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는 웹예능 ‘존잘러’ 촬영장 가보니

TV와 다른 매력 확인…"돌발상황은 변수"

인터넷입력 :2017/04/18 16:32    수정: 2017/04/18 17:54

"우리 오빠(혹은 누나)가 방송에서 한 말은 어디까지 진심일까?"

특정 연예인 열혈 팬들이라면 한번쯤 되뇌어 봤음직한 질문이다. 방송에 비친 게 어디까지 진짜 모습인지, 어디서부터 '대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팬들에게 방송국 스튜디오는 '호기심 천국'이다. 그 속에선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TV 프로의 한계를 벗어나 '날 것'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웹예능 촬영 현장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심지어 '잘생긴 오빠'도 등장한단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취재를 간 명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물론 TV와 다른 웹 촬영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궁금해할 독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줘야겠단 직업적 소명이 먼저 발동했다. 하지만 오빠 (연예인) 사진을 스마트폰 액정에 담고 다니는 평범한 팬의 호기심 역시 적잖게 작용했다.

■"상사 동의 없어도 OK" 간단한 기획·제작 절차

'존잘러' 촬영 스튜디오 현장.

스튜디오를 방문한 때는 촬영 시작 2시간 전. 그런데 초록색 배경 외엔 아무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스탭 몇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곧 촬영이 시작될 스튜디오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이 곳에서 촬영할 프로그램은 웹예능 제작사 모모콘이 만든 '존잘러(존재 자체가 잘난 스타들의 움짤(움직이는 이미지) 러쉬)'다.

'존잘러'의 콘셉트는 간단하다. 잘 생기기로 소문난 남자 아이돌의 잘난 신체부위를 마음껏 감상해보자는 것.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분석과 실험을 진행한다.

스튜디오에 초록색 배경으로 깔린 천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타 외에 나머지는 전부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존잘러'란 프로그램 명은 제작자인 모모콘 직원 한 명의 별명에서 따왔다. 8화 대본을 작성한 김병준 작가는 다른 직원들이 잘생긴 직원을 '존잘러'라고 부르다가 어느샌가 프로그램 제목이 됐다고 소개했다.

존잘러의 뜻에 걸맞는 기획을 뽑아낸 것은 최민혜 PD다. 최 PD의 기획은 '잘생긴 게 재미있다'는 지론에서 시작했다. 아이돌의 무대 영상에서 잠깐씩 나와 아쉬움을 남기는 클로즈업 샷을 팬들에게 원 없이 제공하고, 사심도 채워보자는 게 출발점이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자, 작가와 PD들이 모두 참여하는 전체 회의를 통해 프로그램의 골격이 정해졌다.

처음에는 '존잘학개론' 코너를 통해 해당 회의 주제인 신체부위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객관적인 수치를 측정한다. 그리고 신체부위가 돋보일 수 있는 물건을 선정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한다는 게 두 번째 코너다.

점심시간 이후 재방문한 촬영현장에선 목폴라 티셔츠, 자동차 핸들, 브이라인 시트팩 등 다양한 소품이 눈에 띄었다. 이날 주제인 '턱'과 관련된 소품들이었다.

소품으로 활용된 브이라인 시트팩 목걸이.

최 PD의 기획은 TV방송에선 쉽게 진행하기 힘든 내용이다. 공공재인 전파를 배분받아서 하는 방송인만큼 각 프로그램엔 최소한의 당위가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병준 작가는 "방송 작가로 일할 때에는 1시간짜리 분량의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코너마다 회의를 하고, 윗선에 여러 차례 승인을 받아야 했다"며 "그마저도 파일럿 프로그램(시청자·광고주 반응을 살피고 정규 편성을 결정하는 시험 방송)을 하고 나면 사장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반면 웹예능은 승인 단계가 많지 않다. 2주마다 하는 기획안 회의에서 다수결 투표를 통해 기획안이 결정되면 사실상 제작에 들어갈 수 있다. 본부장 등 윗선을 설득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많지 않단 얘기다.

존잘러도 본부장 동의가 없이 만들어졌던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 프로그램 아이다어가 처음 나왔을 당시 본부장은 "그냥 잘생긴 것만 보여주는 게 뭐가 재밌냐"고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20대 중후반 PD·작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 웹예능으로 만들어졌다.

'존잘러' 촬영 스튜디오 현장.

■스타의 꾸며지지 않은 모습 담기 위해 노력

촬영 준비는 약 45분만에 끝났다. 다소 밝은 프로그램 분위기와 달리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자 스튜디오는 적막해졌다.

이날의 출연자는 인기 그룹 B1A4 공찬이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공찬은 당황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능청스럽게 대처한다. 덕분에 촬영도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됐다.

대본도 없이 노트북을 만지며 일에 열중하는 사무원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기해 제작진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런데 '존잘러' 촬영 현장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TV 방송과 달리 세로캠을 활용해서 촬영한다는 점이다. 연예인의 잘생긴 모습을 여백 없이 꽉차게 담고, 시청자와 일대일로 마주하는 느낌도 들게 하기 위해서다.

세로캠을 사용할 경우 조금만 움직여도 카메라 구도에서 벗어난다. 그런 만큼 담당 PD의 섬세한 촬영 지시가 이어졌다.

존잘러 시청자들이라면 "스타의 언행이 대본에 정해진 '리액션' 아닐까"란 의구심을 버려도 괜찮다. 존잘러 출연자은 기획안 내용을 전혀 모른 채 촬영에 임한다. 촬영 순서도 뒤죽박죽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출연자는 매번 피디에게 즉석에서 지시를 받고 촬영에 들어갔다.

모모콘을 연출하는 강예현 PD는 기존 방송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던 생동감 있는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강 PD는 "매니저들한테도 웬만하면 기획안을 보지 말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짧은 시간 안에 '리얼'한 모습을 담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라며 "찍으면서 출연진이 '이게 재밌는 게 맞냐'고 물어보며 당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민혜 PD는 "존잘러 같은 경우 어떤 이유로 섭외됐는지만 알려주고 나레이션에 따라 반응하라고만 한다"며 "나레이션에 대한 출연자의 리얼한 반응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재촬영도 없다"고 밝혔다.

이날 총 촬영 시간은 1시간을 조금 넘었다. 제작진은 공개 날짜가 며칠 안 남은 상황이라 예고편은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방송 프로그램의 경우 본편 마지막이나 며칠 뒤라도 예고편을 배포하는 것을 고려하면 웹예능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 중 하나였다.

■업로드 동시에 반응 확인.."피드백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촬영 당일은 존잘러 7화인 'GOT7 진영편'이 업로드된 날이었다. 촬영 틈틈이 제작진들은 삼삼오오 모여 동영상에 올라오는 댓글을 확인했다.

웹 콘텐츠인만큼 제작진이 쌍방향 소통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스탭 중 한 명은 기자를 붙잡고 "우리가 괴롭히려는 게 아니다, 최대한 스타의 편의를 신경쓰면서 촬영한다"는 말을 실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제작진은 존잘러는 특히 팬층이 두터운 아이돌을 중심으로 기획한 영상이기 때문에 더욱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처음엔 '눈이 잘생긴 스타'라고 대본에 적었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 잘생겼는데 '눈'이 특히 잘생긴'으로 대본을 고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댓글이 제작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최민혜 PD는 "댓글 반응을 살펴보면 오글거린다는 반응도 있고, 50부작 대하 사극으로 만들어달라는 반응도 있다"며 "댓글을 보다가 캐스팅할 아이돌을 찾기도 했다"고 말했다.

■돌발상황·출연진 섭외에 어려움 겪기도

물론 어려운 점도 적지 않다. 출연진 섭외부터, 대본 없이 촬영하기 때문에 수시로 돌발상황이 생기는 점 역시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촬영 시간은 1시간 정도로 비교적 짧은 편인데, 아직은 방송 인지도가 지상파나 인기 케이블 방송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다보니 연예인들은 스케줄이 비는 시간에 짬을 내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때론 촬영 전날 구체적인 시간이 정해질 때가 많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촬영이 무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김 작가는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것과 이동 시간을 포함해도 2시간 정도의 시간으로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웹예능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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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하게 기획되고 즉흥적으로 촬영 계획이 결정되는 웹예능 특성상 돌발상황도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연예인 이름을 단 가게에 직접 찾아가는 '간판스타'의 경우, 사전 방문을 통해 다음날 영업 여부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가게 사장이 병원에 가는 바람에 촬영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