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도 '거래절벽'…업계 '곡소리' 끊이지 않아

박영민 기자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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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ZDNet)

"전년과 비교하면 연초 주문량 10분의 1로 축소"

"작년 상반기 말부터 납품량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올해 고객사로부터 받은 주문량도 전년과 비교하면 10분의 1로 축소됐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거래가 멈췄다'고 보면 됩니다. 올 하반기부터 업황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당장 현실은 냉랭하기만 합니다. 막막합니다."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 A사 관계자)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올해 설비투자(CAPEX) 축소를 본격화하는 가운데, 연초부터 장비 업계로부터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이어진 메모리반도체 호황이 저물면서, 허리띠를 졸라맨 반도체 업계가 대규모 금액이 투입되는 장비 투자부터 줄이고 있어서다.

■ '반도체 한파'에 몸서리치는 장비업계…"하반기 반등도 의심스러워"

7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주문·발주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건 반도체 호황이 저물기 직전인 작년 상반기부터다.

통상 반도체 장비업체는 제조사(고객사)로부터 6개월~1년 단위로 분기 초에 대량 주문을 받는다. 올해 1월에 장비를 입고하려 한다면 적어도 6개월 전인 작년 7월에 발주가 진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장비 업계는 반도체 업황 하락세로 인한 투자 위축을 일찍이 감지했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장비업체 B사 관계자는 "작년 상반기부터 주문이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그 때 비로소 '아 이제 (호황이) 곧 꺾이겠구나'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B사의 장비 발주량은 메모리 호황 절정이었던 지난해 1월 최고치에 도달한 후, 5월부터 큰 폭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어 발주량은 4분기가 시작된 10월께 소폭 상승했다가 다시 5월 수준으로 복귀했다.

B사 관계자는 하반기부터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과 관련해서도 "아직 피부로 와닿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서도 장비 주문이 그대로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하반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다시 활성화되려면 상반기부터 장비 수요가 상당량 회복돼야 한다는 것인데, 아직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장비업체 C사 관계자도 "작년 3분기가 시작된 7월과 올해 1분기 초인 지난 달 발주 계획이 얼마 차이나지 않는다"며 "다른 업체들의 상황도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로고. (사진=각 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로고. (사진=각 사)

■ 반도체 업체들, 증설 계획 없는데 투자는 더 줄인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 장비업계의 '큰 손' 고객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시설투자를 대폭 줄이면서, 앞으로 더 줄일 가능성도 염두에 뒀다는 점이다.

지난달 31일 삼성전자는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컨퍼런스 콜에서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을 고려해서 신규 투자는 하지 않고 설비투자 비중은 작년보다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규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올해 추가 증설 계획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즉, 올해 생산설비에 투입되는 장비 규모가 크게 줄어든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SK하이닉스는 더 구체적으로 "올해 장비 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40%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힌 데 이어, "애초 예상보다 투자 규모를 더 줄이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팹 투자 규모는 작년보다 약 1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업계의 설비투자 규모는 무려 20~30%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국내 장비 시장 매출은 올해 2년 연속으로 세계 시장에서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조정 영향 탓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부품인 반도체 산업이 스마트폰, PC 등 세트(완제품) 업계의 업황 사이클(주기)에 영향을 받듯, 장비업계와 반도체 제조사의 관계도 비슷하다"라며 "당해 업체들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적어도 1년 뒤의 반도체 업황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장비업계는 중요한 척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해도 올해 설비투자를 줄이면서 동시에 '하반기부터 업황이 되살아나길 기대한다'고 말하는데, 올해도 벌써 한 달이 지났고 반도체 수요 상승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도 나오지 않았다"며 "장비 업계가 불안해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영민 기자 / pym@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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