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달 PC 인텔 쏠림 현상의 이면

단편적 여론전보다 신뢰성·호환성 확보가 먼저

기자수첩입력 :2019/04/16 11:48

연간 40만대 내외인 국내 조달 PC 시장에서 인텔 프로세서 점유율이 90%를 넘어선다는 지상파 보도가 최근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더 가격이 저렴하고 성능이 좋은 AMD 프로세서를 쓰지 않아 예산이 낭비된다는 게 이 보도의 행간에 숨은 의미다.

유리지갑 납세자라면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소식에 분노할 만 하다. 그러나 정작 조달 PC 제조사 관계자들이나 구매 업무 종사자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조달 공고를 내는 담당자들이 인텔 프로세서를 선호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신뢰성에 대한 불안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조달시장에 출시된 PC는 대부분 인텔 프로세서를 쓴다. (사진=정부조달컴퓨터협회)

2000년대 중반 AMD 프로세서를 장착한 PC가 대거 공공 시장에 진입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프로세서의 발열과 메인보드 오작동 문제가 불거졌다. 이 때문에 조달을 진행한 담당자는 물론 납품 업체도 유지보수에 골머리를 앓았다.

현재 조달 책임자들은 대부분 당시 곤욕스러운 기억을 갖고 있는 실무자들이다. 이들이 모험(?)을 감수하기란 쉽지 않다. 납품 업체 역시 마찬가지다. AMD 프로세서를 선택했다 생길지 모를 문제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프로세서나 메인보드의 신뢰성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문제는 또 있다. 업무용으로 각 관공서마다 발주한 각종 소프트웨어가 정상 작동하는지 100% 보증할 수 없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유지보수 비용이 추가로 든다.

이 때문에 AMD 라이젠 프로세서가 도입된 환경은 대부분 공공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의 실습실 등이며 실제 업무 환경과는 거리가 있다.

수천 대 규모 PC 도입, 그것도 세금이 사용되는 조달 사업은 유지보수나 호환성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적지 않다. 짧으면 3년, 길면 5년간 써야 하는 PC를 몇 만원 싸서, 혹은 최신 프로세서를 썼다고 해서 무작정 선택하기는 어렵다.

AMD 2세대 라이젠 프로세서. (사진=AMD)

물론 인텔 코어 프로세서 대비 더 낮은 가격에 많은 코어를 쓸 수 있는 AMD 라이젠 프로세서는 분명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지난 해 하반기부터 문제가 된 인텔 프로세서 수급난을 통해 어느 정도 존재감도 내비쳤다.

기사 댓글이나 일부 커뮤니티 글만 보면 마치 인텔의 시대는 저물고 AMD의 전성기가 왔다는 착시 현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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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로세서나 그래픽칩셋, SSD 등 하드웨어 제원을 줄줄이 꿰는, 자타가 공인하는 PC 전문가라 해도 다른 사람이 쓸 PC를 조립해 줄 때는 결국 인텔 프로세서를 선택한다.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내 눈 앞의 PC가 아니기 때문이다.

몇 년 간격으로 반복되는 단편적인 여론전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AMD가 정말로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현상에 대한 깊은 복기와 신뢰성·호환성 확보를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