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CEO와 최고 IT기자 '팽팽했던 90분'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인터뷰 진수 보여준 두 고수

데스크 칼럼입력 :2018/07/26 16:18    수정: 2018/07/26 19:1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A: “우린 인증을 믿었다. 그 때문에 망쳤다. 누군가에 대해 모르더라도 공신력 있는 쪽이 인증해줄 경우 그대로 믿지 않느냐. 돌이켜보면, 그건 매우 명확한...”

B: “난 어떤 사람도 믿지 않는다.”

A: “좋다. 그런데 그게...”

B: “저널리즘엔 이런 표현이 있다. ‘어머니가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확인해보라’는.”

둘은 이렇게 90분 동안 쉴 새 없는 공방을 벌인다. 때론 날선 질문으로 공격하고, 또 때론 그 질문을 노련하게 피하면서 예리한 반격을 가한다. 최고수 권투 선수들의 멋진 경기를 연상케할 정도였다.

A는 요즘 뜨거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다. 그가 이끄는 기업은 개인 정보 유출, 가짜뉴스 유통 같은 여러 이슈에 휘말렸다. 그 문제로 미국과 유럽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기도 했다.

미국 상원에서 증언하고 있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사진=씨넷 영상 캡처)

그런 A를 상대로 B는 쉴새 없이 공격적인 질문을 퍼붓는다. 인터뷰란 형식상 B가 A를 공격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예리한 공격을 받아치는 A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새로운 얘기를 끌어내려는 B의 공세에 맞서면서 중간 중간에 하고 싶은 얘기를 끼워넣는 내공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짐작했겠지만 A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다. 그리고 B는 미국 대표 IT매체 리코드를 이끄는 카라 스위셔다. 월터 모스버그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IT 저널리스트로 꼽히는 인물이다. (☞ 카라 스위셔의 저커버그 인터뷰 기사 원문 보기)

■ 인파이터 카라 스위셔, 아웃복서 마크 저커버그

카라 스위셔는 인터뷰 기사 첫 머리에서 “나는 억만장자 기업가인 저커버그를 맹공격하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한다. "대신 그가 엄청난 영향력과 책임감을 어떻게 잘못 사용했는지에 대해 대화를 하려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 얘기만 들으면 논란에 휘말린 저커버그에게 해명기회를 제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련한 스위셔는 저커버그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집요할 정도로 페이스북 정보유출 사건을 따져 물었다. 늑장 대처한 것 아니냐고 공세를 퍼부었다. 어투는 공손했지만, 질문 속엔 섬뜩한 비수가 감춰져 있었다.

최근 페이스북은 여러 논란에 휘말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를 통해 이용자 8천5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이다. 이 사건 때문에 저커버그는 미국과 유럽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는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청문회에선 뭣하나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승자는 저커버그'란 비아냥이 나올 정도였다.

카라 스위셔는 바로 그 의회 청문회 얘기를 다시 꺼냈다. “의원들이 제대로 못했다”는 돌직구 발언까지 했다.

청문회 당시 저커버그는 “몰랐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의원들은 그 지점에서 한발짝도 더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노련한 카라 스위셔는 “어떻게 그 사실을 모를 수 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저커버그는 “그들 서버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수시로 조사 작업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결국 제보를 통해 알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건 역시 가디언 측이 페이스북에 알려줬다고 밝혔다.

리코드 간판 기자인 카라 스위셔가 작성한 마크 저커버그 인터뷰 기사. (사진=리코드)

그러면서 저커버그는 “통보받자마자 앱을 폐쇄해버렸다”고 강조했다. 곧바로 조치를 취했단 설명이었다.

맨 앞에 인용한 대화는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진다. 결국 인증받은 파트너는 믿을 수밖에 없었단 저커버그의 설명에, 카라 스위셔는 “어머니 말이라도 의심하고 확인하는 게 저널리즘의 기본”이라고 맞받아친다. (이 대목에서 저커버그는 사람들의 선의를 믿었다고 말한다. 반면 스위셔는 지나치게 좋은 면에만 너무 집중한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둘은 가짜뉴스와 러시아 해커 집단의 미국 대통령 선거 개입 같은 주제들을 놓고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특히 가짜뉴스나 혐오발언 문제를 놓곤 팽팽한 논리 싸움을 벌였다.

카라 스위셔는 “왜 인종차별 같은 혐오 발언을 제거하지 않느냐?”고 압박했다. 그러자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은 두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첫째. 모든 사람은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둘째. 공동체는 안전하게 유지해야만 한다.

이 원칙에 따라 명백한 폭력을 유발하는 것이 아닌 한 삭제하진 않는다는 게 저커버그의 설명이다. 미국의 많은 언론들은 이 대화를 토대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글도 지우지 않겠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인터뷰어인 카라 스위셔는 집요했다. 상대 선수를 궁지에 몰고 소나기 펀치를 날리려는 권투 선수 같았다. 이런 공격을 위해 그는 페이스북을 둘러싼 쟁점에 대해 깊이 있는 준비를 하고 나왔다. 현재 쟁점 뿐 아니라, 저커버그가 과거에 어떤 발언을 했는지까지 꼼꼼하게 체크한 뒤 인터뷰에 임했다.

■ 최고 인터뷰어와 내공 깊은 인터뷰이의 멋진 한판 승부

이런 공격에 맞선 저커버그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듣고 싶은 말’을 끌어내려는 스위셔의 공세를 피하면서 ‘하고 싶은 말’로 반격을 가하는 노련함을 과시했다.

저커버그는 또 이번 인터뷰를 통해 페이스북이 어떤 부분을 지향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했다. 그는 “페이스북은 소셜 미디어가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 차이는 뭘까?

저커버그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는 사람보다는 콘텐츠에 좀 더 무게 중심이 가 있다. 하지만 그는 소셜 미디어의 한 부분인 사람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페이스북은 소셜 미디어가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 카라 스위셔가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페이스북을 좀 더 강하게 압박하지 않겠냐”고 압박하자 “너무 미국 시장만 생각하는 것 아니냐”면서 멋지게 되치기한다.

나는 인터뷰는 기자와 뉴스메이커가 함께 만들어내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멋진 인터뷰 기사가 탄생하기 위해선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손바닥이 제대로 맞부딪혀야 한다.

월터 모스버그(왼쪽)와 함께 팀 쿡을 인터뷰하던 카라 스위셔(가운데)의 모습. [사진=씨넷]

카라 스위셔와 저커버거의 이번 대화는 그런 점에서 한 편의 멋진 승부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고 저널리스트와 철학을 겸비한 기업인이 만나면 어떤 수준의 대화가 오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듣고 싶은 얘기’와 ‘하고 싶은 얘기’가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요즘은 멋진 인터뷰 기사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두고 혹자들은 ‘기자들의 게으름과 패기 부족’을 탓하기도 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개인들이 군중을 향해 직접 소리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진 시대상황의 영향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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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쉬움 속에서 접한 카라 스위셔의 저커버그 인터뷰는 읽는 내내 현장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던 멋진 작품이었다.

그 뛰어난 작품을 읽으면서 멋진 독후감으로 보답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이 칼럼은 그 보답의 일환으로 쓰여진 글이다. 써놓고 보니 뛰어난 작품을 읽은 독후감치곤 좀 헐렁한 느낌이 든다. 두 고수에겐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