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부터 삼성까지...제품이 실패하는 이유

미국 지디넷 데이비드 게위츠 컬럼니스트 분석

디지털경제입력 :2019/04/29 16:25    수정: 2019/04/29 16:26

최근 제조업계에서 제품 실패가 잇따르고 있다. 보잉부터 삼성전자에 이르기까지 업계 거물들이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미국 지디넷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게위츠는 최근 '나쁜 결정이 어떻게 제품 실패를 이끄는가'란 기고에서 보잉사와 삼성전자를 비롯한 다수의 제품 실패 사례를 분석했다. 이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게위츠는 먼저 "가장 단순한 제품조차 생산부터 유통까지 엄청난 복잡성을 갖고 있다"며 "왜 제품이 실패하는지 알려면 제품 구성의 복잡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수병을 예로 들었다. 생수 시장은 세계적으로 600억달러 규모를 형성하고 있으며, 2천억병이 매년 소비된다. 생수병은 물 외에 플라스틱병, 뚜껑, 라벨, 박스포장비닐, 종이박스 등으로 이뤄진다. 각 구성요소가 곳곳에 퍼진 공급망에서 모여 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삼성전자 갤럭시 폴드 화면 불량 모습.(사진=마크 거먼 트위터)

물병을 만들려면 석유 시추와 원유 수송, 정유, 플라스틱 제조, 플라스틱 병 제조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간단해보이는 생수병조차 복잡한 과정을 잘 조율해야 한다. 생수병 제조를 위해 막대한 인프라를 활용해야 하고, 디자인, 설계, 제조, 테스트 등의 작업도 필요하다.

■ 보잉 737맥스, 경쟁 압박의 비극

보잉사의 737 여객기는 생수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제품이다. 부품은 36만7천개이며, 각 부품들은 수백개 파트너업체에서 제작한다. 설계와 조립, 소프트웨어 등까지 더해지며 보잉737의 복잡성은 더욱 커진다.

보잉737맥스는 기존 보잉737의 4세대 제품이다. 말린도에어가 2017년 처음으로 쿠알라룸프르-싱가포르 노선에 도입했으며, 5천12건의 주문을 받아 387대가 출하됐다. 불행히도 2건의 추락사고를 일으켜 34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추락사고는 기체 결함으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고, 결국 보잉737맥스 기종은 전세계에서 운항이 중단됐다.

737맥스는 보잉사의 다른 항공기 라인과 다르다. 이 기종은 경쟁사인 에어버스의 A320 기종에 대항마로 개발됐다. 보잉사가 경쟁 압박에 서둘러 개발한 제품이었던 것이다.

보잉 737 맥스 (사진=보잉)

에어버스 A320 시리즈는 높은 에너지 효율을 앞세워 보잉737의 주요시장인 단거리 항공노선을 잠식해갔다. 보잉은 에어버스의 추격에 압박감을 느낀 상태에서 빠른 시간 내 대항마를 만들어내야 했다.

보잉은 새로운 기체 디자인을 만드는 대신 이미 검증된 737 디자인을 채택했다. 경제적 이유였다. 그러나 기존 737 기체 디자인은 너무 오래된 설계였기 때문에 전보다 더 커진 신형 엔진을 탑재하려면 많은 보완을 해야 했다. 신형 엔진은 더 높은 랜딩기어를 요구했고, 보잉은 엔진 위치를 날개 앞쪽에 달았다.

새 엔진 때문에 기수가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미국 연방항공국(FAA)의 '영각(angle of attack: 항공기 날개와 기류의 방향으로 생기는 각도)' 새 기준을 충족하기도 힘들었다. 보잉은 이에 조정특성상향시스템(MCAS)이란 소프트웨어로 기체의 부족함을 보완하기로 했다. 그리고 MCAS의 결함이 끔찍한 추락사고를 냈다.

보잉은 737맥스 개발 과정에서 기본 설계에 수많은 변경을 가했다. 경제적 이유와 편의적 이유에 조종사 훈련의 효율성 증대도 한 이유였다. 추락사고 후엔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의 문제가 사고의 원인이긴 하지만, 애초에 코드로 결함을 메우려한 결정 자체가 더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 갤럭시 노트7, 조바심이 낳은 실패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은 2016년 출시됐다. 출시 초기 배터리 발화사고로 결국 최악의 실패작이 됐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치열한 경쟁이 나은 비극이었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아이폰7에 한발 앞서 신제품을 출시하려 했다.

삼성전자는 배터리를 수급하는데 낮은 등급의 공급사를 선정했다. 이 공급사는 성능과 내구성 실험을 통과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스마트폰과 항공기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복잡성은 모두 가졌다. 갤럭시 노트7은 주머니에 들어가는 슈퍼컴퓨터다. 이 컴퓨터의 부품들은 잘 쓰이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지고, 미세한 공정으로 생산된다.

삼성 갤럭시노트7 테스팅 랩 모습.(사진=삼성전자)

배터리는 하루 이상의 전력을 컴퓨터에 공급할 만큼 갖고 있다. 화학물질의 적절한 혼잡이 배터리의 수명과 반복적으로 충전을 가능하게 한다. 발열과 폭발 없이 전기를 소모하려면 상당한 혁신이 필요하다. 갤럭시 노트7은 수많은 부품과 복잡한 공급망 속에서 단 하나의 잘못된 부품을 선택함으로써 참사를 맞았다.

■ 갤럭시 폴드, 새 카테고리의 난관

갤럭시 노트7과 비교해 갤럭시 폴드는 단순한 결함을 가졌다. 화면이 타버리거나 폭발하진 않았다. 그 대신 리뷰어에게 지급된 일부 제품에서 메인화면의 플라스틱 필름이 떨어져나갔다. 일부 리뷰어의 기기는 혹이 돌출되거나 화면 한쪽이 작동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결국 기기의 결함을 수정하기 위해 출시를 연기했다.

의외의 문제였다. 갤럭시 폴드는 화면을 접는 첫 스마트폰 중 하나다. 작은 태블릿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게 하는 혁신을 담았다. 그러나 화면을 보호하는 플라스틱 필름을 떼어내지 못하게 하는 식의 보호 방안이 설계에 들어가지 않았다.

갤럭시 폴드 메인화면의 보호막

2000년대 이래 전자제품 소비자는 새로 구매한 전자기기에서 비닐필름을 벗겨내는데 익숙하다. 기기에서 비닐을 벗겨낸 후 사용을 시작하는 걸 당연한 순서로 여긴다.

결함 보도 초기에 삼성전자는 리뷰어의 잘못된 행동으로 책임을 돌리는 분위기로 몰아갔다. 출시 강행까지 갈 분위기였지만, 논란이 확대되자 삼성전자는 결국 출시를 연기했다.

화면 보호필름 문제만 두고 보면, 삼성전자는 소비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행동 패턴을 강제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소비자 행동을 제조사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8에서 시작메뉴를 없앴다가 실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혁신적 카테고리를 처음으로 여는 건 필요하다. 소비자를 새 카테고리에 적응시키는데 항상 어려움이 따른다. 아이폰과 앱스토어란 카테고리도 일반적인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폴더블폰도 마찬가지다. 200만원 이상하는데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해야 하는 기기가 일반인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건 어렵다.

삼성전자에게 갤럭시 폴드는 아직 실패작이 아니다. 제품의 약점을 보완해 더 내구성 있게 내놓을 기회가 아직 있다.

■ 기업 의사결정 과정의 실패 요소

모든 제품은 디자인, 개발, 생산 등의 과정을 거친다. 각 단계마다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하나의 잘못된 결정이 제품 전체를 실패로 이끈다.

▲경쟁 압박

무주공산에 있는 제품은 없다. 제품 간 경쟁은 종종 격렬해진다. 경쟁사의 새 기능과 역량은 추격자를 압박한다. 기업은 이때 현격한 격차를 벌리거나 맹추격에 도전하는 선택을 포기할 수 있다. 아주 약간 더 낫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따라잡고 만다. 이런 전략은 제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실패를 초래한다.

▲기술 미성숙

애플도 최근 제품 하나를 출시하지 못하는 실패를 보여줬다. 무선충전기인 에어파워 출시 취소 사례다. 애플은 소비자에게 만족할 수준의 무선충전기를 내놓을 수 없다는 판단을 했고, 취소를 결정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도 받지만, 덜 여문 제품을 판매했다가 입었을 피해를 감안하면 용감한 결정이었다. 대부분의 기업은 미성숙한 제품이라도 일단 내놓고 최고의 결말을 맞길 기도하기 쉽다.

▲신제품 카테고리

갤럭시 폴드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새 카테고리를 만들거나 혁신적 제품으로 시장을 개척해야 할 때, 첫 작품이 최고의 시간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완전히 새 카테고리였던 구글 글래스도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했다. 구글이 대중 시장을 겨냥하지도 않았고, 주류에 들어갈 준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디자인 실수

윈도8이 대표적인 사례다. 윈도8은 전통적인 윈도 운영체제의 핵심 UI였던 시작메뉴를 없앴다. 윈도 OS는 숙달된 이용자를 주축으로 삼는 희귀한 제품이었는데, 터치와 제스처에 집중한 윈도8의 새 UI는 이용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존 윈도 기반 소프트웨어를 구동할 수 없는 윈도RT도 깔끔한 디자인이었지만 소비자에게 외면받았다. 윈도8은 나쁜 디자인 결정 때문에 혁신적 기술이 빛을 보지 못한 제품이었다.

▲사용자 행동을 강제할 수 있다는 예단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8의 새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사용자의 행동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졌다. 시작메뉴를 없애도 일반 사용자가 스마트폰처럼 쉽게 적응할 거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혼란스러워했고, 기업 고객은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고 윈도7에 머물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10에 이르러 원상태로 디자인을 바꿨고, 윈도10은 시장에 안착했다.

▲출시 일정에 대한 약속

기업은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소비자에게 판매 시작 일자를 약속한다. 약속을 지키는 건 당연한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무리하게 약속을 지키려다 큰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비스타가 대표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고객은 윈도비스타 납품일을 약속받았다. 윈도비스타는 무수한 버그로 가득한 미완성품이었지만, 출시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출시됐다. 서비스팩1을 내놓기 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매자 모두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제한을 두는 결정

디자인이 제품을 죽일 순 없어도, 소비자의 구매를 제한할 수는 있다. 애플의 여러 제품이 대표 사례다. 애플 매직마우스2는 충전 중에 쓸 수 없다. 애플TV에서 터치 리모컨은 어둠 속에서 거의 쓸모가 없다.

▲기능성보다 스타일에 집중

새롭게 지은 애플의 본사는 유리문으로 출입구를 만들었다. 직원 다수가 유리문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걸어가다 부상을 당했다. 애플은 디자인에 특화된 이 유리문에다 스티커를 붙여 부상을 주의하도록 표시해야 했다.

▲내부 무결성의 믿음

휴지통 모양의 맥프로는 의도했던 소비자층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가격은 너무 비쌌다. 지금도 애플 홈페이지에서 판매되고 있지만, 그것을 사려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불필요하고, 복잡한 기능의 확장(feature creep)

기업은 혁신을 거듭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새 기능을 계속해서 확장하다 불필요한 요소를 늘려버리곤 한다. 아무도 쓰지 않는 기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제품은 복잡한 걸 싫어하는 소비자에게 외면받기 쉽다. 기능과 기능이 충돌하면서 혼돈을 야기하기도 한다.

▲위원회에 의한 디자인

'위원회가 낙타를 말로 만들었다'는 격언이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해 의견을 관철시키면서 엉뚱한 결과를 낫는다는 뜻이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위원회 방식의 의사결정구조는 내부 구성원의 역량과 소통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낸다. 내부, 외부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면서 시장 수요를 오판하기 쉽다.

미국 육군의 브래들리 장갑차가 대표적 사례로 통한다. 브래들리 장갑차는 원래 병력수송용 장갑차로 고안됐지만, 군부대의 요구사항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설계가 계속 바뀌었다. 결국 수송, 정찰, 전투 등 어디에도 쓰기 애매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17년 동안 140억달러의 비용이 투입됐고, 수년의 보완 작업을 거치고서야 운용가능한 수준이 됐다.

▲공급망의 위험 요소

기업은 공급망 관련 의사결정에서 최선보다 차악을 선택하기 쉽다. 100% 이상적인 조건이 없기 때문인데, 이런 공급망의 위험요소가 제품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원료 가격 상승이나 신규 공급사 선정 등은 제품의 가격을 변동시킨다. 자원 고갈 혹은 공급사의 폐업은 공급망의 가용성을 감소시킨다. 이는 낮은 품질의 부품을 사용하도록 하거나, 재설계를 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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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풍토도 위험요소 중 하나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처럼 정치가 상품 구성품의 조달에 큰 영향을 준다. 경쟁자가 핵심 공급사를 인수하는 것도 위험 요소다.

갑작스러운 배송 시간 변경도 자원조달을 어렵게 만들거나 출시를 지연시킬 수 있다. 부품 공급사의 생산량이 감소하면, 추가 공급사를 선택하거나 재설계를 하게 된다. 자칫 불완전한 제품을 허용할 수도 있다. 태풍,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도 공급망의 위험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