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통상압박 철강 다음은 SSD?

반도체 업계 예의주시…"가능성 상존, 우려로 끝나길"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8/02/21 18:30

미국이 세탁기와 태양광전지에 이어 국내산 철강 제품에 최대 53%의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국내 반도체업계가 크게 긴장하고 있다. 자칫 국내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은 반도체가 다음 타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다만 미국이 이미 무관세로 거래되고 있는 반도체에도 무역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단순히 기우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반도체의 수입을 제한하면 당장 미국 제조업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실행으로 옮기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세탁기와 태양광전지에 이어 국내산 철강 제품에 최대 53%의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국내 반도체업계가 크게 긴장 중이다. (사진=pixabay)

■ 美, SSD 관세법 위반 여부 조사…업계 "타깃은 韓"

2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달부터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을 상대로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한 종류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에 대해 자국 관세법 337조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항은 미국 내 상품의 판매와 수입과 관련한 불공정 행위에 대한 단속 규정이다. 특히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위반한 해외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이는 앞서 미국 반도체업체 비트마이크로(BIT MICRO)가 국내 SSD 제조사들을 비롯해 일본, 중국계 업체들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소송엔 반도체 업체들 뿐만 아니라 델, HP, 레노버 등 PC업체들도 포함됐다.

업계가 특히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이번 조사가 사실상 국내 업체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SSD가 포함된 글로벌 낸드 시장에서 우리나라 업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절반에 이른다. 특히 SSD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지난해 점유율 1위를 달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론상 ITC는 관세법 337조에 따라 자국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에 대해 업체에 수입 금지나 판매 금지를 명령할 수 있다"며 "자국 보호주의를 천명한 미국 정부가 특허 분쟁을 넘어 통상 압박으로 이어지는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반도체는 지난 1996년 한국과 미국간 정보기술협정(ITA) 체결에 따라 무관세로 거래돼 온 품목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자국 업체와의 특허 충돌과 지적재산권 침해 등을 문제 삼는다면 충분히 수입 규제 등의 우회적인 제재를 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도 미국 내에선 우리나라 업체들을 대상으로 특허 침해 제소가 잇따라 진행되고 있어 주목된다. 타깃은 단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지난해 미국 넷리스트는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모듈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ITC에 제소한 바 있다.

삼성이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30.72TB SAS SSD'. (사진=삼성전자)

■ "美, 정치적 판단 내릴 수도" vs "쉽게 결정 못할 것"

반도체 업계는 이 같은 수입 규제 우려에 대해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진 않았다. 그러나 이들 내부적으로는 미국의 통상 압박이 반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최근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로 쫓기는 입장에서 미국발 수입 규제가 결정되면 실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세탁기와 태양광전지에 이어 국내산 철강 제품에 대해서도 미국이 통상 압박을 가하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국내 수출 산업을 지탱하는 반도체 사업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정부가 사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미국 정부의 결정이 반도체 수입 규제로 쉽사리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반도체 수입을 막을 경우, 당장 피해를 입는 쪽은 자국 업체가 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세탁기 세이프가드 때와는 또 다른 문제다.

반도체는 세탁기와 달리 공급처가 다변화되지 않은 과점 시장이다. 미국이 삼성과 SK하이닉스 등으로부터 메모리 수입을 줄이면 애플 등 자국 업체들의 구매비용이 늘어날 것임이 자명하다. 또 미국은 반도체 완전 자급국가도 아니란 점에서 국내 업체의 수입을 쉽게 제한하진 못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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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 이슈를 파악하고 있다면 이 문제는 쉽게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조사에 정치적인 판단이 앞서면 모를까, 다른 이슈와는 다르게 특허 문제로만 판단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런 점은 앞서 세이프가드 조치가 결정된 태양광전지와도 비슷하다. 당시 발표가 임박해오자 태양광전지 업계는 수입규제 조치가 제품 가격 상승을 가져와 미국 내 관련 산업들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미국 태양열산업협회도 "태양광 패널에 관세를 부과한다면 이는 곧 미국 에너지 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