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 ‘장하준 해법’은 통할까요

[이균성 칼럼] 산업 생태계의 중요성

데스크 칼럼입력 :2018/07/25 13:02    수정: 2018/11/16 11:18

우리 경제가 위기이긴 위기인 모양입니다. 취임 이후 주로 외교안보에 집중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행보가 최근 다급해졌습니다. 재정을 확대해도 일자리가 악화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 뒤부텁니다. 규제 혁신에 게으르다고 관료들을 질타했고, 우연이라 했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으며, 경제 현장 방문 횟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청와대에 자영업비서관 자리도 신설하였고요.

산업 관련 각 부처 장관들도 현장에 가는 일이 최근 부쩍 늘었습니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거듭거듭 “기업을 위한 산업부가 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걱정입니다. 경제라는 게 100m 달리기는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내놓은 정책이 저녁에 효과를 볼 리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5년 그리고 10년을 준비해야 하는 게 경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이런 생각조차 거부된다는 데 있습니다. 경제는 기업이 알아서 살리니까 정부는 내버려두고 빠지라는 주장과 생각이 우리 사회엔 아주 강해보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팽배한 것이지요. 과연 그럴까요. 경제에 관한 한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하는 것이 반드시 정답일까요. 미국과 중국만 보더라도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정부의 입김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사진=뉴스1)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활성화에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는 쪽입니다. 최근 방한한 그는 여러 인터뷰와 강연을 통해 특히 ‘산업정책’을 강조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3대 경제정책, 즉 소득주도·혁신성장·공정경제와 관련해 “마중물만 부었지 펌프질을 안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혁신성장을 위한 산업정책이 약하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로 보입니다.

재정을 늘려 국가 주도 일자리를 만드는 건 단지 마중물일 뿐입니다. 정부도 같은 생각입니다. 중요한 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펌프질이지요. 문재인 정부는 그걸 혁신성장이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문제는 방법론인 것 같습니다. 정부는 주로 규제완화를 그 해답으로 보고 있습니다. 규제 때문에 산업 활로가 막혀있다는 판단인 거죠. 장 교수는 그러나 그게 최선은 아니라고 보는 듯합니다.

장 교수는 특히 “경제 관료가 서비스업만 강조하고 규제완화만 외치는 건 한국 경제를 망치는 길”이라고까지 했지요. 규제는 양날의 칼과 같아 사회 전체로 볼 때 얻는 쪽이 있는 반면 잃는 쪽도 생길 수밖에 없어 이를 만병통치약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사회 전체의 발전이지 일부의 대박은 아니라는 거죠. 장 교수는 그래서 중장기 비전과 생태계로서의 산업정책을 강조합니다.

제조업 생태계를 특히 강조하더군요. 그중에서도 기계와 부품소재 분야의 강소기업을 키울 수 있는 환경 조성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싱가포르처럼 작은 나라가 아니라 우리 정도의 인구를 가진 나라의 경우 제조업이 경제의 기반이 되지 않으면 지속성장이 어렵다는 판단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제조업 경쟁력이 갈수록 약해지다 보니 자꾸 서비스 대안론이 불거지고 있다는 거죠.

사실 제조 분야 강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건 장 교수의 전매특허만도 아닙니다. 이미 수도 없이 강조됐고 많은 정책이 추진됐었죠.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보면 큰 효과를 보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죠.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단편적인 정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숙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부, 기업, 노동자, 교육 등 사회 전체의 대타협 없인 나아갈 수 없는 과제지요.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과 기업이 시장을 망가뜨리기 전에 신속히 구조조정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고 경쟁력이 있는 산업과 기업 쪽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재배치하는 일은 이론적으로는 쉽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굵직한 연구개발(R&D) 예산을 집행하고 인력 양성을 책임지는 정부와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기업 그리고 더 많은 임금을 원하는 노동자의 입장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들 간에 대타협 없이 구조조정이나 규제 정책이 추진되다 보면 사회 곳곳이 갈등 현장으로 변해버립니다. 학자는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지만 책임을 져야 하는 관료는 굳이 갈등을 키울 필요가 없지요. 그 갈등을 피해 내버려두면 혁신은 사라지고 기업을 비롯한 과거의 기득권들은 주전자 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갈 뿐입니다. 기업은 힘들어지고 일자리는 더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지지요.

우리 제조업이 힘들어진 건 단지 규제가 심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경제가 성장하고 글로벌 시장 환경에서 입지가 달라지며 과거의 방식이 더 통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구조의 혁신을 말하는 것이고, 그건 단지 기업 자체의 노력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생태계를 새롭게 바꿀 때 가능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약한 고리, 즉 을(乙)에 집중될 피해의 대책입니다.

시대가 변해 생산성이 떨어지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늘 약한 고리부터 쳐내야하기 때문입니다. 규제 이슈를 포함해 지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곳들이 주로 그런 데에 해당합니다. 장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확대와 복지확대를 주장합니다. 복지 확대를 통해 약한 고리가 혁신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재원이겠죠. 세금을 크게 늘려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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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세금의 가성비를 높이면 국민이 동의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스웨덴 독일 등 유럽의 제조 강국들처럼 말이지요. 이런 나라들은 복지 확대를 통해 구조조정의 아픔을 치료하면서 결과적으로 사회적 생산성을 미국 같은 나라보다 더 높였다는 것입니다. 생산성이 낮아 경쟁력이 없는 경제주체가 사회 안전망을 통해 구조조정 되면서 생산성이 높은 조직으로 계속 바뀌어나간다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우리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정부를 믿고,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대타협을 통해 사회 안전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이 복잡한 과정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양보하며 인내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이 모든 이야기가 그저 멀고 허황된 소리이기만 할까요. 참 어렵고 답답한 문제입니다. 책장 속의 이론이 곧바로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