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가 뭐죠?"…공정위의 황당한 질문

[기자수첩] 시장 흐름 좀 더 진지하게 살피길

기자수첩입력 :2018/03/29 14:04    수정: 2018/03/29 14:16

“그런데 유튜브는 뭐하는 곳이죠? 한국에 회사가 있나요?”

구글과 유튜브 서비스 약관의 적정성 여부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공정거래위원회 직원이 던진 질문이다. 순간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한 직원이 그 기관을 대표할 순 없다. 하지만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 공무원이 유튜브를 모른다는 사실이 선뜻 납득되지 않았다.

구글 자회사 유튜브는 월간 사용자 수 15억명(작년 중순 기준)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동영상 플랫폼이다. 더구나 유튜브는 국내 동영상 플랫폼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어 공정위 관계자라면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업체다.

기자가 유튜브 약관을 취재하게 된 건 최근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페이스북 사태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이용자들의 통화내역까지 가져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엄청난 논란이 일고 있다. 규제 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까지 현황 파악에 나선 상태다.

그 과정에서 카카오, 라인 같은 국내 모바일 서비스까지 통화내역을 가져갔다는 논란에 휘말리게 됐다.

그런데 이번 사안을 취재하면서 통화내역 수집 공방의 근원은 구글과 관련돼 있단 사실을 알게 됐다. 구글 모바일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 운영 정책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구글 이용 약관.

잘 아는대로 구글은 안드로이드4.1 버전인 젤리빈이 나오기전까지 주소록과 전화번호를 한데 묶어 동의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따라서 구글이 OS 정책을 달리했다면 통화내역 수집 논란이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였다.

결국 페이스북 통화내역 수집 및 활용 사태 역시 그 본질은 구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구글은 지금도 사용자 통화내역을 수집, 저장하고 있다. 어디에 쓰이는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렵다.

구글 사용자 약관에 따르면 구글은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전화번호, 발신자 번호, 통화일시, 통화시간, SMS 정보 등을 수집, 저장한다. 안드로이드폰 사용을 위해서는 구글 계정이 사실상 필수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갤럭시S’와 같은 안드로이드폰을 쓰기 위해서는 반강제적으로 광범위한 개인정보를 구글에 내줘야 한다.

구글 약관을 살펴보던 기자는 내친 김에 유튜브까지 보게 됐다. 그런데 유튜브 약관에서도 사용자 입장에서 납득하기 힘든 조항이 다수 발견된다. 기자가 대충 봐도 불공정 약관으로 의심되는 조항들이 여럿 눈에 들어온다.

유튜브 약관에는 독자적인 재량으로 약관 및 방침을 수정하고 개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통지 의무도 느슨하게 적용돼 있다.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회사의 책임은 면하도록 돼 있다. 불법적인 행위가 일어나도 손해의 위험은 사용자가 져야 한다. 분쟁이 발생할 경우 피해자도 미국법을 따라야 한다.

이 정도면 '불공정 약관'으로 의심할만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공정위에 문의를 했다.

그런데 공정위는 구글이나 유튜브 약관에 큰 관심이 없어보였다. 신고가 접수되면 그 때 검토해보겠다는 정도다.

물론 공정위 담당자라고 해서 국내외 모든 서비스를 살피고 있을 필요는 없다. 공정위가 그럴만큼 한가한 기관도 아니다. 하지만 그 서비스가 국내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늘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게 경제 검찰을 자처하는 공정위의 임무다.

외국 사업자이기 때문에 더 신경쓰란 얘기가 아니다. 이젠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이 TV를 대체하는 경지까지 이른 만큼, 이 분야 지배적 사업자의 월권을 견제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기자가 접한 공정위 관계자의 발언은 실망스러웠다. 공무원 조직에서 자주 들어 본 “인력이 모자르다”, “밀린 업무가 많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예 한 직원은 유튜브가 뭐냐며 반문하기까지 했다. 외국 회사들은 규제가 어렵다는 속내까지 털어놓는다.

물론 외국 사업자를 규제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황 파악까지 하지 않고 있는 건 직무유기나 다름 없다.

구글이나 유튜브 같은 세계적인 모바일 플랫폼들은 앞으로도 국내 시장을 더욱 잠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구글은 안드로이드로 국내 스마트폰 OS시장의 90%를 독식하고 있다. 같은 우산 아래 있는 유튜브 역시 국내 동영상 플랫폼의 80%를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불공정 약관'으로 횡포를 일삼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규제 당국 공무원은 "유튜브가 뭐하는 곳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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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도 동영상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을 수많은 국내 중소사업자들은 또 어떤 기분일까?

그 공무원과 통화하는 내내 이런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