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야구를 통해 본 'AI시대 받아들이기'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배척해야 할 대상' 프레임 버려야

데스크 칼럼입력 :2019/05/02 16:39    수정: 2019/05/02 16:4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라이벌 스포츠팀들간의 경기는 늘 흥미진진합니다. 때론 실력 이외 요소들도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일전이 대표적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현대와 삼성이 국내에선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면서 늘 짜릿한 경기를 선사했습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LA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대표적인 라이벌입니다. 두 팀 경기는 순위와 상관없이 언제나 긴장감이 넘칩니다.

2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홈구장인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경기도 라이벌전의 묘미를 유감 없이 보여줬습니다. 이날 경기는 류현진 선수가 선발 등판해 더 관심을 모았습니다. 게다가 상대 선발인 매디슨 범가너는 샌프란시스코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특급 좌완 투수입니다.

류현진 선수는 이날 정말 잘 던졌습니다. 8이닝 1실점. 상대 선발인 범가너가 내려간 뒤에도 상대 타선을 꽁꽁 묶으면서 마운드를 굳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날 경기에서 흥미롭게 지켜본 건 오히려 다저스 팀의 수비 포메이션이었습니다. 타자들이 나올 때마다 수비수들이 조금씩 자리를 옮겼습니다. 과장을 보태자면, 연속으로 같은 자리에서 수비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빅데이터 혁명의 물꼬를 튼 오클랜드 팀의 혁신을 다룬 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

■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컴퓨터의 힘, 어떻게 봐야 할까

메이저리그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데이터’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머니볼’이란 영화로 널리 알려진 오클랜드 팀의 혁신 이후 거의 모든 팀들이 이른바 ‘빅데이터 베이스볼’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는 ‘빅데이터 베이스볼’의 또 다른 산물입니다.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이날 경기에서도 2루 베이스 위를 지나가는 타구가 평범한 내야 땅볼로 처리되는 장면을 몇 차례 볼 수 있었습니다. 정상 위치에 있었더라면 중견수 앞 안타가 될 타구들이었습니다.

이처럼 타구 방향 분석을 토대로 수비수의 위치를 옮기는 것을 수비 시프트라고 합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2루수들이 우익수 바로 앞에서 수비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바로 그 지점으로 타구가 날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런 관행이 정착되기까지 적잖은 반발과 시행 착오를 겪었습니다. 영화 ‘머니볼’에 보면, 전통적인 야구인 출신 코치들이 데이터를 토대로 한 빌리 빈의 각종 정책에 반기를 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되면서 좀 더 과장되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 능력을 겨루는 경기에 컴퓨터가 개입하는 것을 우려하는 전통 야구인의 정서는 그 모습에서 크게 다르진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전 오늘 LA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의 경기를 보면서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느 새 인공지능(AI)이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되고 있구나”란,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었습니다. 그 생각은 조금 더 엉뚱한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AI 확산을 이젠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진지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 수비 시프트가 AI 시대에 던지는 또 다른 질문

수비 시프트는 철저한 확률 게임입니다. 특정 타자의 타구가 날아갈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을 지키는 작전이기 때문입니다. 확률 게임인 만큼, 가끔은 제 자리에 있었더라면 쉽게 처리할 타구가 안타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2회말 샌프란시스코의 케빈 필라 선수는 1루 쪽으로 번트를 대서 살았습니다. 수비 시프트를 역이용한 타구였습니다.

LA다저스 팀의 동점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저스 4번 타자인 코디 벨린저 선수가 친 타구는 1루수 내야 안타였습니다. 그런데 그 타구로 2루에 있던 주자(키케 에르난데스)가 홈까지 들어와버렸습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벨린저 선수를 겨냥한 수비 시프트를 펼치느라 3루를 비워놨습니다. 2루 주자가 그 틈을 타서 3루로 뛰는 사이에 내야 안타가 나오면서 결국 동점 타점이 됐습니다.

투수들은 이런 상황이 가장 힘들다고 하지요. 가만히 있었으면 잡혔을 타구가 엉뚱하게 안타가 된 셈이니까요? 확률상 안타될 타구를 잡은 경우가 더 많다는 점보다는, 컴퓨터(혹은 AI)의 개입 때문에 경기 흐름이 달라지는 걸 못 견뎌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몇몇 투수들은 수비 시프트를 극도로 싫어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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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부분의 투수들은 이제 수비 시프트도 당연한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야구 선수들 역시 컴퓨터나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문제와 직면한 건 야구 뿐만이 아닐 겁니다.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AI시대를 살아가는 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겁니다. 그 얘길 함께 나누고 싶어서 ’야구 칼럼 같은 IT 칼럼’을 쓰게 됐습니다. 그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서요.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