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마케터와 금성에서온 개발자?

마케팅 수장이 IT 예산을 주무르는 시대 온다면…

일반입력 :2014/04/01 18:11    수정: 2014/04/02 08:15

황치규 기자

언제부터인가 IT부서나 개발자를 거치지 않고 마케팅 및 회계 담당자들이 바로 쓸 수 있는 IT기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그동안 현업 담당자들이 IT기술을 도입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IT부서 지원이 필수적이었는데 최근들어 IT조직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주는 IT기술이 주목받는 모습이다.

현실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일각에선 'IT부서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파격적인 얘기까지 들린다.

시장 조사 업체 가트너는 2017년이 되면 마케팅 수장인 CMO가 IT부서를 대표하는 CIO보다 많은 IT 예산을 집행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포레스터리서치는 CIO가 특정 고객 접점 기술과 업무 책임을 CMO에게 넘겨야 한다는 대담한 주장까지 펼친다. 기업 내부의 IT도입과 운영에 있어 마케팅 조직이 갖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지난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렸던 어도비 서밋: 디지털 마케팅 컨퍼런스에서도 마케터들을 위한 IT기술은 흥미로운 주제였다.

이번 행사는 시장 조사 업체가 아니라 마케터들을 상대로 직접 IT솔루션을 팔아 먹고사는 회사가 던진 메시지라는 점에서, 마케팅과 IT조직간 달라진 역학관계를 현실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2가지 제품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마케터를 위한 모바일 웹앱 개발툴인 '폰갭 엔터프라이즈'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 마케팅을 위한 콘텐츠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 어도비 익스피어리언스 매니저(AEM)였다.

폰갭 엔터프라이즈는 마케터들이 모바일 앱 업데이트 및 관리를 직접할 수 있게 해준다. 처음 개발은 개발자의 몫이지만 이후 관리는 마케터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모바일 앱 개발 및 관리는 개발자들의 몫이었다. IT를 다룰줄 모르는 마케터들은 모바일 앱을 업데이트해야할 경우 사소한 것이라도 개발자들의 힘을 빌려야 했다. 그러다보니 적시에 필요한 프로모션을 펼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어도비는 '폰갭 엔터프라이즈'를 통해 이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어도비에 따르면 폰갭 엔터프라이즈를 통해 마케팅 담당자는 앱 개발 기술 없이도 앱 콘텐츠를 쉽게 업데이트하고, 앱 리뷰 및 반응 등도 살펴볼 수 있다. 직관적인 드래그 앤 드롭 기능을 제공해, 이미지, 비디오, 상호 작용 성격이 강한 요소, 텍스트를 포함한 앱 콘텐츠를 쉽게 수정하고, 미리 볼 수 있다.

폰갭 자체가 크로스 플랫푬용 하이브리드 웹앱 개발 프레임워크인 만큼, 폰갭 엔터프라이즈를 통해 마케터들은 iOS와 안드로이드를 포함한 다양한 플랫폼상에서 모바일 앱을 바로 업데이트할 수 있다.

AEM은 어도비 디지털 마케팅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콘텐츠 관리 시스템(CMS) 역할을 한다. 폰갭 엔터프라이즈로 제작된 모바일 앱은 AEM과 결합될 수 있고 모든 앱과 모바일 사이트 또는 웹사이트 상에서 일관된 콘텐츠 관리가 가능하게 해준다.

웹사이트 등 다양한 온라인 채널에서 콘텐츠를 관리할때도 마케터들은 지금까지 IT부서의 힘을 많이 빌려야 했다. 그러나 AEM을 통해 마케터들은 독자적인 콘텐츠 관리가 가능해졌다. 마케팅 담당자들은 AEM이 제공하는 드래그 앤 드롭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웹에서 애플리케이션으로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고 편집할 수 있다.

폰갭 엔터프라이즈와 AEM을 보면 마케터들이 IT부서 없이 IT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작 단계에서 IT부서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IT부서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는건 지금 단계에선 심하게 오버액션이다.

그럼에도 일단 IT구축이 끝난 후에는 예전과 비교해 마케터들이 자력갱생이 가능한 환경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IT부서나 개발자들에게는 '잡무'로 인식될 수 있는 성격의 일들은 마케터들이 직접 처리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잡무를 놓고 크고 작은 갈등이 벌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최근의 기술 흐름은 마케터나 IT부서 모두에게 희소식으로 비취질 수 있다. IT부서와 마케팅 조직은 잡무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부담을 줄이는 대신 기업 핵심 전략을 놓고 더욱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어도비 역시 마케터들을 위한 IT기술의 등장은 전략 단계에서 IT조직과의 협업을 더욱 요구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론대로 굴러갈지는 의문이다. 잡무도 밥그릇 관점에서 바라보면 IT부서 멤버들에겐 헤게모니의 약화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마케팅과 IT부서는 또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컨설팅 업체 액센츄어가 2012년 전세계 10개국 CMO 405명과 CIO 252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CMO와 CIO는 동상이몽을 꾸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설문에 응한 CIO 중 77%가 CMO와 협업하고 전략과 계획을 함께 조율하고 싶다고 답한 반면 CMO는 56%만이 CIO와 협업을 원한다고 대답했다.

또 CMO 중 36%가 IT 부서에서 가져오는 결과물이 기대에 못미친다고 했고 CIO 46%는 마케팅 부서가 비즈니스가 필요로하는것 보다 낮은 가치를 제공한다고 답했다.

CMO 30% 이상은 IT 부서가 의사결정과정에서 마케팅 부서를 제외한다고 생각하고있으며, 필요한시간과 IT 인력도 제대로 지원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의 CMO들이 IT 부서가 마케팅은 비즈니스에 꼭 필요한 필수부서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믿는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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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만 놓고보면 CMO와 CIO은 가까운 사이로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마케터들을 위한 IT기술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 CMO와 CIO간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함성소리도 계속해서 울려퍼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 둘의 관계를 담은 공이 어디로 튈지는 예측불허다. DNA가 다른 마케터와 개발자들을 포함한 IT부서 멤버들은 화성과 금성 사람 사이처럼 살아갈까 아니면 중간 어딘가에서 만나 제대로된 협업을 할 수 있을까? IT기술의 발전속에 마케팅과 IT부서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중대 국면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