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항소심 선고와 한국의 법치주의

데스크 칼럼입력 :2018/02/01 09:48    수정: 2018/02/04 09:56

삼성에게 다시 운명의 시간이 바짝 다가오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5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경영권 승계의 대가로 뇌물을 줬다는 혐의로 이미 작년 여름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옥살이를 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당시 원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공소장 기재 개별 현안들에 대하여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청탁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또 '삼성이 청탁의 결과 부당하게 유리한 성과를 얻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피고인들이 대통령에게 포괄적 현안인 경영권 승계 작업에 관하여 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제공=뉴스1)

원심 판결의 '묵시적 청탁'은 2심까지도 재판의 핵심쟁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 변호인단은 '세상 사람들이 이미 이 부회장이 삼성의 승계자라는 것을 다 알고 있고, 필요한 지분과 의결권을 갖고 있는데 (이 부회장이)무엇이 아쉬워 대통령에게 경영승계 청탁을 했겠느냐'고 반문한다.

또 개별적으로는 부정한 청탁이 없었는데, 포괄적으로는 묵시적 청탁을 했다는 판결문의 논리는 이해하기 어렵고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특검의 주장은 진실이 아닐뿐더러 전혀 증거에 기초하지 않는 가공의 틀이라고 반박한다. 이 부회장도 '주식을 한 두 주 더 갖는 것보다 경영자로서 주주, 임직원들에게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하다'며 경영승계 청탁은 결코 없었다고 억울해 하고 있다.

그러나 특검은 이 재판은 국내 최고 재벌 총수와 정치권력 간의 검은 거래를 뇌물죄로 단죄하기 위한 자리라고 못 박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쓰러진 이후 삼성 내에서는 다급하게 경영승계 작업의 필요성이 (다른 기업보다)더 강하게 생성됐고, 이를 위해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게 특검의 얘기다. 또 국정농단의 진실을 밝히고 대한민국의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신념과 사명감으로 이 사건 수사와 재판에 임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럼 2심 재판부는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까.

원심의 묵시적 청탁을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릴까, 아니면 엄격한 형사법의 원칙과 법리, 증거법칙에 따라 공소사실의 범죄성립의 사실관계만을 판단할까.

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맹목적인 관념이나 믿음이 아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입각해 생각해 보면 된다. 사실의 인정과 법률 해석이 어렵고 모호하다면 그것은 진실의 편이 아니다. 허구나 독선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재용 재판'은 우리 사회에 잠재된 정치·경제·사회적 갈등과 대립, 모순 구조가 한데 뒤엉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쪽이 더 실체적 진실에 가까울까라는 물음이 무색할 정도다. 1, 2심을 통틀어 70차례의 공판이 열리고 특검이 제출한 증거만 3천400여개, 기록은 수만 페이지에 달하지만 정작 명확한 물증이 없고 무엇이 실체적 본질인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래서 '이재용 재판'은 우리 사회가 참담한 과거와 단절하고 상식적이고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지렛대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 올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2심 재판부가 고심하고 있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일 테다.

따지고 보면 이 부회장에게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에 사 들인 죄, 3세까지 가족경영을 한 죄, 아버지 시대의 유산을 물려받고 '내가 경영을 하면 그때가서 잘 하면 되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죄다. 그것이 죄라면 죄다. 그래서 이 부회장도 2심 최후 진술에서 얘기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에게 경영 승계 같은 청탁을 한 적도 생각해 본적도 없지만)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 불찰이었단 점입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져야 이 엉클어진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만약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두 분(최지성 전 부회장-장충기 전 사장)은 제발 풀어 주시고 그 벌을 저에게 다 엎어 주십시오. 다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라고.

이재용 부회장은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래리 페이지, 마크 주커버그처럼 인기가 많거나 자수성가한 기업가가 아니다. 그는 그런 사회의 메카니즘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게 그의 타고난 운명이다. 그에게 당신은 왜 저 사람들처럼 하지 못했느냐고 질책한다면 조금은 잔인한 처사다. 그의 의지로 벗어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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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으로 바꿀 수는 있다. 이 부회장이 삼성의 경영자로서 신뢰를 회복하고 엉클러지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많은 것을 갖은만큼 사회에 진 빚을 갚겠다는 심정으로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이끌고 세계를 넘어서라. 청년 일자리 많이 만들어라. 앞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더욱 더 실천하라.

운명을 바꾼 사람은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도 최고 권력자의 잘못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 기업인에 대해 중용의 가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항소심은 피고인들의 범죄 혐의에 대해 사실관계를 따지는 마지막 절차다. 법치주의에 입각해 오직 증거와 법리에 기초해 현명한 판결이 내려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