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성능 고의제한' 불쾌한 네가지 이유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배터리' 미공지 유감

데스크 칼럼입력 :2017/12/21 13:52    수정: 2017/12/21 17:0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솔직히 털어놓고 시작하자. 나는 애플 아이폰6을 쓰고 있다. 2015년초 구입했으니, 2년 10개월 가량 사용했다.

그런데 올 들어 처리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급하게 사진을 찍으려다 아이폰의 느린 반응 속도 때문에 상황을 놓친 경험도 적지 않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크게 세 가지 ‘이론’이 그럴 듯하게 돌아다녔다.

1. 구형 아이폰에 새 iOS 업데이트하면 속도가 느려진다.

2. 이는 iOS 새버전에 새 기능이 대폭 추가된 때문이다.

3. 결국 신모델 구매를 유도하는 애플의 꼼수다.

많은 이용자들은 iOS 성능 확대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데 미국에선 이달초부터 ‘고의 성능 저하’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지난 해 2월 내놓은 iOS10.2.1부터 구형폰 성능 제한 조치가 적용됐다는 구체적인 분석까지 뒤따랐다.

애플은 소비자들에게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구형 아이폰 성능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 애플 "아이폰 갑작스런 다운 막기 위한 조치였다"

결국 애플이 실토를 했다. 20일(현지시간) 공식 자료를 통해 “구형 아이폰 성능을 낮춘 건 맞다”고 털어놨다. 물론 “신모델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그런 건 아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애플은 구형 아이폰 성능을 낮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리튬이온 배터리는 춥거나, 충전 정도가 부족하거나 낡을 경우 피크 전력을 감당 못한다.

둘째. 그래서 전기 부품 보호하기 위해 기기가 갑작스럽게 다운될 수 있다.

셋째.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작년에 아이폰6, 6S, SE에 필요할 때만 순간 최대 전력을 완화하는 조치를 적용했다.

넷째. 올 들어선 iOS11.2 내놓으면서 아이폰7에도 같은 조치를 적용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성능 제한 조치를 적용한 건 맞는데, 그건 다 소비자들에게 최고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아이폰이 느닷없이 다운될 수가 있다. 다운될 우려가 있을 땐 성능을 살짝 낮추는 게 이용자에겐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애플 설명으로 두 가지 오해는 풀렸다.

iOS10.2, iOS10.2.1 탑재 아이폰6S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 (사진=긱벤치)

iOS 새기능이 추가되면서 구형 아이폰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오해, 그리고 애플이 새 모델 사게 만들려고 2년 쯤만 최적의 성능을 유지하는 꼼수를 부렸다는 오해. 그럼에도 속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1. 왜 지금까지는 이런 공지를 하지 않았나

가장 큰 건 “왜 지금까지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냐”는 부분이다. 소비자들이 가장 분개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이다.

애플은 아이폰 성능 저하 조치가 신모델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건 아니란 입장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측면이 적지 않다.

한번 따져보자. 애플은 수시로 iOS 새 버전을 내놓는다. 그 때마다 다양한 새 기능들이 추가된다.

아이폰 이용자라면 당연히 새 기능을 쓰고 싶다. 그런데 새 iOS 다운받으면 속도가 느려진다. 그 동안 아이폰 이용자들 사이에선 “출시된 지 2년 지난 뒤엔 새 iOS 업데이트 안 하는 게 좋다”는 근거 약한(?) 속설이 유행해 왔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소비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결국 아이폰 새 모델 구매 쪽으로 기울게 된다. 배터리 교체하면 된다는 공지를 생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새 모델 구매를 유도한 측면이 있다.

2. 복잡하기 짝이 없는 배터리 교체 절차는?

이제 알았으니, 나 같은 사람은 배터리를 교체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또 만만치가 않다.

이 부분에 대해선 미국 경제 매체 쿼츠가 “아이폰 배터리 교체는 디지털 카메라 AA 배터리를 갈아 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꼬집었다.

애플이 추운 환경이나 오래된 배터리가 탑재된 아이폰에서 갑자기 꺼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형 아이폰의 속도를 늦췄다고 인정했다.(사진=씨넷)

일단 비용이 만만치 않다. 미국에선 79달러, 우리나라에선 공식 교체 가격이 8만8천원이다. 사설 업체에선 5만원 내외를 받는다.

물론 배터리를 구매한 뒤 직접 갈아끼는 방법도 있다. 그럴 경우 비용은 2만원대로 줄어든다. 하지만 상당한 기술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교체 절차도 성가시다. 애플 공식 수리점까지 찾아가서 긴 줄을 선 뒤 교체를 해야 한다. 다행히 애플 공식 수리점 근처에 있는 경우가 아니면 한 나절은 족히 잡아먹는다.

3. 새 모델 구입 1년 뒤부터 성능을 확 낮춘다?

물론 스마트폰이 일정 기간 지나면 성능이 떨어지는 건 애플 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스마트폰들도 조금씩 성능 저하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애플의 조치는 좀 심하다는 평가다.

미국 IT매체 더버지는 “1, 2년 만에 급속하게 처리 성능을 떨어뜨리는 건 예외적이다”고 지적했다. 100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전자제품을 불과 1년 여 만에 퇴물 취급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4. 배터리 크기를 키워서 문제 해결할 순 없었나?

마지막으로 제기되는 건 “아이폰 성능 저하가 피할 수 없는 문제였나?”는 점이다.

역시 더버지는 “700달러에서 1천 달러에 이르는 아이폰이 구매한 지 1년 여 만에 최고 기능을 못하게 된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애플이 좀 더 큰 배터리를 장착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서 최고 성능 유지 기간을 확대할 수도 있었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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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배터리를 좀 더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었다. 그도 아니라면 배터리 교체 비용을 낮춰주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애플은 아이폰 성능 제한 조치가 "소비자들에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애플이 진짜 '최상의 경험'을 고려했다면 앞에서 제기한 네 가지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