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O 못하는데 '블록체인 강국' 될 수 있나

[블록체인&ICO 집중분석①]국부 빠져나가

컴퓨팅입력 :2018/05/17 11:18    수정: 2018/05/18 09:02

블록체인이 4차산업혁명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급부상하면서 암호화폐 공개(ICO)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이에 대한 제도 정의가 거의 전무해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디넷코리아는 창간 18주년을 맞아 블록체인과 ICO에 대해 6회에 걸쳐 집중 분석하는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주]

①ICO 못하는데 '블록체인 강국' 될 수 있나

암호화폐 공개(ICO)가 세계 투자금을 다 빨아들일 기세다. 올해 1분기에만 63억달러(약 6조7천억원)의 투자금이 몰렸다. 이는 지난해 전체 ICO 보다 118% 더 커진 규모다.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은 단일 ICO로는 역대급 규모인 17억달러(1조8천억원)를 모금했다. 텔레그램을 빼고, 올해 진행된 ICO 중 상위 20위 프로젝트는 평균 5천만 달러(약 530억원)를 모았다.

ICO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투자금을 모금하고 반대급부로 암호화폐(토큰)을 지급하는 새로운 투자자 모집 방식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발전시키고 산업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 역할을 한다.

블록체인 산업은 ICO를 통해 수혈된 투자금을 동력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업계는 문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진=픽스타)

그런데, 한국 정부의 인식은 한참 뒤처져 있다. 한국은 중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ICO를 금지하는 유일한 국가다. 한국 정부의 ICO 금지 조치는 블록체인 발전에 암호화폐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블록체인은 진흥하지만 암호화폐는 규제한다, 고로 ICO도 필요 없다'로 이어진다.

스위스, 싱가포르, 홍콩 등은 ICO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제도권 안으로 들여왔다. 덕분에 세계 ICO 기업과 투자자금이 모여들고 있다. 스위스 주크 지역은 암호화폐 산업의 허브라는 의미로 '크립토밸리'라는 별칭이 붙었다. 스위스는 한발 더 나아가 국가 전체를 크립토 네이션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한국은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나라 보다 크다. 암호화폐 투자 열기뿐 아니라 ICO를 추진하는 기업도 많다. 하지만 사실상 ICO 금지 때문에 스위스, 싱가포르에 한국 기업이 ICO 법인을 세우고, 한국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보내고 있다. 블록체인 강국으로 발전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다.

이제 업계는 정부에 다시 묻고 있다. 진짜 ICO는 금지하고 블록체인은 진흥할 수 있느냐고.

블록체인 산업에 ICO 어떤 역할하나?

ICO는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투자를 모금하는 방식인 동시에, 블록체인 서비스 내 '토큰이코노미'가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 된다.

토큰이코노미는 특정 블록체인 서비스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기여도에 따라 암호화폐를 인센티브로 지급해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경제 시스템이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애드포스 인사이트의 홍준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에는 철학적 배경이 있다. 중앙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인데 블록체인 기업의 자본조달의 방식에도 이런 철학이 담기게 된다"며 ICO의 역할을 설명했다.

기존 주식회사 모델은 초기에 자본을 투자한 자본가들만 거대한 이익을 나눠갖는 구조다. 자본가와 창업자 등 극소수의 기여자들은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부가이익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가고 기업의 성장을 함께 이룩한 근로자나 고객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ICO는 이런 주식회사 모델의 한계를 타파하는 방식으로 자금모집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는 "공개적으로(Public) 자금을 모집하기 때문에 투명하고 대중은 투자하려는 기업의 사업계획이나 가치관이 마음에 들면 적은 금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다. ICO를 통해 기금이 모집되면 투자한 모든 구성원들이 커뮤니티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노력한만큼 투자금의 가치는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토큰 이코노미라고 부른다, 이게 대중들이 ICO에 열광하는 이유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2016-2018까지 ICO를 규모별로 표시한 표(표=코인데스크)

또,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ICO라는 자금조달 방식 덕분에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할 기회를 얻고 있다.

홍 대표는 "과거에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이라도 자금이 없으면 꽃을 피우기 전에 폐업을 하곤 했는데 블록체인의 스타트업은 사업에 대한 미래가치를 인정받으면 ICO를 통해 충분한 자금을 모을 수 있으며 서비스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스타트업 창업 장려를 위한 그 어떤 정책보다 좋은 방법은 ICO 허용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ICO는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회사를 알리고 사용자 커뮤니티를 모으는 과정 자체이기도 하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메디블록의 고우균 공동대표는 "ICO의 또 다른 중요 기능은 ICO 과정을 통한 홍보와 잠재 사용자 확보"라며 "이 기업의 비전을 믿으면 서비스가 나왔을 때 한번이라도 써볼 것이다. 잠재적 유저를 바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인데 글로벌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토큰 자체가 서비스 접근권을 주는 경우에 토큰을 구매한 사람들이 확실한 초기 사용자 층이 될 수 있다.

ICO 금지로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정부가 지난해 9월 ICO 금지를 선언한 이후 한국 기업들은 스위스, 홍콩, 싱가포르 등 ICO 친화적인 국가를 찾아 해외를 떠돌고 있다. 이런 한국 기업이 최소 100개 이상이다. ICO 정보사이트 ICO랭크에 따르면 "자체 집계한 한국 기업의 ICO(진행 중이거나 완료한 상태 포함)는 약 100여개 정도로 추산"된다.

여기에 ICO를 준비하고 있는 기업도 추가해야 한다.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잘 나가는 스타트업은 거의 다 ICO를 준비하고 있고 신생 스타트업도 블록체인으로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종합해 보면 해외 ICO를 추진하는 한국 기업이 올해 140~200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해외 ICO 법인을 지출하는 법인세, 인건비, 임대료, 법률 및 금융 서비스 사용비 등이 상당해 국부가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가 ICO가 허용했다면 국내에서 쓸 돈"이라는 논리다.

스위스 크립토밸리협회 멤버인 세실리아 챈은 한국이 ICO 금지로 경제적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ICO 금지는 투자 시장 과열로 규제당국이 내린 조치라고 본다. 하지만 기존 금융 시장의 프레임워크를 이용하거나 ICO를 합법적인 영역으로 들여올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접근법을 택했을 수도 있다. 투자자가 많은 한국과 중국에서 이런 접근을 했다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GDP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ICO 금지로 ICO가 음성화돼고 사기·불법 행위를 걸러내기 어려워졌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 코인 판은 완전 무법천지"라며 "제도권 안에서 코인 판매가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00코인'을 판다는 가짜 판매 업자들이 5~6개씩 등장해도 투자자들 입장에선 진짜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관투자자도 아닌 데 프라이빗 세일에서 150% 보너스를 받고 코인을 산 다음 마진을 남기고 판매하고, 그 사람이 또 마진을 남기고 다음 사람한테 판매하는 사실상 다단계 판매가 성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투자자 입장에선 개발 업체가 모집한 코인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는 "개발사가 자금을 유용하고 사기를 치는 지, 코인을 환전해 한국으로 들여와 대표이사 가수금으로 돌려 놨는 지 전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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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실은 한국에서 ICO를 못 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수 많은 문제가 양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디블록 고 대표도 "제도화 해서 잘못된 행동은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지금은 이도저도 아닌 상태라 사기적인 행위를 처벌할 수 없고 제대로 된 업체도 떳떳하지 못한 애매한 상황"이라며 "글로벌 트렌드가 ICO 활성화로 가고 있는데 우리만 부정하면 뒤쳐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