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주 후투자? NO!...SK이노, 선제투자로 대전환

[이슈진단+] 다시 부각되는 SK 딥체인지 전략(상)

디지털경제입력 :2019/04/02 11:29    수정: 2019/04/02 15:06

SK그룹의 딥체인지(근본적인 변화) 전략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최근 계열별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하면서 책임경영을 강화키로 한데다 반도체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소재와 반도체 분야에서 전개되는 딥체인지 전략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주]

SK이노베이션이 달라졌다. 물량을 먼저 확보하고 투자를 단행하던 과거 방식을 버리고 가능성 있는 곳에는 과감하게 선제투자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배터리 분리막, 디스플레이용 투명 폴리이미드(PI) 필름 등 신수종 사업에서 그렇다.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딥체인지(근본적인 변화)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이 회사는 올해 전기차 배터리와 배터리 분리막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헝가리와 폴란드에 생산거점을 마련한데 이어 국내 PI 필름 생산공장 건설 계획도 확정했다. 나아가 배터리막과 투명 PI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를 위해 자회사 설립에도 나섰다. 사업구조의 혁신을 넘어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는 딥체인지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현황. (사진=SK이노)

관련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기존의 ‘선(先)수주 후(後)투자’ 전략에서 공격적인 투자로 사업경쟁력 강화하는 전략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SK이노베이션에 적극 지원해줄 테니 수주와 투자에 집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며 “최고경영자가 이 정도 의지를 보일 정도면 SK이노베이션의 공격적 행보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공격적인 투자 나선 SK이노, 세계 3위 도약이 목표

올해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25년까지 연간 100기가와트시(GWh)에 달하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보해 글로벌 톱 3위 전기차 배터리 업체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는 전기차 배터리가 전기차 시장의 확대에 따라 제2의 반도체로 주목받는 미래 먹거리 중 하나기 때문이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IHS 마킷에 따르면 전기차용 2차전지(리튬이온배터리) 시장은 오는 2025년 1천600억달러를 기록해 같은 기간 반도체 시장규모 전망치인 1천49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은 2016년 말 30GWh 규모에 달했던 누적 수주잔고가 현재 430GWh로 10배 이상 증가함에 따라 글로벌 톱 3위 진입이 수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선수주 후투자 전략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닦아왔다면, 앞으로는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확실한 성과를 내겠다는 게 SK이노베이션의 전략이다.

SK이노베이션의 헝가리 제 1공장 조감도.(사진=SK이노)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05년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팩을 개발하고, 2009년 다임러·현대기아차의 물량을 수주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진입한 후발주자다.

2011년 충남 서산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을 건설하고, 베이징자동차 등으로부터 수주물량을 추가로 확보해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구축하는데 집중해왔다.

본격적인 투자행보는 2018년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모여 있는 헝가리 코마롬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7.5GWh 규모, 8천402억원 투자, 2020년 양산)을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같은해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인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장쑤성 창저우에 생산공장(7.5GWh 규모, 8천200억원 투자, 2020년 양산)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국내 서산 제2 공장(4.7GWh 규모, 2000억원 투자, 2018년 양산)에 대한 증설도 결정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미국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생산공장(9.8GWh 규모, 1조1천396억원 투자, 2022년 양산) 건설에 돌입하고, 헝가리 코마롬 내 제2 공장(9GW 규모, 9천452억원 투자, 2022년 양산)에 대한 생산공장 투자도 결정했다.

이희철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의 공격적인 투자 행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시장 추세에 맞춰 투자를 잘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며 “계획대로 된다면 오는 2025년 시장에서 탑 5, 6위권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소재기업 분할 육성…배터리 분리막 1등 기대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와 함께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LiBS) 사업에도 힘을 싣고 있다. LiBS는 절연 소재의 미세 필름으로 배터리 속 양극과 음극 사이에 위치해 쇼트(합선) 현상을 막는다. 필름에 미세 구멍이 뚫려있어 리튬이온이 구멍을 통해 이동하며 충방전도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은 2004년 세계에서 3번째로 LiBS을 개발하며 배터리 분리막 시장에 진입했다. 이후 2007년 세계 최초로 분리막 축차 연신 공정(분리막 두께를 균일하게 만드는 기술)을 완성하고, 처음으로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2011년에는 세계 최초로 세라믹코팅분리막(CCS)을 상업화하고, 2014년에는 일본 아사히카세히에 이어 시장 2위에 올랐다.

SK이노베이션은 세계 1위 배터리 분리막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로 올해 소재 자회사인 SK아이이소재(사칭)를 별도로 설립했다. 아울러 오는 2021년 3분기부터 양산을 목표로 폴란드에 3억3천500만유로(약 4천300억원)을 투자하고, 충북 증평 공장의 배터리 분리막 생산 라인도 2기 더 확충해 올해 11월 연간 5.3제곱미터(㎡)에 달하는 LiBS를 생산할 계획이다.

소재 사업 분할 후 SK이노베이션의 조직도. (사진=SK이노)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창저우에 건설하고 있는 LiBS와 CCS 생산 공장이 내년에 완공되면, SK이노베이션의 LiBS 연간 생산량은 12.1억㎡로 확대된다. 이는 세계 1위 기업인 아사히키세이(2020년 LiBS 연간 생산능력 11억㎡)를 넘어 시장의 선두기업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관계자는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와 배터리 분리막 사업을 함께 키우는 것은 전기차 시장 전망을 봤을 때 긍정적인 전략”이라며 “SK이노베이션이 시장 내 존재감을 지속 키우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신소재로 투명 PI도 주목…중장기 성장동력도 확보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용 핵심 소재인 투명 PI는 SK이노베이션이 주목하는 신소재 분야 중 하나다. 이는 SK아이이소재가 배터리 분리막과 함께 주력 사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정보통신기술(ICT) 전시회 ‘CES 2019’에서 ‘플렉시블 커버 윈도우(FCW)’라는 브랜드로 투명 PI를 공개한 바 있다.

투명 PI는 접거나 말 수 있는 디스플레이용 소재로 폴더블 폰, 롤러블 TV 시장의 성장에 따라 향후 성과가 기대된다.

SK이노베이션이 개발한 폴더블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 '투명 PI 필름'. (사진=SK이노)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국내 증평 LiBS 공장에 400억원을 들여 FCW 생산공장 건설에 나섰다. 이 공장은 오는 10월 상업 가동이 목표이며, SK이노베이션은 제2공장 증설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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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업계에서는 투명 PI 전방 시장이 아직 열리지 않은 만큼 SK이노베이션이 장기적으로 FCW 사업 기반을 다지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들과 FCW 공급을 위한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투명 PI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자사 FCW에 주목하고 직접 여러 제안도 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