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 긴급대책, 12·16부동산 대책과 비슷...법절차 무시해 위헌적"

16일 정부 가상통화 긴급대책 위헌심판 공개변론

컴퓨팅입력 :2020/01/15 18:19    수정: 2020/01/16 07:55

"2017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은 법률에 의거하지 않고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위헌적 조치다. 초고가 주택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 12·16부동산 대책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가상통화 관련 긴급조치 대책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정희찬 변호사는 최근 서울 종로에 위치한 안국법률사무소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아무리 필요한 규제라도 적합한 절차 없이 도입되면 안 된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정 변호사는 2017년 12월 13일 당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정부 가상통화 관련 긴급 대책'을 발표하고 이후 28일 금융위원회가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 도입'을 예고한 직후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국민의 기본권인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긴급대책 발표와 후속조치인 실명제 도입이 적절한 절차를 무시하고 이뤄져, 국내 4대 거래소에서 신규 가입자가 아예 거래할 수 없는 시기가 발생하는 등 재산권의 심각한 제한을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정 변호사는 이번 건이 단순히 가상통화 규제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국민 통제가 필요한 경우 적절한 절차 없이 규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보는 정부의 사고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설명이다.

안국법률사무소 정희찬 변호사(사진=지디넷코리아)

이런 맥락에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도 같은 문제가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가상통화 긴급대책은 15억 이상 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 12·16 부동산 대책과 본질이 똑같다"며 "대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적 판단이 섰다면 법률에 의해서 실행해야지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 한마디로 이뤄지면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오는 16일 개최해,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보통 공개변론은 중대한 사회적 변화나 정치적 사건에 대해 이뤄진다.

정 변호사는 이번 공개변론의 의미에 대해 "이 건이 초법적인 규제로 국민을 통제하려고 했다는 점과 관치 금융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헌재가 이 건을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건에 대해 위헌 결정이 안 나온다면 앞으로도 정부가 법률에 의거하지 않고 국민들을 통제할 명분을 얻게 될 것"이라며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래는 정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Q.어떤 점에서 2017년 가상통화 긴급조치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나?

"재산권은 헌법에서 보장되는 기본권이다. 국가가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지만, 이 경우 법률로써 해야 하고 정당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되어 있다.

암호자산도 재산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교환이 가능해야 한다. 이게 재산권의 본질적인 기능이다. 특히 시장경제 체제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재산권 행사의 대표적인 경우는 시장의 처분이다. 이게 불가능하면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암호자산의 경우에는 가상통화 거래소가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거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에서 암호자산 처분을 제한한다면 재산권을 제한하는 조치다.

먼저 2018년 1월1일부터 2018년 1월29일까지 있었던 가상통화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4대 거래소에 신규 가입이 불가능했다. 거래를 위한 계좌 발급이 안됐다. 법률가로서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2018년 1월30일부터 현재까지도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가입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거래소의 법인 계좌와 동일 계좌를 개설하고, 이것을 가지고 실명확인을 해서 이 거래와 해당 거래소의 가상 계좌를 패키지로 묶어서 이 둘 사이에서만 자금이체가 가능하다록 했다.

이런 조치가 재산권을 시장에서 처분하는 형태로 행사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제한한 거라고 본다."

Q.규제 도입이 필요했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이런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규제 필요성은 새로운 분야에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떻게 규제하느냐가 규제를 하느냐 마느냐보다 중요할 수 있다. 어떻게 규제를 하느냐에 대한 입장 정리나 기본 태도가 규제 자체보다도 중요하다. 규제가 정립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시장 경제질서를 채택한다고 헌법에 아주 자세하게 써 있다. 절차를 어떻게 거쳐야 한다든지, 급하게 규제를 도입할 때는 어떻게 하라든지 다 쓰여 있다.

예를들어 급하게 규제 도입이 필요한 경우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내리면 된다. 금융실명제 도입 때 그렇게 했다.

하지만 가상통화 긴급조치는 법률 없이 은행의 팔을 비틀어, 은행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국민들을 통제한 것이다. 이것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법률로써 해야 한다는 '법률유보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가상통화 실명제를 긴급재정명령으로 도입했다면 개인적으로 박수를 쳤을 것 같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긴급한 경제 이슈에 대해서 공무원들이 신속하게 쟁점을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2017년 내내 미적거리고 은행장들 불러서 회의만 하다가 막판에 도저히 안 될거 같으니까 당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마이크잡고 금지시킨 것이 문제다.

이번 조치는 15억 이상 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금지와 본질은 똑같다. 필요가 있으면 대출을 제한할 수도 있겠지만, 법률에 의해서 해야 한다. 공교롭게 이번에도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월 16일에 초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이 17일부터 금지된다고 발표했다. 16일에 발표하면서 그 다음날부터 금지된다고 한 것이다.

규제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적절한 절차를 밟으라는 것이다. 일단 마이크 잡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면 규제가 명확하지가 않다. 주택담보대출 제한도 어떤 경우에 대출이 안 된다는 것인지 일선에서 혼선이 크다. 두 사건은 법률적으로 보면 쟁점이 동일하다."

Q.피청구인인 금융위원회는 어떤 입장인가

"금융위는 국민을 통제한 적 없고, 단지 은행에 대해서 행정지도를 했다고 한다. 행정지도도 권력적으로 한 게 아니고 협조를 요청한 것이고, 은행이 협조를 잘 해줬을 뿐이다고 하고 있다. 은행에 대한 행정지도는 금융위의 역할이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권력적이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정부가 은행에 대한 인가권과 인가 취소권을 가지고 있고, 은행 내부의 임원과 주요 직원의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또, 국민에 대해 이뤄진 조치가 아니라는 점도 납득할 수 없다. 금융위는 은행에 대해서 행정지도했다지만, 결국엔 은행을 이용하는 국민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Q.금융위가 가이드라인으로 할 수 있는 규제가 아니라고 보나

"2018년 1월 30일부터 실행되고 있는 이 가이드라인이 우리나라 국민 전체에 대해서 실효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문제다.

가이드라인을 보면 행정처분의 형식까지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기관 중에 이런 형태의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기관이 어디있나. 국회 밖에 없다. 이런 일을 국회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고 금융위원회가 가이드라인 하나로 하고 있다. 이게 우리나라 민주주의 현실이다.

이번 건이 합헌이라고 판결 나온다고 상상해봐라. 은행이 결합돼 있지 않은 사회분야가 없는데, 그럼 정부가 다 은행을 통해서 모든 분야를 통제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되면 국회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

Q.가상통화 사업자에 대한 규제 방안을 담은 특금법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제 법률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 사안에 대한 위헌 소지를 가리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보나

"이 건에 대해 위헌 판단이 안 나면, 정부는 앞으로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는 1~2년의 시간 동안 법률에 의거하지 않고 국민들을 통제할 것이다. 결국엔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것이다.

최신 판례를 보면 교정시설 수용자의 처우와 관련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건이 있었는데, 소 제기 직후 위헌적 행위를 중단했다. 기본권 침해 상태가 해소된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위헌적 행위를 하고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단을 할 때까지 상당한 기간동안 위헌적인 행위를 허용하는 면제부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서 사후적으로 판단했다."

Q. 이 건이 IT산업에 갖는 의미도 있을 것 같다

"아무리 적합한 규제라도 절차에 맞지 않게 도입된다면 그 시장의 참여자들은 불안할 수 밖에 없고, 예측 가능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예측 가능성이 없는 사업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그 사업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규제 내용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 규제를 도입하는 과정이 불투명하면, 시장 참여자들이 제대로된 시장 예측이나 사업 전망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결국에는 정부의 입맛 맞고 정부 말을 잘 듣는 업체들만 살아 남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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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는 신산업분야의 사활을 결정지을 수 있다. 경제적 창의를 국민들이 자유롭게 잘 발휘할 수 있는 기술 분야에 있어서는 국가가 어떻게 규제에 접근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가상통화 자체도 물로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국가가 새로운 산업 분야에대 해서 규제 필요를 느낄 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느냐가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