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제조분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18부 - 인더스트리 4.0과 노동 4.0

전문가 칼럼입력 :2020/01/09 10:04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독일의 제조혁신을 의미하는 ‘인더스트리 4.0’은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었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어김없이 인더스트리 4.0이 얘기된다. 그런데 지나치게 기술중심적으로 논의되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든다. 기술혁신은 산업 발전과 경쟁력의 기초가 된다. 때문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 기술혁신이 사회적 수용성을 얻지 못하면 바람직하지도 않고 지속가능성도 없다. 모든 혁신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사회적 수용성이 뒷받침 되어야 강력히 추진될 수 있으며, 그 기대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바라보는 시야를 기술적 관점에서 사회적 관점으로 좀 더 넓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어떻게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산업정책적으로 강력히 추진될 수 있을까?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 사회적 수용성이 높다는 것은 무엇보다 독일의 금속노조인 IG Metall이 인더스트리 4.0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데서 볼 수 있다. 독일의 금속노조는 현재 인더스트리 4.0을 위한 노사민정학의 정책적 대화기구라 할 수 있는 ‘플랫폼 인더스트리 4.0’, ‘산업의 미래 연합’, ‘미래의 모빌리티 국가 플랫폼’ 등에 적극 참여, 4차 산업혁명을 함께 이끌어 가고 있다. 고용불안을 느껴 기술혁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국의 노조와는 대조적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걸까?

독일에는 인더스트리 4.0을 말할 때마다 따라오는 또 하나의 개념이 있다. ‘노동 4.0(Arbeit 4.0)’이다. 이는 2015년 노동사회부에서 노동 4.0 ‘녹서(Grunbuch)’ 및 ‘백서(Weissbuch)’를 발간하면서 추진한 노동정책으로, 핵심은 디지털 전환이 사회적으로 공정한 전환이 되고, 그래서 모두에게 윈·윈 게임이 되도록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동안 기술 발전은 노동의 세계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 1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촉발시켰고,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대량생산체제를 발전시킨 2차 산업혁명은 단순반복 작업을 대량으로 만들어내 냈다. 생산성은 높아졌으나 지루한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은 일의 흥미와 동기를 잃었다. 노동은 아무런 의미 없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이러한 ‘노동 도구주의적’ 의식 속에서 대립적 노사 관계가 싹텄다. 컴퓨터가 산업현장에 적용되는 3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의 세계는 양극화된다. 신기술의 도입으로 전문 인력의 수요가 늘어나긴 했지만, 생산라인의 저 숙련 단순 반복 작업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면 CPS(Cyber Physical system, 사이버물리시스템)를 기반으로 기계·인간·제품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기업과 국경을 넘어 전 가치 창출 사슬이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의 세계는 어떻게 변화될까? 아직 모른다. 고용, 숙련, 노동 조건 등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서로 모순되고 상반된 결과들만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기술혁신의 결과는 기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비전이 필요하고 정책이 필요한 이유이며, 인간의 능력을 키워야 할 이유다. 2013년에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권고안에서는 다음과 같은 비전을 말한다.

“인더스트리 4.0은 자원과 에너지의 효율성, 지속가능한 생산방식 및 인구학적 변화와 같은 현재 당면한 도전적 과제들을 극복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자원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전체 가치 창출 네트워크를 넘어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인구변화에 맞게 합리적으로 설계되어질 수 있다. 노동자들은 지능형 보조 시스템의 도움으로 창의적이고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직무에 집중하고, 지루한 단순 반복적 작업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점점 더 길어지는 직업생활 속에서도 고령자들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고령화로 인한 전문 인력의 부족 현상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연한 작업 조직은 노동자에게 직업과 생활 및 재교육을 잘 조화해 나갈 수 있게 해줄 것이며, 일과 생활의 균형을 높여줄 것이다.”

인더스트리 4.0에는 그동안 1차, 2차, 3차 산업혁명에서 이루지 못한 인간중심의 경제와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노동 4.0의 정책적 취지는 이러한 인더스트리 4.0의 기회를 살려보자는데 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능력이다. 여기서 과거의 기술혁신과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인간을 기술로 대체하려는 ‘자동화’의 관점이 아니라 기계의 장점인 정확성 및 스피드와 인간의 장점인 유연성 및 창의성을 결합시켜 가치 창조 과정을 최적화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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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 노동 4.0은 특히 교육과 조직 혁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인더스트리 4.0은 ‘인간 4.0’과 ‘조직 4.0’이 결부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특히 교육 분과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노동자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켜 기술 변화로 야기되는 직무 이동을 원활하게 하고, 좀 더 흥미롭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이렇게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볼 때 이를 뒷받침하는 노동 4.0도 같이 보아야 ‘독일 모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독일은 산업 정책(인더스트리 4.0)과 노동 정책(노동 4.0)을 결합하여 기술혁신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고, 국제 경쟁력과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한다. 이 모델이 성공하고 있음은 아래 도표가 입증해준다. 높은 노동 비용과 짧은 노동 시간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금속 산업과 전자 산업의 고용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인 2009~2010년을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

[그림] 독일 금속 및 전자 산업의 고용 추이 (2005~18년 상반기). (출처=독일연방통계청, 독일 금속노조, 산업정책 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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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현)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 상생형 지역일자리 자문위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 공익위원.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는 '산업사회의 이해(공저)', '기술변화와 작업장혁신(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