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의 경영권 불승계와 기업가 정신

[이균성 칼럼] 한국 기업사 새로 쓰다

데스크 칼럼입력 :2018/05/29 14:29    수정: 2018/11/16 11:21

김정주 NXC 대표가 29일 경영권을 자녀에게 승계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정확히 조사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는 사례는 한국 기업사에서 매우 드문 것임이 분명하다. 한국 기업들은 오히려 경영 승계를 위해 온갖 편법과 때론 불법까지 동원해 말썽을 피워왔다. 주요 대기업에서 핵심 멤버의 최대 미션이 경영권 승계 방법을 찾는 것이었을 정도다.

김정주 NXC 대표.

그의 결정이 추후 넥슨의 진로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아직 예단하기 힘들다. 기업은 생명체와 같아서 생로병사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 다양한 변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이번 결정 또한 하나의 변수일 뿐이고 그것이 넥슨 진로를 결정할 절대 상수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김 대표의 이번 결정이 한국 기업사에서 새로운 페이지일 수 있다는 점이다.

김 대표가 이렇게 결정을 한 표면적 이유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진경준 공짜 주식 뇌물 의혹 사건’이었다. 그는 이날 밝힌 입장문에서 이 사건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했다. 비록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세상을 공분케 한 것에 대해 거듭해서 머리를 숙인 것이다. 그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김 대표는 이번 사건으로 큰 수치심을 느꼈을 게 분명하다.

진정으로 부끄러움을 아는 그 마음과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 인간은 누구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르며 산다. 그리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그걸 애써 무시하며 산다. 때론 잘못을 하고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억울해하는 경우도 많다. 재수 없어 나만 걸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 대표가 그 수렁에 빠지지 않고 탈출한 것에 대해 같이 기뻐하며 박수를 보낸다.

김 대표가 그렇게 결정할 수 있었던 건 창업 때부터 키워온 ‘기업가 정신’ 때문일 수 있다. 그는 입장문에서 “회사를 세웠을 때부터 (경영권 가족 불승계가) 한 번도 흔들림 없었던 생각이었지만, 공개적인 약속이 성실한 실행을 이끈다는 다짐으로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이 말에 따르면 김 대표는 창업 때부터 경영권 승계에 올인해 문제를 일으켜왔던 선배 대기업을 타산지석으로 삼았던 셈이다.

김 대표 또한 사람이기에, 이런 마음으로 창업했지만, 경영을 하면서 크고 작은 실수도 했을 것이다. 내 기업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을 수 있지 않았겠냐는 뜻이다. 그리고 ‘진경준 사건’은 이 생각이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처절하게 깨닫도록 했을 것이다. 그 깨우침을 높이 사고 싶다. 그게 우리 기업사의 새 페이지가 되기를 빈다.

김 대표는 이날 경영 불승계를 선언한 입장문을 통해 "넥슨이 이 같은 기업으로 성장한 데에는 직원들의 열정과 투명하고 수평적인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며 “이런 문화가 유지돼야 회사가 계속 혁신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말 속에 들어 있는 두 키워드, ‘열정’과 ‘혁신’에 대해 우리 기업의 오너와 최고경영자(CEO)들은 깊은 고뇌와 고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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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없이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방법은 없다. 혁신의 최종 책임자는 오너와 최고경영자일 수밖에 없겠지만, 같이 노를 젓고 길을 열어가는 임직원의 열정 없이 완성될 수는 없다. 임직원을 머슴이나 하녀 다루듯 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는 한진그룹에서 ‘혁신의 꽃’이 필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건 마른 하늘에서 비 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우매한 바람일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따라서 자식을 버리고 넥슨에서 ‘혁신의 꽃’이 피게 되는 걸 소망한 셈이다. 그것이 김 대표가 꿈꾸던 ‘기업가 정신’의 원래 뼈대였을지언정, 그 꿈을 더욱 강고하게 만들어 준 게 무심코 저지른 실수와 그에 따른 부끄러움이었다는 것이 도리어 그 가치를 더 빛나게 한다. 이 일로 우리 국민과 소비자가 기업과 기업가를 조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김 대표는 큰 일을 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