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관광패키지, VR 백화점도 나올 것"

현대원 한국VR산업협회장 인터뷰

컴퓨팅입력 :2015/10/27 11:24

황치규 기자

가상현실(VR)은 국내외 IT시장의 중량급 변수다. 틈새를 벗어나 이대로 가면 메가 트렌드로 뜰 것 같다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거물급 회사들의 출사표도 쏟아지고 있고, IoT 이후 최고의 키워드로 VR을 꼽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내도 VR을 둘러싼 열기는 점점 고조되는 양상이다.

뜨거워지는 열기 반대편에는 VR 회의론도 있다. 회의론의 밑바탕에는 이번에도 거품일 수 있다는 의심이 깔렸다. 영화 아바타 열풍 이후 불어닥친 3D 콘텐츠의 흥망성쇠를 VR도 그대로 따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2009년말 개봉된 아바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국내 IT시장은 3D 열풍에 휩싸였다. TV업체들은 3D TV를 앞다퉈 내놨고 3D 콘텐츠 전문가를 키우자는 취지 아래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IT 시장은 빠르게 3D 중심으로 재편될 듯 보였다.

그러나 열기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았다. 기대와 달리 3D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은 소수에 그쳤다. 수요 부진이 계속되자 3D 열풍도 어느순간 확 수그러들었다. VR 회의론의 전후 내막은 대충 이렇게 요약된다.

3D 열풍의 흥망성쇠를 강하게 기억하는 이들에게 지금 확산되고 있는 VR 대세론은 과연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를 주제로 기자는 최근 9월 출범한 한국VR산업협회 현대원 회장(서강대학교 교수)과 인터뷰를 가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3D과 달리 VR은 메가트렌드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3D는 당시 주변 상황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했지만 VR은 관련 기술이 함께 발전해 의미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현 회장은 3D를 "너무 일찍 날아온 제비"에도 비유해 눈길을 끌었다.

"어떤 시장에 에너지가 모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3D 열풍은 이른감이 있었어요. 세상이 3D로 바뀔거라고 보고 엄청난 투자가 이뤄졌지만 결국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3D가 VR 확산을 위한 씨앗은 뿌렸다고 봐요. 입체감이 이런거구나 하는 개념을 만들어 준거죠. VR이 VR답게 되려면 엄청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합니다. VR이 나온지 오래됐는데도 뜨지 못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요. 컴퓨팅 파워가 충분히 발전했고 사람의 감각을 잡아낼 수 있는 디바이스, 촉각이나 눈 움직임을 추적하는 기술 등이 모두 발전했어요. 인터페이스 기술, 구현 소프트웨어 및 엔진도 라인업이 잘 갖춰져 있고요. 한마디로 VR을 VR답게 구현할 수 있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적인 인프라가 만들어지면서 생태계 탄생을 위한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는 겁니다.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한 것도 미래는 그냥 영상이 아니라 실감 서비스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에요."

VR 확산을 위한 분위기는 충분히 무르익었다.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한방, 다시 말해 VR이 이런거구나 말하지 않아도 바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킬러가 나오면 VR은 스마트폰 이후 최고의 파괴력을 지닌 플랫폼으로 성장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VR 시장은 지금, 비디오 게임 콘솔 시장에서 닌텐도 위가 나왔을 때와 같은 퀀텀 점프가 필요합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한방은 조만간 등장할 거라고 봐요. 현재 소니가 개발중인 플레이스테이션 VR이나 미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VR 게임 수준을 보면 새 세상이 열리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닌텐도 위가 게임 시장을 흔든 것처럼 소니가 VR 기기와 경쟁력있는 타이들을 동시에 내놓는다면 사용자들 마인드도 바뀔거에요. 대기 모드에 있던 게임과 콘텐츠들도 쏟아지고, 시장이 활화산처럼 타오를 겁니다."

현 회장은 2020년쯤에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VR이 보편화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3D와 비교해 VR은 적용할 수 있는 분야도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한다. 가장 매력적으로 보는 쪽은 교육, 국방, 의료 분야댜.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쪽이 VR과 찰떡궁합일거 같은데 다소 의외의 대답같기도 하다.

"VR하면 게임이나 영화 생각하지만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교육, 의료, 국방 훈련 시장이 더 클 것으로 봐요. 전시회나 박물관도 VR을 지원하게 될 겁니다. 쇼핑이나 부동산 거래도 VR로 갈 수 밖에 없어요. 좁은 공간에 카탈로그만 있는 백화점도 VR기반으로 가능해질 겁니다. 관광 패키지로 나올 거에요. 3D의 경우 영화나 게임 콘텐츠가 대부분이었지만 VR은 급이 다릅니다. VR은 현실 세계를 대체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겁니다. 판이 클 수 밖에 없죠."

현 회장의 예상대로 대중화를 앞둔 VR 시장 판세는 지금 대단히 역동적이다. 거물급 회사들이 대거 도전장을 던졌다. 특히 VR 기기 쪽이 뜨겁다.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했고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VR을 내년 상반기 선보인다. 삼성은 기어VR, 구글은 카드보드 기기를 공개했다. 애플의 참여도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많다. 가히 별들의 전쟁 구도다.

VR 플랫폼과 콘텐츠 시장은 이제 막 시작되는 분위기다.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넷플릭스 등이 VR 플랫폼을 주도할 후보군으로 꼽힌다. 콘텐츠도 시장이 열리기 일보 직전이다. 현 회장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이미 500개 이상의 회사들이 VR콘텐츠 회사라고 포지셔닝하고 있는 상황이다. 3D쪽에서 활동하던 이들도 VR로 넘어와 창업 레이스에 가세했다고 한다. 현 회장은 "내년에는 아주 괜찮은 수준의 VR 콘텐츠가 나올 것 같다"면서 "2016년은 VR의 원년이 될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중화를 앞둔 격동의 글로벌 VR 생태계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어느정도일까? 현 회장의 표현을 빌리면 2년 정도 뒤쳐져 있다. 대중화가 시작되는 2020년경에는 업계 판세가 어느정도 정리될 것임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와 IT업계가 VR시대를 대비하는데 있어 여유 시간은 많지 않은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 기회는 있다는 것이 현 회장의 입장이다. 분위기 반전의 키워드로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과 5G를 제시했다.

"평창 올림픽을 한국 VR 경쟁력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었어요. 5G와 VR 콘텐츠를 묶는다면 가상 스포츠 시장도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VR은 5G 시대,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2시간짜리 영화를 1초에 내려받는 대역폭이 만들어지면 실감 영상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콘텐츠와 서비스도 가능해질 겁니다. 이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한 통신사들에게도 재미있는 이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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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특히 VR 콘텐츠를 주목해 볼만 하다. 영화나 게임,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능력은 어느정도 검증이 됐다는게 현 회장 생각이다. 그는 "VR 산업은 하드웨어보다는 콘텐츠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3D 그래픽, 애니메이션, 게임 분야에서 경쟁력있는 콘텐츠를 만들었던 한국의 노하우와 축적된 인프라 그리고 강력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결합한다면 대규모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현 회장이 협회 설립을 주도한 건 VR은 다양한 IT기술이 버무려진 분야여서 생태계 확대를 위해서는 중심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협회 활동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한다. 그는 "지난 7년간 정부 차원의 디지털 콘텐츠 지원에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VR도 늦은감이 있지만 지금이라고 방향을 정해 빨리 가야 한다. 평창 올림픽을 데드라인으로 삼아 한국 VR 경쟁력이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서는데 협회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