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의 ‘현금 종말론’에 대한 짧은 생각

[이균성 칼럼]금융개혁 핵심이 빠져 있다

인터넷입력 :2015/11/12 17:02    수정: 2015/11/12 17:02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을 꼽으라고 할 때 팀 쿡 애플 CEO를 말하는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그런 그가 11일(현지시간) 영국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음 세대에 태어나는 영국의 아이들은 돈이 무엇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현금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다. ‘애플 페이’를 홍보할 목적의 발언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귀엔 이 괴상한 예언이 정말 현실적으로 들렸다.

대체 종이돈이나 동전을 쓸 일이 앞으로 어디 있겠는가. 지금 내 경우를 보자. 나는 평상시에 현금을 단 한 푼도 들고 다니지 않는다. 현금을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딱 한 곳 있다. 고속도로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는데 하이패스 카드를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자동차 안에 몇 만 원 정도를 넣어놓고 다닌다. 은행에 가기 귀찮아 안 만든 것이니 하이패스만 만든다면 이 또한 쓸 모가 없어진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사진=씨넷]

가끔 돈 필요한 일이 있기는 하다. 아들이 제 엄마 몰래 추가 용돈을 달라고 조를 때, 상가나 결혼식장에 가야 할 때, 오랜만에 조카를 만날 때, 노래방에서 예기치 않게 100점이 나왔을 때, 당구나 골프 등으로 돈내기를 할 때……. 그런데 맨 뒤 두 가지야 1년에 한두 번 있을까말까 한 일이고, 아들 용돈은 이체하면 그만이니, 마지막까지 남은 현금 쓸 일은 조카를 만나거나 부조할 때라고 하겠다.

그러면 상가나 결혼식에 가 돈을 내는 문화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부조 앱이란 게 있다고 상상해보자. 카카오 선물하기처럼 상주 번호를 눌러 소액 이체를 하게 해주는 앱 말이다. 상주도 편하지 않을까. 일일이 봉투 검사 안 해도 앱이 부조한 사람 목록까지 만들어준다면. 그걸 통해 곧바로 사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 왜 돈이 필요하겠는가. 조카 용돈도 마찬가지겠다.

종이돈을 마음의 선물(촌지)로 여기는 문화가 여전하니 돈을 없애면 세상이 삭막해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볼 수도 있다. 그런 문화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눈을 마주보며 돈을 주고받는 일은 참 멋쩍다. 어려서 시골에 살 때 서울 삼촌이 내려와 쥐어준 몇 푼의 돈이 그렇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던 기억이 난다. 촌지라면 현금보다 앱이 낫다.

IT 기술의 발전으로 사회가 더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변하고 그에 따른 새 문화가 형성된다면 현금 쓰일 일은 거의 없어질 것이라는 게 팀 쿡의 생각이고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그래서 현금의 의미는 극히 부정적으로 변할 지도 모른다. 즉 탈세, 비자금, 뇌물……. 그래서 현금을 가리켜 검은돈이라고 부를 날이 실제로 올 지도 모른다. 모든 건전한 자금의 이동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게 만드는 세상.

금융 전문가들 가운데 이런 생각에 합리적인 반론을 제기할 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중히 사양한다. 나는 지금 ‘현금 종말론’에 대한 논쟁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팀 쿡의 ‘현금 종말론’에 관심을 갖는 것은 현금이 없어진다고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만큼 금융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IT를 이해하지 않고는 금융을 하면 안 되는 세상이 오고 있다.

나는 후배기자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금융이 뭐니? “돈을 융통해 어쩌고저쩌고…….” 대개 그런 사전적인 답을 말한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금융은 컴퓨팅이다.” 앞으로 은행은 이자 실시간 비교 사이트를 거쳐 고객을 유치해야 될지 모른다. 물건을 사기 전에 가격 비교 사이트에 먼저 들르듯 예금을 하거나 대출을 받기 전에 비교 사이트부터 들른다는 뜻이다. 고객 유치의 관건이 콜센터나 접대를 통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최적의 예대 마진 상품을 구성할 수 있는 빅데이터 처리 능력으로 바뀌게 된다는 의미이다.

증권이나 부동산 등 자산가치 평가도 마찬가지다. CEO도 모르는 삼성전자 주가 흐름을 사실 일개 애널리스트가 어찌 알겠는가. 말이 좋아 투자 가이드지 사실 그 모든 게 뻥일 수도 있다. 빅데이터는 이 관행을 바꿀 것이다. 정확한 승률로 승부한다. 사람을 믿을 거냐, 고도의 컴퓨터를 믿을 거냐는 싸움으로 바뀌는 것이다. 교통상황을 감안해 샛길까지 알려주는 내비처럼 금융 내비 시대가 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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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전문가가 아니어서 면밀히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금융개혁이 별로 미덥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개혁의 목적이 고작 직원들 임금 줄이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꼬를 바꿔야 한다. 헤게모니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정책 부서와 금융기관 최고위층에 빅데이터를 비롯해 미래의 금융 기법을 예측하고 설계할 수 있는 IT 실력자를 영입해 실권을 주고 협업을 해야한다.

권력 집단인 모피아가 절대 그 헤게모니를 놓을 리 없다는 걸 알고, 그래서 결국 입만 아프지만, 팀 쿡 핑계대고 한 마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