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온 초전도체 열풍···이제 밈 과학의 시대인가

기자수첩입력 :2023/08/04 13:51    수정: 2023/08/05 09:00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증시에는 이른바 '밈 주식' 열풍이 불었다. 한물간 게임 유통 회사로 여겨지던 게임스탑 주식에 일부 기관들이 공매도를 시도하자 이에 맞선 개미 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서며 주가를 끌어올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실제로 공매도를 시도한 금융사들에 타격을 주었을뿐 아니라 월가 전체의 변동성까지 뒤흔든 큰 사건이었다.

밈 주식은 주로 레딧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동조자를 모은 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증시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인터넷에 모인 사람들의 판단과 열정이 더 큰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서학개미들의 활약이 주식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에서 생겨나 확대 재생산되는 정보나 지식, 의견, 열기, 화제성 등이 주류 시장을 뒤흔드는 것이다.

상온 상압 초전도체 연구 소식이 알려진 후 등장한 인터넷 밈 (사진=뉴시스)

이런 움직임이 과학계에도 옮겨붙었다. 세계 최초의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를 구현했다는 국내 연구진의 논문이 불을 당겼다. 피어리뷰를 거치지 않은 채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에 올라온 논문이 우연히 '발견'되며 X(구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먼저 화제를 몰고 왔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폭발적 반응이 일어났고 관련 밈 이미지와 유머가 쏟아져 나왔다.

열풍이 커지면서 초전도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하자 신중하던 주류 과학계와 언론도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일부 X(트위터) 사용자들이 연구의 중요성과 의미를 적극 전도하는 허브 역할을 해 열기를 확산한 것은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의 핵심 회원들이 큰 역할을 한 밈 주식 사태와 비슷하다. 사람의 마음에 공명할 스토리를 가진 점도 비슷하다. 게임스탑은 인터넷 커뮤니티 주요 사용자층인 30대 남성들이 추억을 공유하는 기업이라는 스토리가 있었다. LK-99는 비주류 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초야에 묻혀 연구하여 세계를 놀라게 할 획기적 성과를 주장하는 한편, 이들 사이 갈등과 분열의 모습도 엿보인다는 스토리를 가졌다.

퀀텀에너지연구소가 공개한 상온 초전도체 LK-99 (사진=뉴시스)

이번 일은 '밈 과학' 이벤트라 봐도 무리가 없다. 이는 LK-99가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LK-99의 주장은 동료 학자들에 의해 엄밀히 검증되어야 한다. 이런 검증을 거쳐 우리는 우주와 자연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세계를 바꿀 상온상압  초전도체일 수도 있고, 기존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일 수도 있다. 과학적 사실을 오해했거나 측정을 잘못한 것으로 판정날 수도 있다. 어쨌든 과학은 한발 더 나아갈 것이다.

그와 별개로 사회가 과학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의 생성 AI나 과거 황우석 줄기세포 등 과학적 발견이 대중을 열광케 한 사건은 간혹 있었으나, 영향력 있는 학술지를 통해 권위를 업고 발표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일은 반대로 풀뿌리에서의 열광이 회의적이던 과학자들을 끌어들인 사례다.

긍정적 시선으로 보자면 과학이 집중할 연구 주제를 정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논문을 학회에 투고하고 몇달, 몇년씩 피어 리뷰를 거치는 과학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당연히 일반인과는 무관해진지 오래다.

과학의 중요성은 커지는데 대중은 점점 과학에 소외되는 경향이 지속되면, 이런 일은 모습을 바꿔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밈 현상의 열기는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냉정한 판단을 가로막는 부작용도 있다. 이미 초전도 관련 기업의 주가는 널뛰기를 하고 있다. 밈 주식 때와 마찬가지로 일부 사람이 큰 이익을 보고 많은 사람이 크건 작건 손실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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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상적 직관과 종종 어긋나는 과학적 사실에 대한 탐구가 대중의 열기에 휩쓸리는 것은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붐을 일으키는 열기만큼이나 꾸준하고 꿋꿋하게 연구하는 환경도 중요하다. 물론, 무언가가 밈 사건이 된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대중의 바람이나 욕망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기에, 이런 흐름에서 과학자들이 자유롭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단한 일상에서 한번쯤 상온 초전도체 초강대국 대한민국을 상상하며 즐기는 것이 어찌 나쁜 일이겠는가? 지금 이 순간 LK-99를 재현하고 검증하는 국내외 과학자들의 충실한 노력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