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냐 외부냐…운명 가를 KT의 선택

[이슈진단+] KT 새 회장 누가 될까

방송/통신입력 :2019/11/06 10:11    수정: 2019/11/15 11:48

KT가 차기 회장을 선발하기 위해 지난 5일 후보자 사외 공모를 마감함으로써 선임 작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KT가 국내 ICT 산업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까닭에 차기 회장 선임 문제는 늘 업계의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에는 물망에 오르고 있는 사내 후보와 공모를 마친 사외 후보 가운데 어느 쪽이 낙점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크다.

사내 후보가 될 경우 황창규 회장 체제의 연속성이 보장될 가능성이 높지만 회장직을 측근에 승계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반대로 사외 후보가 될 경우 확장성과 혁신을 기대할 수 있지만 정치권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일장일단이 있고 그래서 선택이 주목되는 것이다.

KT는 차기 회장 선임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3월 정관을 개정해 선임절차를 4단계로 확대했다. 지배구조위원회, 회장후보심사위원회, 이사회, 주주총회 등의 단계적 검증을 통해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방식을 취한 것.

사외이사 4명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 지배구조위원회는 내부 인사와 공모에 참여한 외부 인사에 대해 조사하고, 최종 후보에 오를 후보자군을 선발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후 회장후보심사위원회는이 후보자군에 대해 심사하고, 심사의견을 이사회에 보고한다. 이사회는 최종 후보를 선정하고 주주총회에 추천한다. 이사회로부터 선정된 회장 후보자는 주주총회를 통해 KT를 이끌 회장 자리에 오른다.

주주총회가 단독으로 추천된 회장 후보자에 대한 선임 의결만 담당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사실상 회장 선발은 이사회에서 마무리되는 셈이다.

KT는 아직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 KT 회장 선임 새로운 사례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번 차기 회장 선임은 KT에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연임에 성공한 회장이 모든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첫 번째 사례이자, 외압을 막기 위해 CEO 선임 절차를 변경한 이후 진행된 첫 번째 인선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CEO의 명예로운 퇴임과 외압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새로운 CEO의 선임이라는 긍정적인 선례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확보된 셈이다.

이번에 새롭게 시행된 회장 선임 절차가 기존에 비해 내부 인사의 발탁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황창규 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를 통해 CEO 선임 절차를 기존 2단계에서 4단계로 세분화했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의 별도 후보자 추천 권한을 배제했다.

황창규 KT회장. (사진=KT)

지난 10년간 KT를 이끌었던 이석채 전 회장과 황창규 회장이 주주총회 전 이사회를 통해 갑자기 후보로 거론된 이후, 최종적으로 회장 자리에 오른 바 있다. 전례에 비춰볼 때 이사회의 갑작스러운 낙하산 인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내부 출신 CEO에 대한 선호는 황창규 회장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황 회장은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차기 CEO를 내부에서 발탁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고, 3월 중순에는 B20 서밋에서 “내부에서 CEO 발탁이 가능하도록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말한 바 있다.

■ 내부 출신 인사에 쏠리는 눈…왜?

KT 내부에서 발탁된 회장은 2009년 남중수 사장이 마지막이다. 이후 KT를 이끈 이석채 전 회장은 전직 관료, 황창규 회장은 삼성전자 출신이다. CEO 선임 과정에서 언급되지 않다가 막판에 등장해 극적으로 회장 자리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부에서 발탁된 CEO의 최대 장점으로는 KT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지금껏 추진해온 KT의 전략을 계승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이는 5G를 통해 대내외적인 경쟁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KT가 최근 통신 사업자를 넘어 AI 전문회사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을 천명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연결성 있는 전략 추진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상황이다.

외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KT는 포스코와 함께 대표적인 ‘주인 없는 기업’으로 꼽힌다. 이는 KT CEO 선임에 있어서 이사회가 당시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를 단행했다는 의혹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선임된 CEO는 정권과 이사회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이 과정에서 인사 채용 등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을 높인다.

외부 출신 CEO의 성과 중심 경영이 KT의 미래 경쟁력을 약화하는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이석채 전 회장은 임기 내 ▲전화국 건물을 세일즈앤리스백에 매각 ▲케이티리얼티라는 페이퍼컴퍼티를 설립해 자산 매각 ▲아주케이티엠, 케이리얼티, 케이티에스테이트 등에 자산 매각 및 현물출자 ▲무궁화 3호 인공위성을 홍콩계 회사에 매각 등을 통해 실적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외부 출신 CEO의 경우 자신의 정당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실적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며 “경영 실적에 따라 보수가 정해지기 때문에 자신이 임기에 있는 동안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고, 이 과정에서 경쟁력 있는 회사의 자산이 매각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 “회장 승계는 안돼”…외부 인사 장점도 분명

내부 출신 CEO의 선임이 KT에 대한 우려를 일순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내부 출신 인사에 대한 선호가 외부 출신 CEO가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아닌, 현 경영진의 치부를 가리기 위함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내부 인사의 CEO 선임이 사실상 회장직 ‘승계’로 비칠 수 있다는 뜻이다.

KT 이사회는 사내 차기 회장 후보의 자격으로 KT(그룹사)에 2년 이상 재직한 부사장급 이상을 제시했다. 가장 강력한 후보로는 ▲구현모 KT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 ▲오성목 KT네트워크부문장 ▲이동면 미래플랫폼사업부문장 등이 거론된다. 부사장급인 ▲이문환 BC 카드 사장 ▲박윤영 KT 기업사업부문장 ▲유태열 KT스포츠 사장 등도 후보다.

이들 대부분이 황창규 회장 취임 이후 승진을 거듭한 인물인 만큼, 내부 출신 차기 CEO가 될 경우 황창규 회장의 과오에 대한 조사 및 개선 의지가 부족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황창규 회장은 지난 4월 국회 청문회를 통해 “차기 대표는 KT 이사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권한이 없다”며 “차기 CEO 선임 절차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투명성에 대한 우려는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내부가 아닌 외부 출신 CEO가 취임함으로써 기대되는 장점도 있다. 전통적인 규제 산업인 통신업의 특성상 정부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은 필수다. 정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회장의 선임은 정부가 추진하는 ICT 전략에 속도를 더할 수 있다. 가령 막대한 투자비가 소모되는 차세대 네트워크 투자나 통신비 인하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정부에 우호적인 사업자의 존재는 정책 효과를 빠르게 달성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실질적인 성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가 대표적이다. 정부의 5G 상용화 계획에 KT가 호응하면서 국내 5G 논의는 본격화 됐다. 특히 KT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5G 시범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경쟁사와 함께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과제 완수에 선봉장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외 후보로 지원했을 외부 인사 중에서는 전직 KT 출신과 KT를 경험하지 않은 정부관료 등이 언급되고 있다. KT 출신 인사로는 ▲최두환 전 포스코 ICT 사장 ▲김태오 현 서울교통공사 사장 ▲노태석 전 서울로봇고 교장 ▲이상훈 전 ETRI 원장 ▲임헌문 전 KT 매스 부문 총괄 사장 ▲전인성 전 KT그룹 희망나눔재단 이사장 ▲표현명 전 롯데렌탈 사장 ▲홍원표 현 삼성SDS 사장 ▲한훈 전 TK그룹 희망나눔 재단 이사장 등의 이름이 나온다. 관료 출신으로 노준형·유영환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이 거론된다.

황창규 KT 회장이 5G 기지국을 점검하는 모습. (사진=KT)

■ 출신보다 중요한 ‘경영 능력’… 그리고 ‘투명성’

CEO 후보의 출신에 앞서 전제돼야 할 조건은 ‘경영 능력’이다. 이는 KT 지배구조위원회가 제시한 차기 회장의 조건이기도 하다. 경영 능력에는 현재 KT가 보유한 자산을 보호하는 것부터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육성하는 일이 포함된다. 정부와의 이견을 조율하는 정무적 능력도 필수다.

한영도 상명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5G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의 ICT 생태계 조성을 주도할 수 있고 산업간 융복합 서비스의 글로벌 개발 경쟁을 선도할 수 있는 창의적 글로벌 리더십을 갖춘 리더들이 (KT 회장에) 지원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차기 CEO 선임과정에서 ‘투명성’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출신을 떠나 투명성이 부족한 인사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위원회와 회장후보심사 위원회, 이사회 등이 공개 가능한 정보를 최대한 공개하고, 현직 회장의 이사회 참여를 배제하는 등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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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에서는 역량 있는 차기 CEO가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한다.

김회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KT는 정관 변경을 통해 외부 인사라 하더라도 기업경영의 경험이 있는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며 “CEO 선임 및 연임 시점에 노이즈가 많이 있었지만, 통신 사업 경험이 풍부한 사내 후보와 전문 경영 능력을 갖춘 외부 후보가 경합을 통해 CEO가 선임된다면, 5G 시대에는 KT가 충분히 시장을 리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