵심 인력으로 여겨야"

컴퓨팅입력 :2017/10/30 11:17    수정: 2017/10/30 11:17

“개발자들이 제 대접을 못받는 현재의 시스템통합(SI) 문화를 바꿔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SI는 2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게 없습니다. SI 개발자들이 소외받고 기가 죽어 있습니다. SI가 즐겁다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국내 최대 개발자 커뮤니티인 오키(OKKY)를 이끌고 있는 노상범 대표가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는 꿈이다. 오키 회원수는 5만명이 넘는다. 다양한 개발자들이 이곳에 다양한 사연을 쏟아 놓는다.

노 대표는 개발자는 아니다. 홍익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85학번). 사람만나기 좋아하는 노 대표는 대학 4년때(1997년) 홍익인터넷이라는 회사를 차려 IT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웹에이전시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국내 최대 개발자 사이트인 오키를 이끌고 있는 노상범 대표. 기술 분야 HR회사인 e브레인도 운영하고 있다.

오키에는 2013년 5월 합류했다. 오키 대표로 있다 보니 늘 개발자들과 함께 있다. IT최강 미국은 개발자 몸값이 상한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개발자들의 현실이 어떤지 노 대표에게 들어봤다.

■국내 최대 개발자 사이트 ‘오키’

=오키(OKKY)에 대해 먼저 설명해달라.

▲오키는 2000년 12월에 처음 만들어졌다. 만 17년됐다. 자바 개발자 커뮤니티로 시작해다. 현재 국내 개발자 커뮤니티 중 가장 크다. 원래 이름은 OKJSP(OK자바서버페이지)였다. JSP를 공부하던 사이트였다. 허광남 개발자가 만들었다.

나는 2013년 5월에 이 곳에 참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법인이 아니고 커뮤니티다. 게시판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구인 구직과 사는 이야기 부문이 트래픽이 가장 많다. 2015년 2월 사이트를 개편하면서 이름도 OKJSP에서 OKKY로 바꾸었다. OKJSP라는 이름이 너무 길었고, 자바에 치중한 사이트라는 느낌도 덜고 싶었다. 현진건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나오는 어린 여자 주인공 이름이 옥희다. 개발자들이 OKKY를 사랑방과 같다며 옥희와 비슷한 ‘오키’라 불렀다.

자바 뿐만 아니라 모든 개발자 언어를 포함(오케이)한다는 의미도 있다. 현재 회원 수는 5만2000명이다. SI 프리랜서 개발자들이 제일 많다. 회원 중에는 개발자들이 되고 싶은 취준생도 있다.

=개발자 커뮤니티는 국내에 몇 개나 되나

▲한 200개 정도 되는 것 같다. 거의 다 소규모다. 대형 커뮤니티는 데브피아와 PHP스쿨, 오키 등 3개 정도다. 데브피아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닷넷 기반(베이스)이고, PHP스쿨은 PHP(Hypertext Preprocessor) 기반이다. 데브피아와 PHP스쿨은 커뮤니티가 아니다. 법인으로 바뀌었다.

비영리 커뮤니티는 오키가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이들 3개를 빼면 대부분 커뮤니티는 개인이 운영하는 수준이다. 수시로 생겼다 없어져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힘들다. 페이스북 등의 영향으로 개발자 사이트들이 많이 없어졌다.

=자바 개발자 커뮤니티 대표인데 SI에 관심이 큰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자바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이 어디인 줄 아나. 바로 공공이다. 물론 서비스 하는 회사들도 많이 쓴다. 하지만 공공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공공 SI쪽이 자바를 많이 사용하다보니 자연스레 공공SI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개발자들이 사석에서 오키를 ‘개발자들의 할렘’이라고 부른다. 개발자들이 제대로 된 대우와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거다. 공공 SI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이 힘들고 불합리한 일을 많이 당하는데 우리 사이트에 와서 이런 일을 털어 놓는다.

오키가 지난 6월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개발자는 총 몇명이나 되나.

▲정확하지 않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숫자를 내놓는다. 어디까지를 개발자로 볼 지도 논란이다. 우리는 30만명 정도로 추정한다. 소프트웨어(SW) 업체 뿐 아니라 제조, 금융, 유통 등 각 산업 분야에도 개발자들이 있어 정확히 파악하는 게 힘들다. 당국이 이를 제대로 조사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정의하는 개발자는 이걸(개발)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 페이(급여)를 받는 사람이다. 코딩이나 설계, 프로젝트 매니저(PM)를 하는 사람들이다. 30만 개발자 중 프리랜서는 2~3만명 정도 되는 것 같다.

개발자를 정확히 추산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통계청에 등록되는게 사람(개발자) 정보가 아니라 기업 정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선업 프로젝트에 개발자가 많이 들어가지만 사람이 아닌 업체 정보가 등록된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코사)에도 개발자들이 등록하는데

▲코사에 신고하는 사람들은 프리랜서다. 정규직 개발자들은 신고할 이유가 없다. 삼성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이 코사에 등록할 이유가 없다. 네이버 등에 일하는 개발자들에게 코사 이야기를 하면 “코사가 뭐예요?” 할 거다.

코사는 공식적인 프로젝트 경력을 증명해준다. 하지만 증명 방법에 문제가 있다. 전수 조사가 불가능하고, 기업에서 확인을 받기 때문에 신빙성 문제를 야기시킨다.

■개발자는 실력으로 판단하고 실력으로 검증해야

=논란이 되고 있는 개발자 실력을 검증하는 방법은 있나

▲있다. 개발자는 실력으로 판단하고 실력으로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코사는 이런 능력이 없다. 그래서 경력으로 판단한다.너 어디 있었니? 전에 이거 해봤니? 이런 걸 물어보고 판단한다. 문제가 있다. 인터뷰와 코딩 테스트를 보면 개발자 실력을 알 수 있다. 삼성과 네이버, 구글 등은 좋은 실력자를 많이 갖고 있다. 뽑는 노하우와 방법이 있다. 이걸 준용해도 된다.

문제는 공공 SI에는 이게 없다는 거다. 개발자 숫자도 당국이 정확히 파악해 줬으면 좋겠다. 각 산업에 근무하는 개발자들도 많아 전수 조사가 불가능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통계학자나 경제학자들을 동원하면 개발자들을 조사하는 어떤 툴(방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통계청의 개발자 직군에도 문제가 있다던데...

▲그렇다. 정부가 정해 놓은 직군이 옛날 방식이다. 통계청 사이트에 가보면 직군을 나열해 놓은 게 있다. 4대 보험 등 여기서 만든 직군을 민간이 갖다 쓴다. 그런데 이게 너무 옛날 방식이다. 이곳부터 바꿔야 한다.

=오래전부터 오키를 통해 하고 싶은 게 있다던데

▲우리나라 SI문화와 업계를 바꿔보고 싶다. SI업계가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다. SI 개발자들이 일하고 싶은 곳이 아니다. SI 개발은 중요하다. 프로젝트 품질을 좌우한다. 사용자들에게 가치(밸류)도 준다. 그런데 이런 SI를 재미있어하는 개발자들이 거의 없다. 5%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실력 있는 선수들, 이들은 얼마든지 충분히 대접을 받을 수 있는데도 “나는 약자”고 “피해자”라는 생각이 강하다. 당당함이 부족하다. 물론 그렇게 만든 환경이 문제지만 개발자들이 너무 피해의식에 절어 있는 것도 문제다. 이걸 바꿔보고 싶다. “SI가 너무 즐겁다. 이거 돈 된다. 사람 대접 받는다” 같은 말이 나오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주자와 SW기업, 개발자 모두가 개발자와 SW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망가진 SI 개발 생태계도 복원해야 한다. 민간도 재하도급을 금지해야 한다. 개발자를 프로젝트에 연결해주는 ‘개발자 보도방’ 문제도 여전하다.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보도방’ 존재 자체가 문제 있는 건 아니다.

개발자에게 돌아갈 돈을 떼어먹는 전문성 없는 보도방들이 문제다.

재하도급이 금지되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걸러질 것이다. 제도와 함께 비즈니스적으로도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SI가 즐겁다”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카카오뱅크 같은 회사가 많이 나와야 한다.

=카카오뱅크는 어떤 면에서 바람직하나

▲카카오뱅크는 개발자를 도구로 여기지 않는다. 회사의 서비스를 좌지우지하는 핵심인력으로 본다. 카카오뱅크 서비스가 오픈하자 마자 성공한 건 이런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카오뱅크와 경쟁하는 은행들은 아직 그렇지 않다. 서비스 품질에 차이가 나는 이유다. 몇 년전이지만 충격적인 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 서울시 행사에서도 발표했다. 개발자가 어느 병원에 일하러 갔는데 어느 공간을 내 준 줄 아나. 분향소였다. 세상에 분향소에 자리를 주고 개발하라는 곳이 어디 있나. 개발자들이 이렇게 대접받으니 좋은 인력이 오겠나. 아직도 이런 곳이 일부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 비용을 단순히 머릿수로 계산하는, 헤드카운트를 없애야 한다는 말이 많다.

▲헤드카운트 문화는 정말 없어져야 한다. 개발자를 돼지고기 구분하듯이 중급 하나, 고급 둘 이렇게 구분해 돈을 주는 건 아니라고 본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품위 문제다. 이런 취급을 받으니 개발자들이 열을 받는다. 여기에 프로젝트에 따라 월화수목금금금과 야근이 불가피하다. 이러니 프로젝트 결과물이 좋을 리 없다. 공공기관 프로젝트 결과물이 엉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키가 2014년 2월 개최한 제1회 자바스크립트 컨퍼런스.

■헤드카운트 폐지하고 ‘맨아워’제 도입해야

=헤드카운트를 폐지하면 대안이 있나

▲개발자 임금을 월로 계산하는 ‘맨먼스(Man Month)’를 없애야 한다. 대신 시간당 임금을 주는 ‘맨아워(Man Hour)’제를 도입해야 한다. 맨먼스로 하다보니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일이 생긴다. 무엇보다 ‘맨아워’로 하면 발주처가 예산을 짤 때 처음부터 디테일하게 짠다.

외국에서는 프로그램 아웃소싱하는 개발자들이 전부 “나는 시간당 얼마를 받는다”고 말한다. 시간당 단가를 책정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맨먼스를 쓴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과기정통부는 이 문제가 노동부 관할이라며 신경을 크게 안쓴다.

작년인가 언제 당국이 미국의 공공 프로젝트 수행 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적이 있다. 정말 미국은 부럽게 하고 있더라.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코사가 매년 평균 임금 발표하는 것도 못하게 해야 한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는데 IT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 4학년때(97년 7월) 인터넷 가능성을 보고 홍익인터넷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웹에이전시라는 말도 내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사용했다. 인터넷 붐을 타고 2000년에 1000만 달러 투자도 받았다. 직원도 한때 160명이나 됐다.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홍익인터넷이 어려워졌다. 이후 한때 포커 선수로 활동하는 등 여러 경험을 했다. 개발자 이력은 없다. 사람을 좋아하고 체질상 문과가 적성에 맞는다. 86년도에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 몇 년간 산 적이 있는데 그때 보험대리점 등 별걸 다 해봤다.

=개발자 역사에서 ‘잃어버린 12년’이 있었다는 건 무슨 말인가

▲2000년 초반부터 약 10여년간 우리나라에서 컴퓨터공학과(컴공과) 인기가 낮았다. 내가 대학 다닐 때인 80년대만 하더라도 공부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전자공학과에 갔다. 그런데 2000년초반부터 10여년간은 컴공과 인기가 하위권이었다. 이렇게 인기가 떨어진 건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밖에 없다. 당시 컴공과를 전공한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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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개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개발자들도 이제 인식을 바뀌었으면 한다. 개발자들은 대부분 ‘개발’에만 관심이 있다. SW 정책 등에는 관심이 없다. 자기네와 직접 연관이 있는데 말이다. 개발 행사 이외에는 잘 모이지 않는다. 비 개발 행사에서 개발자가 1000명 모이면 대단한 사건이다. 우리가 오는 12월에 ‘오키콘’이라는 개발자 컨퍼런스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기술 말고 협업. 생산성, 커뮤니케이션 이런 걸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