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진은 왜 과시하려고 책을 읽는 걸까

직원들에게 한 달 책값만 3~4천만원 지원

인터넷입력 :2018/03/22 15:01    수정: 2018/03/22 16:49

‘우아한 디자이너’를 꿈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예술중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못 갔다. 예술고등학교 진학의 바람도 이루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꿈이 접혔다.

결국 그는 공업고등학교에서 일주일에 열 몇 시간을 납땜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대신 납땜을 예쁘게 하는 것으로, 본인의 ‘한’을 풀었다.

김 대표는 서울예술전문대학교에 진학해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대학이 디자인 분야의 주류에 들지 못한 탓에 사회에서 주목 받는 인재로 크는 데 한계를 느꼈다. 실력에는 나름 자신 있었지만 현실은 학벌 사회였다.

“저의 장점이자 단점은 보편적인,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가정형편 때문에 예중, 예고를 못 간 대신, 공고에 진학해 정말 예쁘게 납땜을 했어요. 그래서 작동이 안 돼 선생님한테 혼났던 기억도 나고요. 예전에 못 배웠던 게 더 자극이 돼서 지금 배우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운 좋게 네오위즈와 네이버(당시 NHN) 등 인터넷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았지만, 창업 시장은 냉혹했다. 수제디자인가구 회사를 창업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했다. 30대 중반 나이. 처자식이 딸린 가장으로서 길을 잃었다.

바로 그 때 그를 믿고 빛을 비춘 건 아내였다. 남편의 성장을 위해 어려운 살림에도 한 달에 20만~30만원을 책값으로 과감히 투자하기로 한 결정이 지금의 김봉진, 그리고 ‘배달의민족’을 꽃 피게 한 싹이 됐다.

■ 우아한형제들 한 달 도서 지원비 3천만원

2010년 창업한 회사를 지난해 매출 1천500억원을 돌파(잠정)할 만큼 성장시킨 김봉진 대표는 자신의 성장 비법을 ‘책’과 ‘독서’로 꼽는다. 10년 전 책에서 길을 찾지 않았다면 다른 삶과 결과가 있었을 것으로 단언한다.

그래서 자신을 믿고 책값에 돈을 아끼지 않았던 아내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심지어 성공의 정의를 “시간이 갈수록 배우자에게 사랑받고 존경 받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영국 출신의 화가이자 공예가 윌리엄 모리스(1834~1896)가 조판을 떠 디자인한 책. 김봉진 대표는 과거에는 책이 귀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쉽고 저렴하게 책을 사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본인이 책에서 영감을 얻고 성장했기 때문에 직원들도 책을 통해 키운다는 것이 김봉진 대표의 철학이다. 자기성장을 위한 책이라면 모든 직원에게 책 구입비 전액을 지원한다. 한 달 회사가 지출하는 책값만 3천만~4천만원이다. 김 대표 역시 한 주에 1권 정도의 책을 완독하고, 10권 정도의 책을 본다. 한 번에 3~4권의 책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돌려 본다.

“무제한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성장을 위한 책값이란 게 중요해요. 그래서 동화책, 만화책, 잡지는 사내 공론화를 통해 제외하기로 했죠. 아마 우리나라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조직이 아닐까 싶어요. 직원들이 보고 싶은 책을 다양하게 읽었으면 좋겠어요. 대신 암기해야 한다, 책은 소중히 다뤄야 한다, 완독해야 한다는 강박은 벗었으면 합니다.”

■ 독서광 경영가, 이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김봉진 대표가 내린 스스로에 대한 정의는 ‘경영하는 디자이너’, ‘푸드테크 창시자’, 그리고 ‘과시적 독서가’다. 이 중 과시적 독서가는 남들에게 읽은 책을 자랑하길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는 거의 10년 동안 매주 한권을 목표로 페이스북에 책 이야기를 올렸다. 카이스트, 서울대, 연고대 등 학벌 좋은 경영자들만큼 똑똑해 보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처음에는 그를 깊이 아는 친구들이 낯설어 하고, 손가락을 오글거렸지만 그렇게 한 달 두 달, 1년 2년이 지나가 ‘독서광’이란 별명을 얻게 됐다. 있어 보이려고 시작한 일이 어느 덧 본 모습이 되고, 책 읽는 습관 또한 몸에 자연스럽게 뱄다.

우아한형제들 사옥에는 '책 잘 읽는 방법'에 나온 인상적인 구절들이 포스터 형태로 인쇄돼 있다.

책을 통해 지혜와 지적인 이미지를 얻고, 기업가 정신을 체득한 김봉진 대표는 책 전도사로까지 나서게 됐다. 얼마 전 ‘책 잘 읽는 방법’이란 책을 내고, 한 달 도 안 돼 베스트셀러 작가에 이름을 올렸다. “다 읽지 않아도 돼요”, “구기고 밑줄 쳐도 돼요”, “많이 사야 많이 봐요”와 같은 당연한 듯 보이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했던 독서 노하우를 알기 쉽게 풀어쓴 것이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탓이다.[☞관련기사: '과시적 독서가' 김봉진이 쓴 책...‘책 잘 읽는 방법’]

“작가로써 가장 대중적인 이야기로 실험해보고 싶었는데, 이 정도면 정말 대 성공입니다. 책을 써보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 썼고, 여러 주제 중에 초보자들, 자꾸 독서에 실패하는 분들을 위해 책 읽는 방법을 써보자고 했던 겁니다.”

무언가 쓰고 싶은 욕구, 넘치는 끼와 재치, 능동적인 성격 탓에 추가로 쓰고 싶은 책도 많다. 기업문화나 자기개발, 브랜드 등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을 구상 중이다. 자기개발의 경우 시중에 나와 있는 자기개발의 비법 말고, “자기개발의 폐해 같은 걸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배민스러운’ 혹은 ‘김봉진스러운’ 어떤 것을 떠올리는 중이다.

■ “나다운 삶 살고 싶어...영감줄 때 행복해”

김봉진 대표는 앞으로 나로 사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듣거나 어떤 모습이 되고 싶기보다 그냥 김봉진 그 자체가 되는 것을 지향한다.

칼 세이건의 도서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본인이 우주에서 얼마나 먼지 같은 존재인 것을 깨닫게 됐고, 나답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거라는 나름의 진리를 얻었다.

“저는 저 다운 삶을 살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남한테 영감을 줄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빈센트 반 고흐를 참 좋아했는데, 고흐 작품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고, 저도 불꽃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 김봉진 때문에 영감을 얻었다는 말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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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따라 그린 그림.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고흐는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비운의 삶이었지만, 사후 그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이 됐다. 그의 열정적인 작품 활동과 어딘가 우울하면서도 아름다운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들은 100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영감과 감동을 주고 있다.

김봉진 대표가 고흐와 같은 삶을 꿈꾸고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영감을 그는 타고난 끼와 더불어, 책에서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