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의제와 대중 의제…포털 실검논란 뒤집기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의제설정 이론 관점에서

데스크 칼럼입력 :2019/09/05 18:23    수정: 2019/09/13 10:3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언론이 집중 보도하는 이슈일수록 중요한 사건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다. 미디어 의제(media agenda)가 대중의제(public agenda)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언론학 교과서 첫 머리에 등장하는 의제설정이론이다. 1972년 맥콤과 쇼가 처음 제기한 이 이론은 미디어 효과를 이야기 할 때마다 널리 인용되고 있다.

신문과 TV 같은 전통 매체는 편집행위를 통해 그날의 의제를 주도했다. 유력 일간지의 1면 톱기사나, 방송뉴스의 머리 기사는 곧바로 대중의 의제가 됐다. 따라서 ‘의제설정 능력’은 언론 영향력의 원천이다. 신문, 방송사들이 1면 톱과 첫 꼭지 뉴스 선정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5일 오후 실시간 인기 검색어 문제로 네이버를 항의 방문했다. (사진=뉴스1)

실시간 보도 시대엔 ‘편집 행위’ 보다는 ‘발행 건수’가 의제설정 역할을 했다. 언론사들은 ‘무제한 저널리즘’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양의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의제를 주도한다.

실시간 인기 검색어 공방 때문에 또 다시 케케묵은 언론학 교과서를 펼쳤다. 그 얘기를 잠깐 해보자.

■ 갑작스럽게 불거진 실검 공방, 어떻게 봐야 할까

‘조국 공방’이 과열되면서 실시간 인기검색어 전쟁이 벌어졌다. ‘조국 힘내세요’를 비롯해 ‘가짜뉴스 아웃’ ‘근조한국언론’ ‘한국기자질문수준’ 같은 검색어들이 연일 상위권을 장식했다. ‘나경원자녀의혹’ ‘나경원소환조사’ ‘황교안자녀장관상’ 같은 검색어들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이 발끈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해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박성중 미디어특위 위원장, 이만희 원내대변인 등이 5일 오후 네이버를 항의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나 원내대표는 "여론 조작 우려가 있는 검색어가 뜨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강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소수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이 건전한 여론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고도 했다. 네이버가 여론 왜곡을 방치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표출한 셈이다.

야당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사안과 직접 관계가 없는 '나경원자녀의혹'이나 '황교안자녀장관상' 같은 검색어가 뜨는 건 부당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힘내세요'를 비롯한 여러 검색어들 역시 불편할 것이다. '제2의 드루킹'이란 프레임은 그런 인식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대중 의제'란 관점으로 접근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대중이 의제를 설정하는 시대에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털의 실검은 실제로 막강한 의제설정 역할을 하고 있다. 때론 그 어떤 언론사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번 따져보자.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지 1개월 동안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한달간 쏟아진 기사 건수만 130만 건을 넘어섰다는 통계까지 있을 정도다. 자녀가 자기 소개서에 쓴 문구까지 검증하는 소란을 펼치고 있다.

실시간 검색어는 이성을 잃은 듯한 최근 상황에 대한 불만의 표시일 수도 있다. 앞으로 모든 장관 후보자에게 이런 잣대를 들이댈 것이냐는 무언의 항의일 수도 있다.

그런 불만들이 (언뜻 보기엔) 관련 없어 보이는 검색어로 불똥이 튀었을 수도 있단 얘기다. 그 점은 네이버 항의 방문을 한 야당이 한번쯤 새겨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 실검이 대중이 제기한 의제는 아닐까

좀 더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시간 검색어는 대중의 의제설정 행위다. 그 시간 대중들의 관심사가 표출된 결과물이다. 그 결과물에 손을 대는 순간 '언론 탄압' 혐의를 뒤집어 쓰게 된다. 플랫폼 관리자인 네이버가 절대로 해선 안 되는 행위다.

물론 야당의 생각은 다르다. '검색어 조작' 혐의를 두고 있다. 이날 회동에서도 매크로 프로그램이 동원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했다.

야당 주장대로 최근의 검색어가 그런 과정을 통해 생산됐다면 네이버가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게 맞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런 것 같진 않다. 오히려 최근 상황이 부당하다고 느낀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 것일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럴 경우엔 네이버가 딱히 손을 쓸 방법이 없다. '대중의 의제'에 손을 대는 건 플랫폼 관리자의 중립 의무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나경원 대표는 회견을 마친 뒤 "실시간 검색어 조작을 막을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실시간 검색어를 조작하는 건 막아야 한다. 건전한 공론장을 유지하는 게 네이버에게도 득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걸 법으로 해결하려는 건 바람직해보이진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야당도 '불편한 검색어'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게 현 상황을 바라보는 중요한 민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