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또 카카오에 뒷덜미 잡히나

[이균성 칼럼]SNS 악몽, 내비에서도?

데스크 칼럼입력 :2018/07/12 17:18    수정: 2018/11/16 11:19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배경으로 한 합종연횡(合從連衡)은 이제 꼭 정치군사 용어로 쓰이지만은 않는다. 경제용어로도 빈번히 쓰인다. 세계 시장이 전국시대 못지않은 정글이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인들도 정치군사 전략가 못지않게 유연하고 기민해져야 할 필요가 크다는 뜻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끝없는 혁신(革新)과 함께 합종연횡의 지혜가 중요해졌다는 의미기도 하다.

기업 간 합종연횡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12일 국내에 공개된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도 그 점에서 주목해야 할 가치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로 부상할 게 분명한 자율주행차(혹은 커넥티드 카) 시장에서 벌어지는 합종연횡의 구체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특히 글로벌보다는 국내 시장에서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합종연횡이 사업자들을 어떤 전선(戰線)으로 갈라 세울 지를 잘 파악하는 게 기업 전략가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그게 정세 판단이다. 그러기 위한 핵심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이 합종연횡이 어떤 사업자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지 따져보는 것이다. 일감으로는 SK텔레콤일 수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가 미국에서 공개된 지 3년 만에 카카오내비에 얹어져 국내에 들어오기 때문.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 1위는 현재 SK텔레콤 ‘T맵’이다. 국내 내비 사용자 중 많은 사람들이 ‘T맵’ 품질을 높이 평가한다는 근거는 지금까지 많이 제시됐다. 그럼에도 SKT는 아직까지 여기서 큰 수익을 남기기보다 시장을 더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른 회사 가입자도 무료로 쓸 수 있게 개방하거나, 집약적인 연구개발 산물인 인공지능(AI) 기능을 여기에다 집중적으로 삽입하고 있다.

박정호 SK텔레콤 대표.

SKT가 그렇게 투자하는 이유는 단지 단품으로서의 내비 사업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보다는 미래 커넥티드 카 시장에서 주도적인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밑밥 전략’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완전 커넥티드 세상에서 하드웨어 기준으로 3가지 플랫폼은 TV와 PC(고정), 폰(이동), 차(주행) 등이다. 이중에서 주도적인 플랫폼 사업자가 아직까지 가려지지 않은 전쟁터가 바로 자동차 분야다.

그 시장을 노리는 건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카카오가 꼭 3년 전 내비게이션 서비스 ‘김기사’를 제공했던 전문업체 록앤롤을 인수한 이유도 그래서일 거다. T맵, 즉 SK텔레콤이 운영하는 1위 서비스에 크게 밀리던 김기사를 인수할 때는 뭔가 복안을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김기사(지금은 카카오내비)도 결국 ‘밑밥’이고 이를 토대로 카 플랫폼의 일정 지분을 차지할 생각이었을 터다.

그 복안이 구글과의 제휴였던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를 치기 위한 신라의 ‘나당연합’ 방식과 비슷한 합종연횡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모르긴 하되, 카카오는 김기사 인수 때부터 그런 전략을 구상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데 3년이 걸렸을 수 있다. 구글이 국내 직접 진입보다 카카오와 제휴를 통해 들어온 이유를 분석하는 데는 다른 글이 필요하다. 이 글은 카카오와 SKT에 집중한다.

글로벌 커넥티드 카의 주도 플랫폼을 논하는 것도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SKT와 카카오 만을 논하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싸움의 결과를 쉽게 예단할 수는 없다. 또 카카오내비가 T맵을 잡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극히 섣부르다. 다만 박정호 SKT 대표로서는, 이에 대한 첩보를 진작 입수했을 가능성이 많기는 하지만, 이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뒷머리를 잡고 고민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와 당나라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백제의 왕 또한 그랬을 것이다.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한다면 근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1위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를 이끌고 있는 박 대표는 특히 KT나 LG유플러스를 경쟁자로 보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입장을 사내에 누누이 밝혀왔던 터다. 전통적인 통신 사업보다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그리고 IoT를 더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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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의 이런 생각은 글로벌 트렌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나왔겠지만 카카오의 역할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수년전 벤처기업에 불과했던 카카오와의 싸움에서 참패했던 쓰린 아픔. 이 싸움은 아무리 힘 있는 기업이라도 관성에 얽매여 트렌드를 외면하고 혁신하지 않을 경우 처참히 질 수 있다는 것을 SK텔레콤에 처음으로 알려준 사례다. 그 작던 회사는 그 전투 이후 10조원 기업이 됐다.

그 때는 SK텔레콤 경영진이 관성에 빠져 트렌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수 있다. 그걸 결정적 패인으로 본다고 크게 틀릴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그런 태도와 문화를 바꿔야 SK텔레콤이 더 잘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박 대표가 취임한 이후에는? 얼마나 변했을까. 글쎄다. 그래서 더 재미있어졌다. 국내 카 플랫폼 시장을 놓고 벌이는 기업들의 전쟁과 합종연횡의 포문이 이제 막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