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금법, 가상자산 산업에 약일까 독일까

[이슈진단+] 특금법 통과, 가상자산 산업 영향 분석(중)

컴퓨팅입력 :2020/03/10 17:16    수정: 2020/03/12 15:52

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자에 금융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의무를 부과하는 ‘특정금융 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개정안이 지난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는 가상자산 관련한 첫 번째 법제화다. 현재 가상자산 산업이 법제도 공백 상황에서 형성된 만큼, 특금법 시행 이후 산업 전반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특금법이 무엇인지, 가상자산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상자산 과세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상·중·하 총 3편에 걸쳐 분석한다.[편집자주]

규제 공백 상태에 있던 가상자산 산업이 법제화되면서 산업 전반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산업이 건전하게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은 가장 기대되는 변화다. 일정 자격을 갖춘 사업자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 후 영업할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 우후죽순 생겨난 부실 업체들이 정리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특금법이 자금세탁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법률인 만큼, 이번 개정안 통과로 정부가 가상자산을 '제도권에 편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특금법 개정으로 FIU와 은행이 가상자산 사업자의 사업 존폐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전권을 가지게 돼, 산업성장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상자산 거래 시장, 건전화 진행...산업 구조조정 예상

특금법 개정으로 가상자산과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법적인 정의가 처음으로 마련됐다. 가상자산 사업자가 국내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갖춰야 할 요건도 규정됐다. 2017년 광풍 이후 근 3년 만에 이뤄진 법제화다.

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 투기 열풍이 분 2017년 거래소를 비롯해 자체 코인 발행 업체까지 다양한 분야의 수 많은 신생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일반 대중들도 묻지마식 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다.

가상자산 거래 시장에 규칙이 전무한 상황에서 갑자기 돈이 몰리자, 사기, 불법 다단계, 유사수신 행위 등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행위는 물론, 마켓메이킹이나 자전거래 같이 명백한 규정이 없지만 전통 금융 시장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될 수 있는 행위들도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건전한 업체들은 가상자산 산업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정석대로 사업을 하는 업체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며 합리적인 규제 마련을 정부에 요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가상자산을 법 테두리 안으로 가져올 경우 정부가 가상자산 거래를 허용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가상자산 거래소 인허가제 도입을 포함해 법제화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다 국제자금세탁기구(FATF)가 회원국들에게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실효적인 관리감독을 시행하라는 내용의 권고안을 내놓은 후 법제화에 나선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이번 특금법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가상자산이 산업으로 인정 받았다는 점과 건전한 시장 질서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향후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거래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아 한빗코 대표는 "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거래소의 법적인 지위가 확보됐다"고 특금법 통과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특금법 통과는 거래소의 신고허가제를 골자로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암호자산을 다루는 크립토금융 산업이 만들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며 단기적으로는 거래소의 투명한 운영으로 이어져 신규자본 유입과 함께 블록체인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상자산 거래소 고팍스를 운영하는 스트리미의 이준행 대표는 "지금이라도 꼭 필요한 법이 통과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특금법 통과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가상자산을 정치적 찬반의 대상 아닌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금법에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진입규제가 생기면서 산업내 구조조정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절차와 비용 측면에서 신생 기업이 FIU 신고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 업체 헥슬란트의 최지혜 리서치센터팀장은 "특금법 시행 이후 블록체인 산업에서 가상자산 관련 산업의 집중화와 대형화가 예상되며 나아가 동일 서비스 제공 기업 간의 인수합병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특금법 개정에 따라 가상자산 사업자가 FIU에 신고 후 허가를 획득하기 위해서 반드시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와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ISMS)'을 획득해야 한다. 중소 규모의 기업에게 부담스러운 조건들이다. 이에 대형화가 불가피하며, 자연스럽게 인수합병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다. 최 팀장은 "특금법으로 많은 기업이 경영·운영 판단의 순간에 섰다"고 평가했다.

■지나친 기대는 금물...가상자산 사업자 존폐 여부 FIU·은행 손에 달릴 수도

그렇다고, 특금법 통과를 완전한 의미에서 '제도권 편입'으로 해석해, 지나친 기대를 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 법의 취지가 가상자산 사업자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국제 기준에 국내 법을 맞추기 위한 차원에서 특금법 개정이 이뤄진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책당국 입장에선 제도화보다 가상자산의 자금세탁방지가 필요해서 입법화했다고 봐야 한다"며 "가상자산 거래를 제도화하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엇다.

이번 특금법 개정을 통해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사실상 '허가제'를 도입했지만, 법률 안에 허가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다는 점도 정부의 입장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금법 개정으로 도입된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FIU가 사업 허가를 내주는 형태로 운영된다. 또 신고를 하지 않고 영업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해 강제력을 갖췄다. 신고만 하면 영업이 가능한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 도입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특금법에는 '허가'라는 대신 '신고 수리'라는 부자연스러운 표현을 택했다. 정부가 가상자산 사업자의 영업을 허가했다는 부담을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오히려, 특금법이 가상자산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인 인식에 변화 없이 마련된 규제법이라는 점에서 산업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가상자산 사업자의 영업 가능 여부가 FIU와 은행의 판단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실명확인 입출금계좌 획득이 신고 수리 필수 요건으로 포함돼, FIU는 물론 은행이 직접 가상자산 사업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금융위는 이런 지적에 따라 시행령에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개시 요건을 명시해, 은행의 자의적인 판단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그렇다고 해도 은행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지급을 보수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은행 역시 특금법 개정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자금세탁방지 의무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은행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신고 여부, 고객 예치금과 기업자금 분리 여부 등을 확인하고 미이행한 업체와는 거래를 의무적으로 거절해야 한다. 또, 가상자산 사업자가 자금세탁행위나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의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거래를 거절하도록 했다.

법무법인 린의 구태언 변호사는 "FIU가 실명계좌를 획득하지 않아도 영업이 가능한 '면제 기준'을 정해주지 않거나, 기준을 만들더라도 기준 적용 여부가 모호한 사업의 경우 FIU로부터 면제라는 유권해석을 얻지 못하면 사실상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획득이 불가해 사업을 할 수 없게 된다"며 "특금법 통과로 특정 사업의 존폐를 정부가 정하는 사전검열제도가 도입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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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특금법 통과, 가상자산 산업 영향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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