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vs FTC, '특허소진론' 뇌관 건드릴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반독점 소송 다시 읽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9/01/09 10:39    수정: 2019/01/09 11:1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이맘 때면 모든 시선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집중됩니다. CES에서 중요한 발표들이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미국 IT 전문매체 중엔 편집국 전체가 라스베이거스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올해도 CES발로 굵직한 소식들이 연이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새너제이에 있는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퀄컴 간의 반독점 소송 소식은 크게 보도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허 전문 블로그인 포스페이턴츠가 관련 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전 이번 소송이 굉장히 중요한 쟁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르면 칩 뿐 아니라 모바일 사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번 소송은 FTC가 2017년 1월 제기한 겁니다. 퀄컴이 칩 시장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는지 여부가 쟁점입니다. 특히 퀄컴의 필수표준특허(SEP) 라이선스 관행에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사진=씨넷)

■ 라이벌 칩 제조업체에 라이선스 하지 않는 관행 쟁점 떠올라

이번 소송에서 FTC는 퀄컴 비즈니스 관행의 문제점을 크게 네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 ‘라이선스를 하지 않을 경우 칩을 공급하지 않는’(no license-no chips) 정책

둘째. 인센티브 프로그램 (퀄컴 칩 사용할 경우 라이선스 비용 인하)

셋째. 라이벌 칩셋 업체엔 특허 기술 공여 거부

넷째. 애플과의 배타적 거래.

양측 입장에선 네 가지 쟁점 모두 중요할 겁니다. 그런데 산업 측면에선 세 번째 항목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팩트는 간단합니다. 퀄컴은 인텔, 삼성, 미디어텍 같은 칩셋 생산업체들에겐 SEP 라이선스를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SEP에 대해선 ‘공정하고, 비차별적이며, 합리적인’(FRAND) 조건으로 특허 기술을 공여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그런데 퀄컴이 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반독점 행위를 저질렀다는 게 FTC 주장입니다.

퀄컴 역시 라이벌 칩셋 업체들에게 라이선스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포스페이턴츠는 퀄컴의 법원 제출 문건에서 그 부분을 적시해줬습니다.

(사진=FTC)

문건에 보면 “퀄컴은 경쟁 칩셋 제조업체들에겐 SEP를 제공하지도, 로열티를 받지도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이와 함께 퀄컴은 자신들과 특허기술 라이선스를 하지 않은 경쟁 모뎀칩 업체들을 제소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벌 칩 제조업체들에게 특허 라이선스하지 않는 건 크게 문제될 건 없다는 논리입니다.

퀄컴은 첫날 소송 때 라이벌 칩셋 업체에 라이선스하지 않는 건 업계의 일반적인 관행이란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미디어텍 관계자를 증인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 루시 고, 작년 11월 SEP는 프랜드 제공하라고 판결

이 이슈는 반도체 및 모바일 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특허소진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특허소진이론이란 특허제품이 정당하게 판매된 이후에는 사용이나 재판매에 대해선 특허 침해 주장을 할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7년 5월 ‘렉스마트 vs 임프레션’ 판결에서 특허소진이론을 적용하면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렉스마크는 프린터 카트리지 생산 전문업체이며 임프레션은 재생 전문업체입니다.

렉스마크 제소로 시작된 이 소송에서 대법원은 “특허권자가 판매하는 순간 그 제품은 더 이상 독점 영역 안에 있지 않게 된다”면서 “그 순간부터 구매자의 개인적 재산으로 바뀌게 된다”고 판결했다.

일단 판매하는 순간 그 제품에 대해선 더 이상 독점적 특허권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허 침해 주장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특허소진이론'의 기본 논리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사진=미국 대법원)

퀄컴은 칩셋 라이선스와 관련된 이번 소송이 ‘특허소진이론’으로 확대되는 걸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보완책으로 퀄컴이 활용하는 것이 ‘경쟁 모뎀업체들에 대해 제소하지 않는 계약’입니다.

그런데 현장을 취재한 포스페이턴츠의 플로리안 뮐러는 현재 재판 상황은 퀄컴에겐 그리 유리하진 않다고 분석했습니다.

우선 이번 재판은 ‘배심원 방식’이 아닙니다. 특허소송 베테랑인 루시 고 판사가 직접 판결합니다. 따라서 퀄컴의 이론이 쉽게 먹혀들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그 뿐 아닙니다. 루시 고 판사는 지난 해 11월 퀄컴에게 라이벌 칩셋 업체들에게도 SEP를 FRAND 조건으로 라이선스해야 한다는 약식판결(partial summary judgement)을 했습니다.

■ 특허소진이론, 퀄컴에까지 불통 튈까

FTC는 7일 공판 땐 화웨이 법률 고문을 증인으로 채택했습니다. 이날 증언에서 화웨이 고문은 모바일 기기용 특허 라이선스로 지불하는 비용 중 80~80%는 퀄컴에게 지불하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화웨이도 칩셋 사업 부문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웨이는 퀄컴의 SEP에 대해 특허소진이 적용되길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퀄컴은 ‘소송 하지 않는다는 계약’만 제시했다는 게 화웨이 측 주장입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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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은 칩셋을 판매하면서 동시에 특허 기술도 라이선스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라이벌 칩셋 업체들에겐 SEP 특허 기술을 라이선스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게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입니다. 여기에 ‘특허소진이론’이 적용될 경우엔 퀄컴의 비즈니스 관행이 상당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