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미국의 화웨이 제재 후폭풍에 예의주시

불확실성 커지는 가운데 유·불리 두 가지 시나리오 가능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0/05/19 07:36    수정: 2020/05/22 09:01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로 대외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짐에 따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양사의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플래시) 사업에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미국이 화웨이 외 다른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까지 제재대상에 포함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탓이다.

18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양사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 발표 이후, 화웨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 동향을 주시하면서 미국의 추가적인 제재조치를 염두한 비상 시나리오별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안보상의 이유로 미국의 기술과 소프트웨어 등을 사용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승인을 거쳐야한다는 내용의 화웨이 제재안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의 기술을 사용한 제품(장비 포함)을 화웨이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오는 9월부터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한다는 게 핵심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5일(미국 현지시간) 중국 기업에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재조치를 공식화했다.(사진=ZDNet)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지난해 화웨이에 대한 제재조치에 나선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화웨이향 메모리 반도체 공급에 차질을 빚은 사례가 없었다"며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재에 나섰지만, 마찬가지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이로 인해 받을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화웨이 외 샤오미, 오포, 비보 등의 업체에 반도체를 공급 중인 만큼 화웨이 물량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확보한 상태"라며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조치를 모든 중국산 제품(다른 스마트폰 제조업체)으로 확대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지만,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전했다.


■ 미국의 화웨이 제재, "장기적으로 위협" vs "중국 반도체 굴기 좌초로, 한국에 기회"

시장의 전망은 엇갈린다. 국내 업체가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재조치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과 미국의 강력한 중국 반도체 굴기 압박으로 국내 업체가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다수의 의견은 실보다는 득이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 업체의 타격 시나리오는 지난해부터 미국이 지속적으로 화웨이에 대한 제재조치를 시행한 데 이어 최근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 책임이 중국에 있다는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는 데 배경이 있다.

올해 1분기 중국 스마트폰용 칩셋 점유율 추이. 하이실리콘이 미국의 퀄컴을 제치고 중국 시장 1위를 기록했다. (자료=시노리서치)

실제로 미국은 이번 조치에 앞서 지난 3월에도 거래제한 기업으로 분류(2019년부터 시행 중)된 화웨이에 대한 거래제한 유예기간을 90일간 연장(4월1일→5월15일)하는 조치에 나선 바 있다. 나아가 지난달부터는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관련해 중국이 코로나19의 발원지(중국 우한)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중국 책임론을 재차 거론하고 있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는 미국의 장비를 이용한 모든 제품으로 봐야하고, 이 경우에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메모리도 포함된다고 생각된다"며 "(이번 조치가) 모든 중국 업체가 아니라 화웨이에 국한된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이미 모바일 시장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서버·통신 장비 등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하다는 점에서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9월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그 사이 대화로 풀어질 수도 있겠지만, 상당히 걱정이 되는 변수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반면, 국내 업계의 수혜 시나리오는 미국의 이번 조치가 중국의 반도체 육성전략(2025년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에 제동을 걸어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비메모리 반도체는 중국 1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인 하이실리콘(화웨이 자회사)의 경쟁력 약화가, 메모리 반도체는 낸드플래시에 이어 D램 시장 진입을 준비 중인 양쯔강메모리(YMTC)의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입장은 화웨이(하이실리콘)가 ASIC(주문형 반도체)을 설계하고 만드는 것을 못 보겠다는 것이지 D램, 낸드나 미국 회사들이 디자인한 칩을 사다가 스마트폰을 조립하는 것까지 막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화웨이의 영업이 위축될 경우, 화웨이향 매출 비중이 큰 업체들도 단기적으로 타격이 발생할 수 있고,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한 축인 화웨이의 반도체 개발은 사실상 좌초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강력한 중국 반도체 태클 걸기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있어 장기적으로 오히려 긍정적 효과가 더 커 보인다"고 전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이번 조치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양쯔강메모리 등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 시장 진입계획을 밝혔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의 기술 격차가 큰 만큼 글로벌 시장 공략을 추구하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의 한국산 반도체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거대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재계에서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출장길에 오른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이번 출장은 지난해 말부터 삼성전자가 중국 산시성에 증설 중인 시안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공교롭게도 시기가 화웨이 제재조치 이후라는 점에서 여러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나서자 곧바로 일본 출장길에 올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회동하는 등 대응책 마련을 위한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코로나19 후폭풍으로 올 상반기 전년 대비 크게 위축되면서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사업도 일부 타격을 받았던 만큼 화웨이 제재조치로 커진 불확실성 속에서 이 부회장이 주요 거래선과의 관계 구축을 강화하는 행보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인 양회가 오는 21일 개최될 예정인 것도 중국 지도층에 긍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이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현장을 점검하는 모습.(사진=삼성전자)

재계 한 관계자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 등 미중 무역갈등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중국 출장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서도 "이번 출장이 한중 패스트트랙 합의에 따라 이뤄진 것을 고려하면, 코로나19 상황에도 차질 없이 반도체 증설작업에 임해준 임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큰 것 같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사업장은 2013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D 낸드 양산을 시작한 핵심 반도체 생산거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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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2017년 V낸드(삼성전자 3D 낸드플래시 브랜드) 생산량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 시안에 3년간 70억달러(약 7조8천억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이후, 지난해 말 2차로 80억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를 결정하는 등 시안 반도체 사업장의 지속적인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시안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해 "과거에 발목 잡히거나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는 없다"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된다"며 임직원들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