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냐 정상화냐'...기로에 선 한국GM

사측 "경영 자구 노력", 노조 "정상화 요구 무시"

디지털경제입력 :2018/02/13 17:34    수정: 2018/02/14 11:39

국내 3위 완성차 업체인 한국GM이 지난해 말 '미래를 위한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한지 3개월만에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내리면서 향후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정상화를 위한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군산공장 폐쇄 결정 이후 완전 철수냐, 아니면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정상화냐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국GM은 군산공장을 포함해 인천 부평과 경남 창원 공장, 충남 보령공장(파워트레인 생산) 등 국내 4곳에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다.

한국GM은 지난해 11월 1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올 뉴 크루즈 디젤 미디어' 시승회에서 미래 투자 방향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당시 데일 설리번 한국GM 영업·서비스·마케팅 부문 부사장은 "한국GM 철수 하나, 안 하나"라는 질문에 "한국GM은 수익성 창출과 미래를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가겠다"며 "향후 한국GM의 투자 결정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회사 미래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소문(한국GM 철수설)에 대해 신경쓰기 보다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래 투자를 위한 언급하며 수익성 창출에 노력하겠다고 한 한국GM이 갑작스레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하고 나선 것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이 분분하다. 이중에서도 정부 및 산업은행에 대한 지원 압박과 함께 노조에도 구조조정 등 협의를 촉구하는 카드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GM은 2014년 3천332억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2015년 9천930억원, 2016년 6천315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최근 3년 누적 적자가 2조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6천억원 수준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내수판매량은 13만2천377대로 전년(2016년) 대비 26.6% 하락했다.

특히 현대차 아반떼와 기아차 K3 등과 경쟁해야 할 준중형 세단 크루즈는 지난해 이렇다할 성적을 내놓지 못했다. 트랙스, 올란도 등의 SUV도 판매량이 저조했다.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지난해 10월말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철수설에 대한 입장 표명을 직접적으로 하지 못했다.

말리부가 생산되는 부평 2공장 조립 라인(사진=한국GM)

설리번 부사장이 언급한 미래 투자 방안은 13일 배포된 '사업 구조 조정 계획 발표' 보도자료 속에 언급됐다. 공교롭게도 이 자료는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내려진 후 미디어에 배포됐다.

이날 한국GM 관계자는 "올해 5월 말까지 군산공장의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며 "군산공장은 최근 3 년간 가동률이 약 20%에 불과한데다 가동률이 계속 하락해 지속적인 공장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지난 몇 년 동안 심각한 손실을 입은 탓에 자구 노력의 일환으로 공장 폐쇄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다.

한국GM은 투자 방안에 대해 "노동조합, 한국 정부 및 주요 주주 등 주요 이해관계자에게 한국에서의 사업을 유지하고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으며, 이 계획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모든 당사자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모든 당사자들의 전폭적인 지원'은 정부 등의 유상 증자 등을 요구하는 내용과 같다.

한국GM이 3년간 400억원을 투자해 두 배 크기로 확장 개장한 디자인센터가 6일 공개됐다. (사진=한국GM)

한국GM의 이번 계획안은 우리나라에 대규모 제품 투자를 포함하고 있다. 올해 전기차 등 자율주행차 활성화 방안이 제품 투자 방안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가능성이 제기된 이유는 바로 2018년형 볼트 EV 순수 전기차 사전예약대수와 연관됐다. 지난달 15일부터 시작된 볼트 EV 사전예약은 판매네트워크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GM은 17일 오전 9시에 볼트 EV 사전계약을 다시 시작했고, 이후 3시간만에 판매 물량 약 4천700여대가 매진됐다.

이 추세대로 봤을 때 한국GM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 스마트카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한국GM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깊어진 노사갈등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는 5월까지 군산공장이 폐쇄되면, 해당 공장에서 생산되는 크루즈와 올란도는 단종된다. 한국GM이 전략적으로 내놓은 올 뉴 크루즈 디젤의 경우, 지난해 11월 출시 후 약 7개월만에 단종되게 된다. 2천여명에 달하는 한국GM 군산공장 근로자들은 갈 곳을 잃게 됐다.

한국GM 노조는 사측의 결정에 강력 반발하는 입장문을 이날 발표했다. 한국GM 노조는 "한국GM 경영진은 우리나라의 큰명절을 앞두고 '한국지엠의 존립 및 지속가능 경영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결정' 입장을 노동조합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군산공장 정상화에 대한 노동조합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어 "국민혈세를 지원해달라는 날강도식 GM 자본 요구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글로벌 GM의 고금리이자, 이전가격 문제, 과도한 매출원가, 사용처가 불분명한 업무지원비로 한국GM 재무 상태는 밑빠진 독이었고, 노동자들의 고혈로 글로벌 GM의 배만 채워갔다"며 GM 본사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한국GM 군산 공장 전경.(사진 제공=뉴스1)

한국GM 노조는 14일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내린 사측을 반대하는 집회를 군산공장 홍보관에서 연다.

한국GM은 내달 미래 투자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노사 갈등이 이미 깊어져 해당 계획이 제대로 이뤄질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노사 관계 회복을 진행하지 않고 사측이 미래 투자를 위한 지원방안을 강구하게 된다면, 해당 회사는 오래 버티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며 "한국GM은 자동차 산업이 어려울 때 자체적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탄력적으로 시간 외 근로를 실시하는 독일의 사례를 본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유상 증자를 하려면 기업 자체의 회생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아직 한국GM에서는 새로운 차종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며 "국민 혈세를 반영해야 하는 한국GM 유상 증자를 진행해야 할지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관련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군산공장 폐쇄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한국GM에 대해 경영 실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