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정부와 기업을 자꾸 이간질 하나

[이균성 칼럼] 교조주의의 폐해

데스크 칼럼입력 :2018/08/06 17:28    수정: 2018/11/16 11:18

‘문 대통령·이 부회장, 더 자주 만나시라’는 칼럼을 쓴 바 있다. 지난 7월10일이었다.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인도에서 만났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삼성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고, 이 부회장은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런데 이게 나쁜 일인가. 뜻밖에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참 많은 것 같다.

당시 댓글부터 심상치 않았다. 대통령이 적폐 세력에 항복했다는 주장부터, 대통령이 신적폐가 됐으니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만남 자체로 두 사람이 무슨 거대한 음모라도 꾸미는 것처럼. 댓글 이전에 언론의 반응도 그랬다. 대통령이 의당 할 수 있고, 어쩌면 꼭 해야 할 경제 행보를, 어떻게든 자신의 당파에 맞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려 했다. 만나도, 안 만나도,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이른바 ‘투자 구걸’이 그것이다. 한 진보 매체의 3일자 기사가 논란을 촉발시켰다. 청와대가 김 부총리에게 ‘투자 구걸’로 비칠 수 있으니 삼성의 투자 계획을 직접 발표하지 못하도록 종용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 때문에 온 나라가 또 발칵 뒤집혔다. 삼성은 끝내 계획된 100조원대 투자 계획 발표를 잠정적으로 미뤘다고 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오른쪽)가 6일 오전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을 만났다. (사진 제공=뉴스1)

청와대는 이와 관련 6일 “사실 무근”이라 밝혔다. 다만 투자 계획을 어떻게 발표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나누었다고 시인했다. 따라서 ‘투자 구걸’ 운운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이어도 문제고 사실이 아니어도 문제다. 사실이면 기업에 대한 청와대의 자세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걸 뜻한다. 청와대가 먼저 경제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해석하고 있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의 3대 주체는 가계 기업 정부다. 3대 주체가 뜻을 모아야 경제는 발전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못 만날 이유가 없다. 당연히 만나야 하고 만나면 투자나 규제 문제를 이야기 안 할 수 없다. 그 행위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 특히 경제부총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어떻게 그게 구걸이 된단 말인가. 문제가 되는 건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반칙과 특혜의 불법이다. 만남 자체가 아니다.

삼성이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일부 연루됐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지금 정부 지지자 가운데 반(反) 삼성을 외치는 이도 적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불법과 삼성 전체는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 불법 행위는 적극 대처하되 국내 최대기업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도록 해야 한다. 편향된 지지자들의 구호에 매몰돼 이를 구별하지 못하면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될 뿐이다.

‘투자 구걸’ 운운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건 더 큰 문제다. 청와대 일부 참모의 시각이 문제면 그를 바꾸면 될 일이지만, 하나의 오보 때문에 모두 이렇게 난장판을 만드는 것이라면, 참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과 진실은 온 데 간 데 없고 유령에 휘둘려 사회가 두 패로 나뉘어 싸우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지난번 칼럼에서 그걸 느꼈다. 허구를 짓고 그 안에서 죽도록 싸우는 우리사회.

틈만 나면 허구의 성(城)을 짓고 싸우는 좌(左)든 우(右)든 그 편에 서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좌에 묻는다. 대통령이 인도 방문길에 삼성 공장을 방문해 격려하면서 잠깐 이 부회장을 만나면 그게 적폐 세력에 대한 항복인가. 또 우에 묻는다. 공개된 자리에서 이 부회장을 잠깐 만나면 그게 신적폐인가. 둘 사이에 반칙과 특혜가 오갈 수 있으니 영원히 만나지 말아야만 하는 것인가.

새가 좌우의 두 날개로 날 듯 사회에 좌우가 있는 게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문제는 당파 싸움에만 매몰돼 허구의 성을 짓고 배를 산으로 가게 만드는 낡은 문화다. 토론은 건전해야 하고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사실과 현실이 무시된 원칙은 교조주의일 뿐이며 그것을 추앙하는 가치는 폭력만을 생산하게 돼 있다. 우리는 해방이후 지금까지 그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지 않나.

김 부총리는 직접 해답을 제시했다. “정부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기업에 의지해(혹은 압박해) 투자나 고용을 늘리려는 의도도, 계획도 전혀 없다. 의도하지 않은 논란이 야기되는 것은 유감이다. 국민이 바라는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논란에 에너지를 낭비할 여유가 없다.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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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들어보자. “투자나 고용 계획에 대한 의사 결정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는 것이다. 대기업을 네 번 만났지만 투자나 고용 계획에 간섭한 적 없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혁신을 통해 역동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시장 여건과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경제부처 장관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경제주체들을 만나는데 그 대상을 가릴 일이 아니다.”

동의할 만한 말들 아닌가. 또 가야할 길이 아닌가. 왜 그 길을 버리려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