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에어 10년…노트북PC 새 시대 열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스티브 잡스의 또다른 혁신

데스크 칼럼입력 :2018/01/16 13:28    수정: 2018/01/16 17:4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무대에 선 스티브 잡스는 조금 야윈 모습이었다. 그 무렵 그의 몸엔 이미 암세포가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특유의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연설이 시작될 무렵 뒷 배경엔 "There’s something in the air"란 문구가 떴다. (이 문구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의미다. 애플은 이 말을 살짝 비틀면서 '에어'에 뭔가 있다, 는 의미도 함께 전달했다.)

이날 잡스가 세상에 공개한 건 맥북에어였다. 잡스는 “(맥북에어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이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특히 그는 탁자 위에 있던 서류봉투에서 맥북에어를 꺼내는 퍼포먼스를 연출해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 장면이 연출된 것은 10년 전인 2008년 1월 15일(현지시간)이었다.

2008년 1월 15일 맥북에어를 소개하던 스티브 잡스. 뒷 배경에 '에어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유튜브영상 캡처)

서류 봉투에서 노트북을 꺼내던 잡스의 충격적인 연출

‘혁신 아이콘’ 잡스의 대표작은 아이폰이다. 맥북에어 공개 한 해 전인 2007년 세상에 내놓은 아이폰은 스마트폰과 모바일 라이프를 바꿔놨다.

하지만 맥북에어도 그에 못지 않았다. 맥북에어은 ‘가장 얇은 노트북’을 실현하기 위해 CD 드라이브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멀티터치 트랙패드와 SSD 저장 장치를 활용한 부분 역시 혁신적이었다. USB 2.0 포트도 새롭게 적용했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을 실현하기 위해 그 때까지 상식으로 통하던 많은 것들을 버렸다. 남들이 버리지 못했던 것들을 버리는 순간 새로운 혁신의 싹이 움터올랐다.

이런 혁신 덕분에 맥북에어는 그무렵 가장 얇은 노트북이던 소니 TZ 시리즈보다 훨씬 더 날씬한 몸매를 자랑했다.

처음 출시될 때만 해도 맥북 에어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1천800달러에 육박하는 비싼 가격 때문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하지만 애플은 이후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고 SSD를 탑재했다. 덕분에 맥북 에어는 주춤하던 노트북 시장에서 '혁신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서류 봉투에서 맥북에어를 꺼냈던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장면.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맥북에어는 이후 노트북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했다. 윈도 계열이 수많은 노트북 제조업체들은 이후 수 년 동안 맥북에어의 디자인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만큼 2008년 첫 선을 보인 맥북에어는 뛰어났다.

스티브 잡스가 노트북PC의 트렌드를 바꿔놓은 건 그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990년대 후반 다시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첫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아이맥이었다.

아이맥은 컴퓨터 시장에서도 기능 못지 않게 패션 감각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첫 작품이었다. 아이맥은 나오자마자 PC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각광을 받았다.

한 동안 이런 움직임을 관망하던 PC업체들도 애플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앞다퉈 '컴퓨터 패션 경쟁'에 동참했다.

빌 게이츠 떠나던 해에 PC시장 전면에 나온 스티브 잡스

애플은 아이맥 이후 한 동안 아이팟과 아이폰 등 모바일 기기에 많은 공을 들였다. 아이팟이 한창 인기를 끌 무렵 애플은 회사 명칭에서 ‘컴퓨터’란 단어를 떼어냈다. 그 무렵 애플 전체 매출에서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맥북에어는 컴퓨터에도 애플 특유의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적용된 제품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노트북PC의 트렌드를 다시 한번 바꿔놨단 점에서도 주목할만한 제품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맥북에어를 공개하기 한 주 전 빌 게이츠가 CES 기조연설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한 동안 노트북 시장에선 맥북에어 따라하기가 유행이었다. 반면 애플은 지난 10년 동안 맥북에어 디자인에 크게 손을 대진 않았다. 12인치 제품이 새롭게 출시된 점을 빼면 외형면에선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MS) 서피스나 델 XPS13 같은 제품들은 맥북에어 못지 않은 매끈한 몸매와 성능을 자랑한다. 성능과 디자인 모든 측면에서 맥북에어는 이젠 최고 노트북이라고 칭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10년 전 맥북에어가 노트북 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았다. IT전문 매체 더버지의 표현대로 “노트북의 미래를 바꿔놓을 정도”로 “이전까진 보기 힘들었던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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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맥북에어를 내놓지 한 주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선 또 다른 깜짝 발표가 있었다. PC시대의 황제로 군림했던 빌 게이츠가 CES 기조연설을 통해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맥북에어 발표는 빌 게이츠 은퇴와 맞물리면서 노트북PC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젠 모바일 기기에 다소 밀리고 있긴 하지만, 맥북에어로 대표되는 ‘깔끔한 노트북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계기가 된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