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러스터, 기업이 결정할 문제...여론전 안돼”

[이슈진단] 반도체 특화 클러스타(하)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9/02/22 15:30    수정: 2019/02/27 09:58

“반도체 클러스터는 기업이 사업 전략에 맞게 알아서 끌고 가야한다. 정부나 지자체, 언론이 관여하거나 여론전으로 몰아가서는 안 될 문제다.”

SK하이닉스와 50여개 협력사가 참여하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전국 이슈로 번졌다. 부지가 확정되면 SK하이닉스는 오는 2028년까지 10년간 120조원을 들여 축구장 10개 크기의 반도체 팹(Fab·반도체 생산설비) 4개와 중소 협력사,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유치한 지역은 지방세수 확대와 인구 유입, 고용 창출 효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경기도 용인시와 이천시, 충청북도 청주시, 충청남도 천안시, 경상북도 구미시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충청북도 청주에서 열린 SK하이닉스 신규 반도체 공장 'M15 준공식' 현장. (사진=SK하이닉스)

유치전은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22일 용인시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한 산업단지 공급물량 추가공급(특별물량)을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심의위원회에 요청하면서 막바지에 이르렀다. 유치 공방은 더 격화됐다. 물적, 인적 자원이 충분한 용인시에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비수도권에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부딪히고 있다.

■ 정부·지자체·언론 모두 개입 안 된다

황철성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는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이 아니라 기업인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사업”이라며 기업이 주도적으로 유치 지역과 사업 전략을 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 역할은 반도체 클러스터가 결정되면 용지와 기반시설, 전력 등 인프라를 제때 제공해 기업이 순조롭게 성장하고 지자체도 그 효과를 받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황 교수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추진 방향 역시 정부 개입 없이 SK하이닉스가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이 막대한 투자금을 들여 공장을 짓는 데다 클러스터 방향을 어떻게 끌고 갈지는 몇 년 후에나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면 안 된다”며 “파운드리로 갈지, 스시템반도체로 갈지에 대한 결정도 온전히 SK하이닉스가 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관련 학계 역할 역시 기업이 정치 논리 때문에 최적 위치가 아닌 곳에 부지를 마련해야 한다면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 생산과 연구 모두 잡은 클러스터 돼야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역시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나 추진 방향은 SK하이닉스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전체 산업에서 반도체산업의 역할이 가장 막중한 만큼 기업의 성장성, 경쟁력 강화 측면을 가장 중요하게 따져야한다는 것이다. 산업과 국가균형발전 측면을 함께 잡고 싶다면 반도체가 아닌 다른 산업을 고려하는 방향도 있다는 조언도 내놨다.

송용호 교수는 “반도체산업은 현재와 미래 국가 경제의 핵심 분야인데다 대외 경쟁도 갈수록 심화돼 산업의 건전성, 성장성,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라며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 지역은 시설과 인력 등 자원이 최적 조건인 곳이어야 한다. 만약 국가균형발전까지 함께 고려하는 과정에서 경쟁력 손실이 조금이라도 없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현재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현재 반도체 클러스터 최적지로 꼽히는 곳은 용인시다. SK하이닉스와 협력사, SK건설 등이 참여하는 특수목적회사(SPC) ㈜용인일반산업단지가 지난 20일 용인시에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의향서를 제출하면서 용인시 확정 가능성이 높아졌다.

송 교수 역시 부품, 소재산업과의 긴밀한 협력과 고급 인력이 중요한 반도체 산업 특성상 수도권인 용인시가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로 가장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용인시는 삼성전자 등 전기전자기업과 협력사들이 몰려있는 수원시, 동탄시와도 근접해있다.

송 교수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성공하기 위해선 생산과 연구개발에 모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분산돼있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을 한곳에 모이는 만큼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조와 신기술 개발이 함께 이뤄지도록 조성하는 것이 좋다는 시각이다. 그렇게 된다면 장기적으로 세계 제조도시가 된 중국 심천이나 실리콘밸리 같은 상징성과 역할을 가질 수 있다고 송 교수는 전망했다.

그는 “심천에는 부품과 완제품업체가 골고루 포진돼있어 가격과 제조 시간 측면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며 “이번 반도체 클러스터도 여러 기업, 자원을 한 곳에 모아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이미 평택, 기흥, 화성으로 이어지는 클러스터를 자체 구축하고 있는데 SK하이닉스도 이번 기회에 이천, 청주와 용인 클러스터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길 바란다”며 “두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국내 반도체산업 전체를 끌고갈 수 있는 쌍두마차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 중요한 것은 산업 경쟁력 강화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 이슈로까지 번진 상황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중국 반도체산업의 재빠른 추격으로 기술 초격차가 시급한 상황에서 여론전이 벌어지면서 정작 기업과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핵심이 가려지고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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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와 SPC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120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만큼 ▲국내외 인재들이 선호하는 위치 ▲대중소기업 협력 생태계 조성의 용이 ▲반도체기업 사업장(이천청주기흥화성평택 등)과의 연계성 ▲전력/용수/도로 등 인프라 구축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 최적지를 골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반도체 클러스터는 사실 이렇게 이슈화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지난해부터 국내 산업 전체가 어려워지고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은 더 커지면서 이목이 더 쏠린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반도체산업을 어떻게 더 키울 것인가라는 고민이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정치 쟁점화에서 벗어나 국내 전체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논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