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빅데이터 '금맥' 캔다…"똑똑한 규제해야"

"대형·소형은행 기술 차 커…선제적 대응 중요"

금융입력 :2018/06/25 16:26    수정: 2018/06/25 17:46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빅데이터가 은행권에 새로운 수익을 가져다 줄 핵심 기술로 떠올랐다.

국내 은행들은 산학협력이나 외부 회사와의 업무 협약 등을 통해 보유 중인 고객 정보와 금융 데이터를 이용할 방안을 모색 중이다. 몇몇 은행들은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데이터를 집적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국내 은행들의 빅데이터 활용도는 낮은 편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나 비자(Visa) 같은 해외 유수 은행과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다. 고객 정보 이용과 관련한 법과 규제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또 대형은행과 소형은행 간의 격차도 큰 상태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제된 금융데이터는 곧 돈'이기 때문에 관련 법 정비와 함께 은행이 자체적으로 빅데이터 비즈니스를 눈여겨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 선두 주자 신한은행, 우리은행도 한발짝 '성큼'

25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국내은행 중에서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가장 먼저 빅데이터 활용 쪽에 눈을 돌렸다. 신한은행은 2016년 4월 빅데이터센터를 신설하고,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과 금융빅데이터 산학협력을 맺었다.

산학협력으로 도출된 첫 모형은 '리테일 주거래지수'다. 다양한 고객의 거래(리테일 부문)를 모아 최적화한 모델이다. 이후 신한은행은 외부인사인 김철기 빅데이터 전문가를 빅데이터센터 본부장으로 임명하는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신한은행은 특히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이동 경로를 분석해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어 신한은행에 자유 입출금식 통장만 보유한 고객이 있다면,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어떤 상품을 추천하고 권유할 것인지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해준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동안 고객을 잡아둘 수 있는 예·적금 상품을 추천해 고객을 잡을 수 있다는 게 신한은행 측 설명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빅데이터 센터서 고객 행태를 분석하고 알맞은 서비스를 줄 수 있는 데이터 정합성을 따지는 작업을 하며,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빅데이터를 적용할 수 있을 지 방법론적인 고민을 지속 중"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작년 9월 14일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마케팅과 리스크 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빅인사이트' 구축을 마쳤다. 우리은행의 빅데이터 플랫폼은 배치성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다.

우리은행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제공한 T3Q의 이승훈 전략영업실장은 "배치성 분석은 실시간 데이터가 들어오는 것을 처리하는 것"이라며 "기존의 빅데이터 플랫폼은 실시간 데이터를 처리하기 보다는 수집한 데이터를 넣어놓고 연산한 결과를 보여주는데 그친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분석이 가능한 만큼 거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이상 금융 거래는 없는지 포착하는 데 유리하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우리은행은 이어 지난 19일 조직개편을 통해 빅데이터센터를 신설하는 등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향후 우리은행은 고객을 세분화해 마케팅과 서비스, 상품 추천을 개인화할 계획이다. 개인사업자나 소규모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니치 마케팅도 진행할 예정이다.

■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내재화 등 뒤쫓아가는 은행들

두 은행 외에도 빅데이터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은행들은 적지 않다. NH농협은행은 지난 5월 24일 빅데이터 플랫폼 'NH빅스퀘어'를 구축했다. 비정형·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해 고객에게 유리한 상품을 추천해주고 특별한 상황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제시할 요량이다.

IBK기업은행도 지난 5월 29일 'IBK빅데이터플랫폼'을 만들었다. 콘셉트는 NH농협은행 플랫폼과 비슷하다. 금융거래와 같은 금융데이터와 함께 상담 내역, 인터넷 활동 등 비정형 정보까지 통합적으로 분석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의 여신 데이터를 분석해 특정기업과 1~3차 관계기업을 연결한 기업연결망 구현, 선제적 리스크 관리에 나설 방침이다.

KB국민은행은 올해 초 조직개편으로 데이터 분석에 힘을 실었다. 개인영업본부에 위치했던 데이터전략본부를 따로 떼어냈다. 은행이나 카드사 차원에서 개별 부서가 있지만 총괄은 KB금융지주사의 박영태 최고데이터총괄(CDO)이 겸직으로 맡고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빅데이터를 적극 관리하기 위한 강화 차원에서 이뤄진 조직개편인만큼, 앞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에게 적당한 상품을 노출하는 서비스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KEB하나은행은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며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현업의 참여와 IT기술 간의 균형을 유지해 시너지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 데이터 돈인데, 법 규제는 '제자리걸음'

빅데이터가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져가고 있지만, 국내 법과 규제 때문에 아직은 활용도에서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인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보 주체자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 필수적 정보와 선택적 정보로 나뉘며, 대부분 마케팅과 광고 활용을 위한 동의는 선택적 정보 동의 내용이다. 미국도 필수적·선택적 정보 제공이 분리돼 있지만, 필수적 정보는 동의를 받지 않고 선택적 동의는 사후 거부 제도를 원칙으로 한다. 개인 정보 이용에 대한 고지 후 약 30일 내 정보 주체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되는 방식이다.

금융결제원의 김영욱 빅데이터연구반장은 "이상 금융 징후 시스템 분석 등을 제대로 하려고 해도 데이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금융정보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올 하반기 내로 정부가 관련 규제를 정비하겠다고 했으나 아직은 진척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또 신용정보보법에 따라 신용정보기관의 개인 정보 보유 기간도 5년으로 길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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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반장은 "데이터 활용 능력이 금융서비스의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빅데이터 기술과 인적 역량은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스마트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현재 국내은행에서도 대형은행과 소형은행 간 빅데이터 활용 능력에 격차가 큰 상태라고 현 수준을 평가했다. 김영욱 반장은 "집적한 데이터의 양과 질은 시간이 지날 수록 격차가 난다. 은행 간 혁신성 차이를 더 벌리지 않기 위해서는 소형은행도 빅데이터의 쓰임새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