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의 Newtro]공정위에 발목 잡힌 갈길 먼 유료방송시장

심사기간 220일 넘겨…주무부처 심사까지 산 넘어 산

데스크 칼럼입력 :2019/10/23 16:22    수정: 2019/10/23 16:22

3년 전과 판박이다.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합병 심사에 총 217일을 끌다가 불허 결정을 내렸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구 미래창조과학부)는 심사조차 하지 못하고 심사 종결을 선언했다.

지난 17일 공정위는 업계의 예상을 뒤엎고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심사에서 유보 결정을 내렸다. 심사를 시작한 지 213일을 넘긴 때다. 비슷한 시기에 인수합병 신청을 한 SK텔레콤의 티브로드를 심의한 이후 하겠다는 게 이유다.

내달 6일께 SK텔레콤-티브로드의 기업결합 심사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하면 LG유플러스의 CJ헬로의 심사 결과는 약 8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나오는 셈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공정위의 심사가 끝나면 LG유플러스-CJ헬로는 과기정통부로부터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기간통신사업자의 최대주주 변경에 대한 공익성 심사와 방송법상 유료방송사업자 최다액 출자자 변경승인 심사를 받아야 한다.

(사진 = 이미지투데이)

인수 심사를 받는 LG유플러스와 달리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SK텔레콤-티브로드는 여기에 과기정통부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사전 동의까지 얻어야 한다.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기일을 내년 1월1일에서 3월1일로 변경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조치다.

여기서 공정위가 LG유플러스-CJ헬로 심사를 SK텔레콤의 티브로드 인수합병 심의 이후로 미룬 것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LG유플러스가 공정위에 심사 신청을 한 게 3월14일, SK텔레콤은 3월28일에 사전심사 신청을 했다. 공정위가 밝힌 대로 SK텔레콤 심의 뒤에 할 것이라면 진작 이를 고려한 심사를 했어야 했다. 입법부인 국회에서도 유사 법안들이 발의되면 애초에 이를 병합해 심사한다. 7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유보 결정을 내린 이유로는 궁색하다.

더욱 이해되지 않는 점은 2016년 SK텔레콤-CJ헬로는 이동통신-케이블TV 1위 사업자 간 인수합병이란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치더라도 LG유플러스-CJ헬로는 기업결합 이후에도 이동통신 3위, 유료방송은 2위 사업자다.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시작으로 SK텔레콤의 티브로드 인수합병 등 이번 기업결합이 유료방송시장의 자발적 구조개편이란 점을 감안하면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또 이는 3년 전 공정위가 이미 한 차례 불허 결정을 내리며 꼼꼼히 살펴봤던 산업이다.

당시 공정위가 CJ헬로의 알뜰폰을 이동통신 소매시장에서 ‘독행기업’ 역할로 규정하고 SK텔레콤과 인수합병 시 경쟁 활성화에 부정적이라고 판단했지만, 이는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가 심사하고 판단하도록 맡겨둬도 될 일이다.

2016년 공정위의 불허 결정으로 정작 관련 산업을 관장하는 과기정통부나 방통위는 심사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관련 법제도에 대한 비판이 잇달았다.

올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경진 의원이 “공정위가 너무 한 쪽에 치우쳐서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것이 국가 전체적으로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면서 “공정위에 가기 전에 과기정통부와 방통위가 먼저 심사하고 최종적으로 공정위가 판결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이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공정위가 3년 전 SK텔레콤-CJ헬로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유료방송업계는 “경쟁력을 잃어가는 케이블 산업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막아 고사위기에 몰아넣는 조치이며 자율적 구조조정을 막아 위기를 지연시키는 결과만 낳을 것”이란 비판을 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됐다. 기업결합 당사자들만 바뀌었을 뿐 3년 전 기업결합 심사를 또 다시 반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글로벌 대형 사업자들에게 서서히 시장은 잠식당하고 있다.

케이블 업계에서는 “회사가 팔리거나 매각될 일만 남았는데 임직원들이 손에 일이 잡히겠는가. 빨리 마무리돼야 그 다음을 얘기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오죽하면 케이블 1, 2위 사업자가 회사를 매각하겠다고 나왔는데 이것을 정부가 지연시킬 일인가. 시장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구조개편을 할 수 있도록 나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지는 이유다.

특히, 공정위가 지난 3월5일 사전심사를 신청한 OTT(Over The Top) 서비스인 지상파의 푹과 SK텔레콤 옥수수의 기업결합 심사에 대해서는 169일(사전심사를 제외하면 134일) 만에 결론을 내렸음에도 유료방송에 대해서는 너무 시간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선이 모바일로 넘어가고 미디어 이용행태가 변화하면서 OTT로 넘어가는 유료방송의 코드커팅이 빠르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규제의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푹-옥수수 인가 조건에 ‘급변하는 OTT 시장의 상황을 고려해 기업결합 완료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시정조치 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이 시장에 빠르게 가입자와 비즈니스를 뺏기고 있는 유료방송시장에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통상 기업에서는 이 시기가 오면 내년도 사업, 투자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인수나 합병을 앞에 둔 기업들은 이를 미룰 수밖에 없다.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이는 이들의 협력사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방송통신 산업 특성상 고객센터나 설치?수리기사 등 고용이 불안정한 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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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헬로 노조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위가 기업 생존과 고용안정을 위협하고 있으며 지연 중인 유료방송 인수합병을 빨리 허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정위가 더 이상 심사를 지연시키지 말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