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흔들리는 ICT 맏형들

벼랑 끝에 선 한국 ICT 산업

데스크 칼럼입력 :2019/01/04 15:30    수정: 2019/01/06 09:17

넥슨·SK·네이버 등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맏형들이 구글·넷플릭스·텐센트 등 글로벌 공룡들의 포효에 맞서 전열을 가다듬거나 탈출구를 찾는 모습이다.

그런데 기해년 황금돼지띠가 주는 이미지와 달리 이들의 변화와 도전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희망찬 기대보다, “과연 잘 될까”하는 우려 섞인 시각이 더 많아 보인다.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넥슨의 창업주인 김정주 엔엑스씨 대표가 자신과 부인이 보유한 10조원에 달하는 회사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식이 업계를 한바탕 뒤흔들었다. 탄식에 가까운 아쉬움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넥슨 지분 매입 가능 주체로는 중국의 텐센트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국내 ICT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사진=픽사베이)

또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와 지상파3사가 공동 출자해 만든 ‘푹’은 사업 조직을 통합해 신설법인을 세워 넷플릭스 등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와 겨룬다는 야심찬 전략을 발표했다.

국내 대표 검색 포털 사업자인 네이버는 이달 8일부터 11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9’에 참가해 자율주행 및 로봇 기술을 선보이기로 해 이목을 끌었다.

1994년 설립된 넥슨은 한국 최초 그래픽 온라인 게임을 만든 회사다.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등을 선보이며 PC 온라인 게임 시장을 선도해 왔다. 2008년에는 ‘던전앤파이터’를 만든 네오플을 인수, 중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글로벌 게임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바람의 나라 1996

SK텔레콤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는 1997년 하나로통신으로 시작해 초고속 인터넷 시대를 열었다. 지난 2016년 1월 출시된 옥수수는 950만에 가까운 가입자를 단 시간 내에 모으며 국내 OTT 사업자 중 가입자가 가장 많은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옥수수와 손을 잡기로 한 푹은 지상파 3사가 힘을 모은 콘텐츠연합플랫폼이 2012년 출시, 국내 주요 방송 콘텐츠를 통해 400만 명에 가까운 가입자를 끌어 모았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네이버 역시 국내 검색 포털 시장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국내 인터넷 기업이다. 뉴스, 실시간급상승검색어, 지식인, 블로그, 카페 등 인기 서비스를 줄줄이 성공시키며 전국민이 사용하는 대표 사이트로 자리매김했다. 이 회사는 7전8기 노력으로 모바일 메신저인 ‘라인’을 일본과 태국 등에서 성공시키며 글로벌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국내 인터넷 기업으로 손꼽힌다.

세 회사 모두 20년 넘게 국내 인터넷 시장을 개척하고 주도해온 ICT 기업이다. 국내 ICT 시장을 선도해온 맏형 같은 존재다. 그런데 새해 벽두부터 들려온 여러 소식을 모아 놓고 보니, 이들의 겁먹은 모습이 엿보인다.

국내에서는 독과점 기업이란 비판을 받고, 불공정 거래 문제 등으로 사회적 책무를 지라는 요구를 받던 기업들이 글로벌 공룡 앞에서 점점 초라해지는 이유는 뭘까.

세 기업들도 글로벌 시장에 놓고 비교하면 작은 점에 불과하다. 구글의 지주사인 알파벳의 시가총액이 7천100억 달러(약 799조)인데 반해, 네이버 시가 총액이 21조원 아래인 것만 놓고 봐도 그 격차를 알 수 있다. 2011년 일본 증시에 상장한 넥슨의 시가총액은 약 13조원 수준이다.

한 때 ‘온라인 게임 강국’, ‘IT 강국’으로 불리던 국내 ICT 산업은 이미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 뒤진 지 오래다. 국내 기업들이 내우외환을 겪는 사이 글로벌 ICT 기업들은 더 빠르고 전략적으로 우리와의 격차를 벌려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들은 각종 규제와 기득권과의 외로운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쟁 환경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게임사 실적 1위를 거둔 넥슨의 창업주가 “지쳤다”는 말까지 했다는 얘기가 들리는 게 아닐까. 중국 시장에 의해 실적의 거의 절반이 좌지우지되는 상황, 신작들도 외산 게임에 소위 ‘발리는’ 경쟁 환경에서 국내 1위 게임사조차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뜻 아닐까.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매체에 잠식돼 가는 방송 시장에 국내 대기업인 SK와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지상파 3사가 힘을 모으는 상황 역시 현재 우리 ICT 환경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방증한다.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내년이면 중국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제칠 수 있다는 전망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삼성이 폴더블폰 시장을 선도해 다시 한 번 도약할 것이란 낙관론도 있지만, 시장에서 바라보는 기대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시가총액에서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에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국내 기업들은 크게 뒤진다.

글로벌 ICT 기업들이 한 자리에 모여 최신 기술을 뽐내는 CES에 네이버가 출전한다는 소식은 기대감을 모으기 충분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인터넷 기업 1위 조차 생존의 갈림길 끝에 서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넥슨, SK, 네이버, 삼성전자 등 국내 ICT 대표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글로벌 기업과의 거센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새해를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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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투자회수의 적기라 판단해 창업주가 지분을 털고 떠나려는 넥슨. 서로 가진 힘을 모아 전열을 가다듬는 옥수수와 푹.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시장을 뚫으려는 네이버. 이들의 선택과 도전이 올해가 끝나갈 때쯤 어떻게 결론 날지 궁금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다는 데 씁쓸함이 든다.

국내 ICT 시장과 환경이 낭떠러지 직전까지 밀려난 가운데, 정부와 국회는 언제까지 '팀킬'과 전략 구상에 허송세월할 지 갑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