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 열풍 뒤안길...그래픽카드 운명 어디로

"중고 제품 거래시 보증 여부·기간 확인해야"

홈&모바일입력 :2018/04/13 17:02    수정: 2018/04/16 13:54

암호화폐 채굴 바람이 불면서 몸값이 뛰었던 그래픽카드의 품귀현상이 진정세로 돌아서고 있다. 지난 해 중반까지 대규모 채굴장을 꾸렸던 채굴 업자들도 채굴 대신 거래소를 통한 시세차익을 얻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렇다면 '채굴 역군'으로 밤낮없이 활약했던 그래픽카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계약 등을 통해 대량으로 납품된 제품들은 이미 대폭 줄어든 보증기간을 적용받아 사실상 '시한부 인생'에 돌입했다. 채굴 특화를 내세운 일부 제품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 "채굴용 그래픽카드는 AMD가 우세"

13일 PC업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채굴 용도로 가장 많이 팔린 그래픽카드는 AMD 라데온 RX580(8GB)이나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60(6GB)을 탑재한 제품이다. 가격은 각각 40만원대 후반, 30만원대 후반이다.

AMD 라데온 RX580 그래픽카드의 수요가 높았다. (사진=AMD)

이들 그래픽카드는 대량으로 채굴장을 구성할 때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 채굴 업자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배틀그라운드 등 고사양 게임이 인기를 끌던 올 1월에는 품귀현상 탓에 10만원 가까이 프리미엄이 붙기도 했지만 현재는 원래 가격대를 되찾았다.

한 유통사 관계자는 "암호화폐 채굴 특성에 따라 적합한 그래픽칩셋이 다르지만 대체로 AMD 라데온 RX580 계열의 인기가 높았다. AMD 절반, 엔비디아 절반으로 채굴 시스템을 구성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 채굴 특화 제품은 '시한부 인생'

그래픽카드 제조사에 채굴 수요는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매출은 크게 오르지만 불량 등으로 교체 수요가 많아질 경우 그만큼 손해를 본다.

따라서 채굴에 특화된 제품의 보증기간은 자연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일반 그래픽카드의 무상 보증 기간은 보통 3년이지만 채굴에 특화된 제품은 짧게는 3개월, 길어야 1년 정도로 보증 기간을 크게 줄인다. 사실상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채굴용 그래픽카드의 유통기한은 대부분 1년 미만이다. (그림=다나와)

한 유통사 관계자는 "채굴 특화 제품이 아니더라도 총판 등에서 대량 판매한 제품은 고유 시리얼 넘버를 따로 관리하기 때문에 추적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 경우 납품시 계약에 따라 보증 기간이 달라진다. 그러나 6개월 이상 보증 기간을 요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 채굴에 쓰인 그래픽카드, 베어링 보면 안다

채굴에 동원된 그래픽카드의 주된 고장은 주로 열을 식히는 냉각팬에서 일어난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그래픽칩셋이 아예 망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냉각팬 고장으로 그래픽칩셋이 과열될 경우 자체 보호 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가 채굴 전용 제품이 아닌 게임용 그래픽카드로 채굴하다 문제가 생길 경우 제조사나 유통사가 이를 알 수 있을까. 정답은 '가능하다'이다.

채굴에 쓰인 그래픽카드 냉각팬의 베어링이 심하게 마모된다. (사진=알리바바)

또다른 유통사 관계자는 "그래픽카드 냉각팬의 베어링 마모 정도를 보면 채굴에 쓰였는지 추론할 수 있다. 채굴할 경우 24시간 내내 냉각팬이 돌아 베어링이 유독 심하게 닳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통사는 이런 경우에도 새 제품으로 교환을 진행한다. 단 채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그래픽카드의 바이오스나 펌웨어, 혹은 냉각팬을 개조한 경우는 무상보증 대상에서 제외된다.

■ "중고 그래픽카드 구매 전 보증 여부 확인해야"

채굴 열풍이 지나간 후 중고 그래픽카드 매물도 크게 늘었다. 중고나라를 운영하는 큐딜리온 관계자는 "올 3월을 지나면서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60 매물이 30%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보증기간을 넘긴 채굴 전용 그래픽카드, 혹은 채굴 현장에서 혹사당했거나 개조된 그래픽카드가 이력을 숨기고 시장에 나올 경우다.

한 PC 제조사 관계자는 "24시간 그래픽카드가 가동되는 환경 탓에 냉각 온도를 고려하지 않은 환경에서 채굴을 할 경우 문제가 생길 여지가 높다"며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하는 5-6월을 앞두고 그래픽카드 중고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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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에 동원되었던 그래픽카드가 매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사진=픽사베이)

큐딜리온 관계자는 "개인거래가 많은 중고거래 특성상 거래자 간 양수양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며 이 경우 피해가 생겨도 보상받을 방법이 전혀 없다"며 "직거래를 통해 제품 상태를 확인하거나, 안전결제(에스크로)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또다른 유통사 관계자는 "한 판매자가 중고 시세보다 싼 가격에 수십 장, 혹은 수백 장의 그래픽카드를 대량으로 판매하는 경우, 성급한 구매보다는 보증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